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헤럴드시사] 우크라이나는 왜 러시아의 전면침공에 대비했나
뉴스종합| 2022-04-04 11:24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우크라이나에서는 2014년 이후로 러시아의 전면 침공 가능성을 한시도 배제한 적이 없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우크라이나는 8년째 전쟁 중이었다. 러시아 국민은 ‘우리 크림’이 조국에 되돌아온 일시적 사건으로 여기겠지만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전쟁은 진행 중인 국가적 고난이다. 2021년 6월 말 유엔은 전쟁으로 1만3200~1만3400명에 이르는 사망자와 2만9600~3만3600명의 부상자가 나온 것으로 추산했다.

둘째, 크림반도는 자체적으로 물을 공급할 수 없다. 지하수나 빗물도 사용하지만 대부분 드니프로강을 통해 물을 공급받는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 병합 후 우크라이나는 북크림운하에서 드니프로의 물줄기를 막았다. 그 이후 크림의 저수지와 지하수가 고갈되고 있다. 일례로 타이간 저수지는 수량이 10분의 1로 줄었다. 크림은 농업이 매우 발달한 곳이다. 쌀과 겨울밀, 옥수수, 콩, 사료작물 등을 길렀다. 하지만 병합 이후에 논밭이 마르고 있다. 마산드라 와이너리로 유명한 크림의 포도는 재배면적이 5배나 늘었지만 출하량은 오히려 감소했다. 축산업도 쇠퇴해 우유 생산이 절반으로 줄고 고기와 계란도 1.5배가량 줄었다. 때문에 러시아는 적어도 헤르손까지는 영토를 반드시 확장해야 했다. 침공 이틀 뒤인 2월 26일 러시아군은 운하의 댐을 폭파했고 3월 25일 러시아 타스통신은 크림에 물이 공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셋째, 우크라이나 전 총리 야체뉴크는 “푸틴은 우크라이나 트라우마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서 이미 두 번 실패했다. 오렌지혁명과 유로마이단 때다. 2004년 대선에서 푸틴은 친러 야누코비치 후보를 지원했고 결선투표에서 공공연하게 일어난 부정행위로 인해 오렌지혁명이 일어났다. 그 결과 재선거를 실시하게 됐고, 친서방 유셴코가 승리했다. 2010년에는 야누코비치가 대통령이 됐지만 2013년 유럽연합과 협력협정 체결을 앞둔 그가 러시아의 압박으로 협정을 포기하자 시민은 반정부시위를 벌였다. 그러자 무력으로 시위를 진압했고, 이 과정에서 100명이 넘는 국민이 사망했다. 그는 러시아로 도주했고 탄핵당했다. 그 이후로 푸틴 대통령은 수차례 우크라이나가 ‘반헌법적 쿠데타’로 인해 제대로 된 대통령이 없으며 나라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우크라이나를 침략할 것이라는 확신을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반복적으로 심어줬다. 그리고 개전 후 한 달이 지난 현재 푸틴은 세 번째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넷째,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명분으로 침략을 단행했지만 우크라이나 국민은 2013년에 푸틴이 유럽과 경제협력조차 허용하지 않고 유라시아관세동맹에만 참여하도록 압력을 가한 사실을 기억한다. 또한 러시아가 2차례 가스를 잠그고 심지어 친러 정권에도 유럽보다 비싼 가격으로 가스를 공급하자 러시아가 정권에 무관하게 자국을 경제적으로 러시아에 종속하려 한다고 믿게 됐다.

이런 이유로 우크라이나인들은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정치적·경제적·외교적·군사적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것을 오랫동안 겪으며 러시아의 전면 침공에 대비하게 됐다.

정영주 경상국립대 국제지역연구원 연구교수

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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