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일반
佛 20년 만에 ‘여소야대’…마크롱, 재선 두 달 만에 위기
뉴스종합| 2022-06-20 11:23
엘리자베트 보른(위쪽) 프랑스 총리가 19일(현지 시간) 실시된 프랑스 총선 2차 투표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르네상스당을 비롯한 여권 ‘앙상블(Ensemble)’이 과반(289석)에 미달하는 245석을 얻는데 그치자 기자회견을 열고 침통한 표정으로 발언하고 있다. 반면, 135석을 얻으며 ‘제1 야당’ 지위를 얻은 좌파연합 ‘뉘프’(NUPES)의 장뤼크 멜랑숑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대표는 이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지지자를 향해 연설하고 있다. [AFP]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주도하는 범여권이 프랑스 총선에서 과반의석에 한참 못 미치는 의석을 획득하며 패배했다. 프랑스 집권여당이 하원에서 과반의석을 차지하지 못한 것은 20년 만에 처음이다.

이날 결과로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을 맞이하게 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불과 재선 두 달 만에 의회 주도권을 뺏기며 위기를 맞았다.

특히, 프랑스 국민들이 우크라이나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며 내치보단 외치에 초점을 맞춘 마크롱 대통령 대신 은퇴연령 하향과 최저임금 인상 등 ‘민생’ 행보를 강조한 야권의 손을 들어 준 만큼, 향후 마크롱 대통령의 행보도 기존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마크롱 ‘親기업·우크라’ 우선 정책, 野 ‘민생’에 패배=프랑스 내무부는 19일(현지시간) 하원 결선투표 집계를 마무리한 결과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르네상스당을 비롯한 여권 ‘앙상블’이 전체 577석 중 245석을 얻었다고 밝혔다. 이는 하원 의석의 과반인 최소 289석에 44석 모자란다.

프랑스 집권 여당이 하원에서 과반의석을 차지하지 못한 것은 20년 만이다. 지난 2002년 총선에서 당시 자크 시라크 프랑스 전 대통령이 이끌던 우파 여권은 ‘동거정부(출신 정당이 다른 대통령과 총리가 구성한 연립 정부)’를 함께 구성했던 리오넬 조스팽 총리의 좌파 연합을 꺾으며 동거정부에 마침표를 찍었고, 이후 20년간 선거에선 대선에서 승리한 정당이 총선에서도 승리해왔다. 앙상블을 비롯한 중도 진영의 부진 속에 좌우 극단 진영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장뤼크 멜랑숑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대표가 이끄는 좌파연합 ‘뉘프(NUPES)’는 135석을 얻었다. 5년 전 대선 패배 이후 존재마저 위협받던 좌파 세력이 ‘제1 야당’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멜랑숑 대표가 내세운 ▷은퇴연령 60세 하향 ▷최저임금 상향 ▷필수 식료품 가격 동결 등의 민생 정책은 글로벌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위기로 고통받는 프랑스 유권자의 마음을 크게 뒤흔들었다.

연금 개혁과 은퇴연령 65세 상향, 감세 등 ‘친(親)기업’ 정책을 비롯해 민생보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 외교에 더 비중을 뒀던 마크롱 대통령을 향해 프랑스 민심이 심판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멜랑숑 대표는 이날 지지자들에게 “마크롱의 여당은 궤멸했고 우리는 목표를 이뤘다”고 말했다.

마린 르펜 대표가 이끄는 극우 성향의 국민연합(RN)도 89석을 얻는 역대 최고 성적으로 이번 총선의 최대 승리자 중 하나가 됐다. 총선 전 8석에 불과했고 15석 이상 확보로 원내 교섭단체가 되는 것이 목표였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일약 제3 정당으로 발돋움한 깜짝 약진을 이뤄낸 것이다.

르펜 대표도 이날 “확고하게, 책임감 있는 야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협치’ 이젠 마크롱에겐 선택 아닌 필수=마크롱 대통령은 그동안의 통치 스타일을 바꿔 의회와 협치하며 집권 2기 국정을 꾸려가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5년 전 총선에서 350석을 확보하며 의회를 신경 쓸 필요가 별로 없었던 것과 상황이 180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의회 다른 당과 손을 잡지 않고서는 법안을 통과시킬 방법이 없다.

야당은 ‘반(反) 마크롱’ 노선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중도우파 공화당(LR) 역시 “야당 위치를 지키겠다”며 마크롱 정부에 쉽사리 협조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사안별로 협상을 하며 최대한 몸값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 결과가 유럽 전체에 파장이 있을 것이란 분석까지 나온다. 이제 마크롱 대통령이 외교 보다 국내 정치에 더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유럽연합(EU) 등 서방 진영과 보조를 맞춰 가며 우크라이나 지원에 힘을 보태려던 마크롱의 외교 노선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졌다. 멜랑숑 대표는 유럽회의론자이며 친러 성향이고 르펜 대표는 푸틴과 가까운 사이라는 점도 변수가 될 여지가 있다.

향후 프랑스 정국은 마크롱 대통령 진영이 야당의 협조를 어디까지 끌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엘라자베트 보른 프랑스 총리는 “우리가 국내적으로, 또 국제적으로 직면한 위험을 고려할 때 현 상황은 우리 국가의 위기를 반영한다”면서 “당장 내일부터 안정적 지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동윤 기자

realbighead@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