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헤럴드시사] 전자상거래 산업의 분화와 규제
뉴스종합| 2022-03-23 11:30

거의 모든 것을 온라인에서 살 수 있는 시대다. 초기 전자상거래는 서적같이 표준화되고 가격대도 높지 않아서 비대면으로도 구매 결정이 쉽고 배송이 용이한 상품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물류, 배송 및 인터페이스 기술 발전은 전자상거래 상품 종류를 폭발적으로 확대시켰다. 부패하기 쉬운 신선식품, 신체 특성에 선택이 좌우되는 의류 등이 온라인 대세상품이다. 전자상거래는 더는 구매 결정이 손쉬운 저가 상품만 유통되는 공간이 아니다. 럭셔리 브랜드들이 앞다퉈 온라인 쇼핑몰을 열고 있다. 자동차도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있다.

전자상거래는 유형상품만을 위한 시장이 아니다. 음악, 비디오 등의 디지털콘텐츠는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압도한 지 오래다. 오프라인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한 O2O(Online-to-Offline) 이용권, 유형 재화로 교환할 수 있는 상품권 등도 유통된다. 전자상거래를 통한 무형 재화의 거래는 전례 없는 범위로 확대되고 있다. 비트코인이나 대체불가능토큰(NFT)과 같은 가상자산을 넘어서 메타버스 시대에는 가상공간에 구현된 부동산을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온라인을 통해 제공되는 모든 유료 서비스 역시 전자상거래다.

전자상거래 구조 역시 다양하다. 사업자인 판매자가 소비자를 대상으로 판매하는 유형(B2C), 일반인 판매자가 다른 일반인 판매자를 대상으로 판매를 하는 유형(C2C), 거래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고 다른 거래를 중개만 하는 유형(플랫폼)이 있다. 일반 개인뿐만 아니라 사업자도 소비자(구매자)가 될 수 있다(B2B). 판매자가 꼭 한국에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판매자들은 국경을 넘어 소비자를 상대로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 한국 소비자는 해외 전자상거래 상품을 구매대행으로 직구하고 있다. 한류 인기로 외국인들의 한국 전자상거래 역직구 규모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전자상거래는 다양한 방식과 내용의 서비스로 분화된 상태다. 물리적 접촉이 없는 비대면의 전자적 방식으로 이뤄지는 거래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을 뿐 세부적으로는 서로 간에 공통점을 찾기도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자상거래의 분화와 다양성 확대는 앞으로도 더 심화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국내의 전자상거래에 관한 법과 제도는 다양한 전자상거래의 서비스를 과거의 정형화된 관점으로 규제하고 있어 아쉽다. 한국의 전자상거래 규제의 기본법이라고 할 수 있는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전자상거래법)은 2002년 제정된 법이 현재까지 큰 틀에서 유지되고 있다. 법은 판매자에게 (통신판매업)신고, 일률적인 상품정보 및 거래정보의 제공을 요구한다. 소비자가 구매 후에 이를 환불(청약철회)할 권리는 소비자의 동의가 있더라도 배제되지 않고 상품 및 서비스의 종류를 불문하고 실무적으로 거의 예외가 인정되기 어렵다.

다양한 형태와 내용의 전자상거래에 대해 일률적인 의무를 강행적으로 부과하고 규제하는 것이 적절한 방식인지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법상 의무를 준수하기 위해서 형식적으로 고지되는 내용들이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인지, 소비자의 접근성 및 편이성만 저해하는 것은 아닌지, 법이 요구하는 정형화된 정보 제공이나 환불의무 등이 전자상거래 서비스의 다양성을 위축시킬 가능성은 없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전자상거래가 익숙한 오늘날의 소비자에게 20년 전 제안된 후견적인 틀은 과도하고 무익할 수 있다. 2002년 규제의 틀을 수정 보완하는 현재 법 개정안과 같은 방식이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개별 거래상품 및 용역에 따라 꼭 필요한 규제 사항은 관련 산업 법령에 과감하게 이관하고, 소비자의 피해와 불이익이 명확하게 예상되는 구체적인 이슈들만 특정해 규제하는 방안도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노태영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ygmoon@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