국제일반
‘한미 FTA’ 10주년…美 주역 "양국 모두 두려움 있었지만 현실화 안돼"
뉴스종합| 2022-03-15 09:18

웬디 커틀러 전 미무역대표부(USTR) 부대표이자 2006년에서 2007년 한미 FTA 협상 당시 미국측 수석대표. 커틀러 전 부대표는 14일(현지시간) 한국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과 미 싱크탱크 한미경제연구소(KEI)가 워싱턴D.C에서 주재한 ‘한미 FTA 10년 평가와 한미 경제관계의 미래’라는 주제로 연 토론회에 대담자로 참석했다. 사진은 커틀러 전 부대표가 2007년 협상 당시 기자회견에 참석한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유혜정 기자] 웬디 커틀러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10주년을 하루 앞두고 “매우 뿌듯하고 자긍심을 느끼는 순간”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2006∼2007년 한미 FTA 협상 당시 미국측 수석대표였던 커틀러 전 부대표는 14일(현지시간) 한국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과 미 싱크탱크 한미경제연구소(KEI)가 워싱턴DC에서 ‘한미 FTA 10년 평가와 한미 경제관계의 미래’라는 주제로 연 토론회에 대담자로 참석했다.

커틀러 전 부대표는 협상 당시에는 10주년에 대해 생각하지도 못했고, 심지어 ‘이 협정에 서명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까지 들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당시 한미 양측 모두 FTA가 가져올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면서 미국 측은 미국에 미국산 자동차가 사라져 한국산 차로 넘쳐나고 미국 자동차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한국 측에서는 농업 분야와 관련한 변화의 두려움이 있었지만 “어느 것도 현실화하지 않았다. 그래서 뿌듯하고 10주년을 축하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커틀러 전 부대표는 당시 협상 시한이 사실상 2007년 4월로 못 박혀 있었지만 협상은 10개월 전인 2006년 6월에야 시작됐다며 촉박했던 상황을 소개했다.

그는 협상의 첫 6개월간은 타결을 확신하지 못했다면서, 협상의 약 50%가 마지막 일주일 사이에 합의됐다고 설명했다.

커틀러 전 부대표는 자동차 분야에서 더 많이 얻지 못한 것을 두 가지 후회하는 부분 중 하나라며 제대로 협상이 됐다면 이후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 재협상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협상을 타결하기 위해 관세율을 낮추는 데 있어 미국이 더 많은 결실을 거두지 못한 것에도 아쉬움을 표시했다.

커틀러 전 부대표는 협정의 명칭에 대해서도 ‘US-K FTA’, ‘아메리카-코리아 FTA’ 등이 거론되다가 한국에서 코러스(KORUS)라는 이름을 먼저 제안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자신은 듣기에 좋은 이름이지만 미국은 한국이 먼저 나오는 이름에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면서도 “하지만 마지막에는 시계가 째깍거리고 있었고 우리는 코러스라는 이름으로 갔다”고 말했다.

yooh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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