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헤럴드광장] 서울에서 그리는 세계항공의 미래
뉴스종합| 2022-04-08 11:27

동유럽의 한 공산국가에서 여행 온 빅터 나보스키(톰 행크스 분)가 미국 존F케네디국제공항에서 9개월간 ‘노숙’하는 줄거리를 담은 영화 ‘터미널(The Terminal).’ 공항이 얼마나 특수한 공간인지 잘 드러낸 이 영화는 1988년부터 2006년까지 샤를드골국제공항에서 무려 18년을 머물렀던 한 이란인의 실화를 모티프로 삼았다고 한다.

공항에는 항공기 사고, 항공 범죄·테러와 밀입국, 불법 출국을 방지하는 보호구역이 있다. 공항시설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구역이지만 영화에서처럼 격리된 무국적자가 오히려 보호받는 역설적인 상황이 될 수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거의 일어날 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1944년 12월 7일 전범국을 제외한 미국, 영국 등 52개국 대표가 시카고에 모였다. 전쟁을 계기로 급격히 발달한 군사항공기술을 민간항공에 접목하는 국제규범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시카고협약, 즉 ‘국제민간항공협약’이 체결되고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출범하는 순간이었다. 앞서 소개한 공항 보호구역 등 항공보안 문제도 이 시카고협약 부속서에 명시돼 있다. 유엔이 1945년 6월 25일 탄생했으니 유엔 산하기구인 ICAO가 먼저 출범하는, 독특한 이력을 갖게 된 셈이다. 전쟁이 끝나지 않고 유엔도 출범하기 전이었으니 평화와 교류를 위해 민간항공에 거는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ICAO는 국제항공 규범을 제정하고 각국이 잘 이행하는지 감독한다. 항행·안전·보안에 대한 글로벌 플랜을 통해 미래 비전도 제시하는 등 세계 민간항공을 총괄한다.

우리나라는 1952년 12월 11일 ICAO 회원국이 됐고 올해 70주년을 맞는다. 전쟁의 폐허 위에 민간항공의 기반조차 없었지만 가입 반세기 만인 2001년 ICAO 이사국이 됐고 국제항공운송 세계 5위와 ICAO 분담금 기여도 7위의 지위에 올라섰다. 또한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수직이착륙과 고속비행이 가능한 무인항공기를 개발했으며, 2025년까지 드론택시(플라잉카) 실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ICAO 가입 당시 국제사회 원조를 받았으나 지금은 개도국 항공 전문인력 무상교육을 비롯해 개도국 항공산업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부터 빠르게 회복하도록 도와주는 ‘ICAO i-Pack’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미래 항공과 민간항공 국제기여 분야에서도 명실상부한 항공선진국으로 성장한 것이다.

마침 시카고협약 발효 75주년이자 ICAO 법률위원회 수립 75주년이 되는 올해 ICAO 국제항공법률 콘퍼런스가 우리나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와 ICAO 모두 그간의 족적을 되돌아보게 되는 때인 데다 우리나라 첫 비행장이 건설됐던 서울 여의도에서 개최돼 의미가 더 깊다.

오는 12~14일 열리는 이번 콘퍼런스를 통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대미문의 위기를 겪고 있는 세계 민간항공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새롭게 나아갈 방향이 잘 모색되기를 바란다. 기후변화와 같은 미래 어젠다, 무인항공기와 같은 미래의 혁신 기술에 대한 솔루션도 제시되기를 희망한다. 바라건대, 이번 콘퍼런스가 지난 2년간 국제항공 사회를 충격과 위기로 몰아넣었던 코로나19에 안녕을 고하는 시그널이 되기를 희망한다.

황성규 국토교통부 2차관

y2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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