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라이프칼럼] 귀하신(?) 농부와 보조금
뉴스종합| 2022-04-19 11:06

우리나라에서 농부는 ‘귀하신(?)’ 몸이다. 농사짓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농림어업조사 결과’를 보면, 농업에 종사하는 농가는 103만1000가구다. 전체 가구 비중은 4.4%, 총인구 대비 4.3%에 불과하다.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귀농하거나 먼저 귀촌한 후 나중에 귀농인(농업인)으로 변신한 이들은 이 ‘귀하신’ 농부가 되는 것이다. 귀하긴 한데 먹고사는 문제가 늘 만만치 않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20년 농가소득은 평균 4503만원이다. 농가소득은 농업소득 외에 농업 외 소득·이전소득·비경상소득을 더한 것이다.

그런데 농가소득 중 주력이어야 할 농업소득이 1182만원(전체 26.2%)으로, 월 100만원이 채 안 된다. 되레 농업 외 소득(1661만원, 36.9%)이 훨씬 많다. 심지어 농업소득이 이전소득(1426만원, 31.7%)보다도 적다. 결국 농가인데도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살기 어려운 구조다. 투잡 등 농외 경제활동을 병행하여야 하고, 이전소득 즉 각종 보조금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전소득은 공적·사적 보조금을 말한다. 2020년 농가 이전소득은 평균 1426만원인데 이 중 공적 보조금이 95%인 1355만4000원에 달했다. 공적 보조금은 해마다 계속 증가해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농민 특히 경지 규모 0.5ha(1500평) 미만의 소농(전체 농가의 51.9%)은 이를 제대로 체감하기 어렵다.

‘눈먼 돈’ ‘못 먹으면 바보’라고 하지만 사실 ‘굵직한’ 농업보조금은 대개 전문농이나 대농들 차지다. 사업계획서를 잘 만들어 일단 생산·재배시설 보조를 받으면 이어 그걸 밑천 삼아 계속 가공시설, 체험·교육시설 보조를 따내는 식이다. 주로 먹는 사람만 계속 먹을 뿐, 소농들에겐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또한 이 과정에서 농업 보조금이 정작 농민 아닌 농자재·건설업체의 배를 불리고, 각종 중간 지원 조직의 인건비로 쓰이기도 한다.

영세 소농들이 ‘내게 직접 주는 고마운 보조금’으로 즉시 체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직불금과 농민수당이다. 소농 직불금은 연 120만원, 농민수당은 지방자치단체별로 연 50만~100만원을 지급한다. 하지만 이런 저런 복잡한 조건에다 현실에서 제대로 지키기 어려운 준수 사항을 대거 요구하는 등 농민을 들볶고 닦달해댄다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영세한 우리나라 농가의 특성상 농외 경제활동을 통한 부족한 소득 충당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소농 직불금의 경우 신청인의 농업 외 종합소득금액이 연 2000만원을 넘으면 면적 직불금으로 전환돼 지급액이 절반 이하로 확 깎인다. 까다로운 조건에 맞추기 위하여 지금까지 함께 농사지어 온 공동 경영주이자 농지 명의인인 아내로 신청인을 바꾸어도 ‘신규 신청’이라며 아예 1년간 직불금 대상에서 제외한다. 탁상행정에다 주먹구구식이다.

2015년 전후 농가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였다. 당시 전 농식품부 장관을 비롯한 일부 전문가는 농가에 월 50만원 등 일정한 기본소득을 보장하자고 제안하였다. 당시에는 좀 무리한 주장으로 여겼는데 12년간 직접 소농으로 살아 보니 지금은 백번 공감한다. 귀하신 농민을 위한다며 선심 쓰는 척하지만 정작 농민(특히 소농)은 소외되고 다른 곳으로 줄줄 새는 농업농촌 예산과 보조금을 개혁하여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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