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1세대 인권변호사’ 한승헌 전 감사원장 별세
뉴스종합| 2022-04-21 08:45
군사정권 시절 시국 사건을 변호에 앞장서며 '1세대 인권변호사'로 불렸던 한승헌 변호사가 20일 별세했다. 향년 88세. [연합]

[헤럴드경제=안대용 기자] 군사정권 시절 시국사건 변호에 앞장서며 ‘1세대 인권변호사’로 불려온 한승헌 전 감사원장이 20일 별세했다. 향년 88세.

1934년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전북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1957년 8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뒤 법무관을 거쳐 1960년 검사로 법조인 생활을 시작했다. 1965년 검찰을 떠나 변호사로 개업하면서 본격적인 ‘인권 변호’의 길을 걸었다.

고인은 군사정권 시절 중앙정보부 등이 주도적으로 발표한 공안사건들을 맡아 변론했다. 1967년 동백림 사건을 비롯해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 1974년 민청학련 사건, 1975년 인혁당 사건 등 반(反)정부 집단으로 내몰린 이들의 시국사건 변호 앞선에 고인이 있었다. 1980년에는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 변호를 맡았다.

고인은 군사정권에서 두 차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을 당한 김규남 의원의 죽음을 애도하는 ‘어떤 조사’라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1975년 구속기소 됐다.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확정됐으나 이후 재심을 통해 2017년 무죄를 받았다. 이 사건으로 9개월간 구치소에 수감되고 8년간 변호사 자격이 박탈되기도 했다. 1980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내란음모 사건 공범으로 몰려 투옥되기도 했다.

고인은 1986년 홍성우, 조영래 변호사를 비롯한 인권 변호사들과 ‘정의실현 법조인회’(정법회)를 결성했다. 정법회를 모태로 198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창립됐다.

고인은 김대중 정부에서 1998~1999년 감사원장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에선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장을 역임했다. 노 전 대통령이 탄핵 소추됐을 때 탄핵심판 대리인단에 참여하기도 했다. 고인은 국민 기본권 보장을 위해 헌신하고, 사법개혁과 사법부 탈권위화 및 사법부의 독립과 법치주의 확립의 기틀을 마련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 대한민국 사법부 70주년 기념행사에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한국기자협회 법률고문과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관훈클럽 고문변호사, 서울시 시정고문단 대표 등을 역임했다.

고인은 인권 변호의 길을 걸어오며 목격한 시대를 기록하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변론사건 실록’을 비롯해, ‘한 변호사의 고백과 증언’, ‘피고인이 된 변호사’, ‘권력과 필화’, ‘한국의 법치주의를 검증한다’, ‘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 등의 책을 냈다. ‘유머의 만인화’가 바람이라던 고인은 ‘산민객담’, ‘한승헌 변호사의 유머기행’, ‘유머수첩’ 등의 에세이를 출간하기도 했다. 문학과도 가까워 ‘노숙’, ‘하얀 목소리’ 등의 시집을 냈다. 민변 사무차장을 지낸 김준우 변호사는 “늘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 자리를 지켜주신 분, 거기 계신 것만으로 늘 힘이 되어주셨던 분”이라고 말했다. 빈소는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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