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박영준의 안보 레이더] 대통령 선거에 나타난 한국 민주주의의 성취와 과제
뉴스종합| 2022-03-16 11:11

제20대 대통령선거는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을 국제사회에 보여주는 일대 사건이었다. 초박빙의 접전이 벌어졌지만 패자는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승자에게 축하를 보냈다. 승자는 지지자들의 환호에 둘러싸여 승리를 만끽하면서도 패자들에게 위로를 아끼지 않았다. 사전투표관리에 불안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선거관리 주무부서와 개표 종사자들은 하룻밤 사이에 국민의 민의를 오롯하게 구현했다. 과반수에 가까운 국민은 지지한 후보가 승리하는 기쁨을 향유할 수 없었으나 선거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성숙성을 보여줬다.

민주주의 선진국을 자처하는 미국에서 불과 2년 전 대선 이후 발생한 혼란과 난맥상을 우리는 기억한다. 선거 결과에 불복한 현직 대통령 지지자들이 의회에 난입해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 등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도 자유민주주의는 퇴조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오히려 새로운 권위주의 체제가 유라시아대륙에서 강화되는 우려스러운 양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세습정권이 여전히 독재적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은 10년 주기의 지도자 교체 시스템을 1인 장기 집권 가능 체제로 변화시키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국내적으로 전체주의에 가까운 체제를 강화하면서 급기야 인접 민주주의국가의 주권을 유린하는 침략전쟁을 일으켰다.

그런 가운데 민주적 절차에 따라 국가 지도자를 평화롭게 선출한 한국의 대선은 글로벌 민주주의 발전에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승자나 패자 가릴 것 없이 한국인들은 이번 대선을 통해 다른 나라도 감탄할 수밖에 없는 ‘민주주의 드라마’를 만든 것이다.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고 선언한다. 이 같은 헌법적 정체성을 수호하기 위해 40여년 전 대학생들과 시민은 가두로 나와 민주주의를 외쳤다. 이번 선거가 이런 민의를 반영한 개정 헌법에 따라 실시됐다는 점에서 선거의 패자이기도 한 기존 여당의 소위 86세대는 선거 결과에 결코 절망해선 안 된다. 오히려 자신들이 선혈을 바쳐 이룩한 민주주의제도가 겸허한 선거 패배 감수로 인해 더욱 건강하게 작동되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점에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란 인간의 기본권을 존중하고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 정치권력을 구성하는 원리다. 존 로크나 장 자크 루소 같은 근대 계몽사상가들에 의해 발원된 민주주의 정치 체제는 영국이나 프랑스, 미국의 역사가 보여주듯 국민 잠재력을 발현시키고 경제와 사회문화의 다양한 발전을 견인하는 힘을 갖는다. 아시아의 변방에 불과했던 나라가 어느덧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갖게 되고, 한류가 세계에서 사랑받게 된 근저에는 민주주의의 발전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새로 출범할 정부는 민주주의의 필연성과 장점을 더욱 자각하고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국내적으로는 지역이나 성별을 떠나 인간으로서 권리와 기회가 공정하게 보장되는 사회를 발전시켜야 한다.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정당에 대해서도 의견을 경청하고, 사회 저변에서 폭넓게 인재를 구하는 탕평의 인사정책을 추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외적으로는 민주주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동맹 미국을 포함한 여타 국가들과 정치·경제·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적자’를 자부한 문재인 정부가 글로벌 민주주의 연대 성격을 지닌 인도·태평양 전략 및 쿼드(Quad) 참가를 주저한 것은 잘 이해되지 않는 정책 선택이었다. 새 정부는 대외적으로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주창하는 글로벌 민주주의 연대에 적극 참가하면서 동시에 그런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유라시아대륙 국가들에 민주주의의 장점과 활력을 설득하고 확산시켜야 할 것이다. 러시아 등의 공세적 대외정책에 의해 국제질서가 크게 동요하는 시기에 한국은 민주주의 성취를 바탕으로 역할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박영준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

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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