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팀장시각] 푸틴의 전쟁이 알려준 것들
뉴스종합| 2022-04-06 11:19

잠깐 한눈 팔면 봄비에 흩어질 목련꽃이 또 피었다. 때 되면 오는 계절이라 처연한 목련에도 아린 마음은 없었다. 이번엔 다르다. 숨 쉬는 게 소중하고, 숨을 거두는 게 이토록 찰나인지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이 우크라이나에서 벌인 전쟁을 통해 알려줘서다. 이 전쟁이 아니었다면 그 나라의 수도를 러시아어 발음인 키예프가 아니라 우크라이나어에 맞게 키이우로 쓰고 불러야 마땅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거다. 또 그곳에 부차(Bucha)라는 도시가 있는지도 관심 밖이었을 게 분명하다. 등 뒤로 두 손이 묶인 채 부차 길거리에 버려진 민간인의 시신은 제노사이드(대량학살)가 메타버스의 시대에도 광기(狂氣)로 가능하다는 점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제재는 말 자체론 근사하게 들리지만 당장 나라가 잿더미가 되는 걸 지켜봐야 하는 입장에선 울화통 터지는 장치다. 제재를 하는 쪽은 여러 나라가 합동작전하듯 논리적으로 움직인다고 폼을 잡지만 효과는 함흥차사다. 중요한 건 제재를 받는 쪽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반성하느냐인데 푸틴은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세계는 흩어진 모래알처럼 단합이 어렵다는 점도 푸틴이 상기시켰다. 시작은 창대했다. ‘민주진영 대 독재’의 대결에서 서방이 압승하나 싶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탈했거나 하려는 국가가 나온다. 독일 입장은 도이체방크의 최고경영자가 군더더기 없이 설명했다.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를 끊으면 독일이 경기침체로 간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의 맏형이 먹고사는 문제로 머뭇거리기에 어떤 러시아 제재가 나와도 천연가스 등 모든 에너지에 대한 전면적인 금수조치는 쉽지 않을 수 있다. 인도, 브라질, 멕시코 등 땅 넓은 민주주의 국가도 러시아를 제재하는 데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사람이 죽어나가도 국제정치판은 냉혹하다는 걸 푸틴은 알고 있었다. 전쟁이 통합 대신 세계질서를 더 큰 분열로 이끌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결과적으로 미국과 EU를 제외하고 아시아에서 러시아 제재에 나선 국가는 한국, 일본, 싱가포르 정도다. 한국은 미국에 확실히 줄을 섰다고 러시아와 중국은 판단할 수 있다. 푸틴의 오판 탓에 러시아는 이제 중국에 경제·외교적으로 크게 의존하게 될 거다. 세계 2위의 군사력이라는 평가가 터무니없을 만큼 형편없는 전력이 드러난 러시아는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됐다. 그야말로 G2인 ‘미국 대 중국’의 경쟁이 한층 격화하는 계기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작용할 수 있다. 푸틴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미·중 사이에 끼인 한국은 강 건너 불구경할 수 없게 됐다.

내로라하는 각국 정상의 리더십·중재능력이 별 볼일 없다는 점도 푸틴의 전쟁이 확인한 흥미로운 사실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 등이 뛰어다녔지만 성과가 없었다. 급기야 지난해 은퇴한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의 등판론까지 나온다. 푸틴이 2014년 크름반도를 병합했을 때 15시간 동안 협상하면서 메르켈이 결국 푸틴의 추가 침공을 막은 전력이 있어서다. 다른 정상과 달리 메르켈은 두 살 위인 푸틴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적이 없고, 두 사람 사이엔 신뢰가 있어 설득해볼 만하다는 관측이다. 전쟁의 교훈은 이만하면 충분하다. 뭐라도 해서 일단 살육을 멈춰야 한다.

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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