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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지공시지가’ 인상 안하면 ‘로또분양’ 계속된다[부동산360]
부동산| 2022-06-28 10:22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윤석열 정부가 지난 21일 야심차게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이하 분상제) 개선안을 내놓았지만 정비사업(재건축·재개발 사업) 조합원들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개선된 제도를 적용하면 기존보다 분양가가 1.5~4% 상승한다고 하지만 분양가 현실화하고는 거리가 멀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한 대형 건설사 주택사업본부 임원은 “분상제 개선안을 보고 너무 실망했다”며 “이번 개선안으로 인한 공급 확대 효과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분상제는 기본적으로 지자체 분양가심사위원회에서 분양가의 원가 항목에 해당하는 택지비, 건축비, 가산비를 따져 분양가 상한선을 정하는 제도다.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분상제 개선안은 이중 세입자 주거이전비(재개발 사업 대상), 총회운영비 등 정비사업에 필수적인 가산비를 적정 수준으로 반영하고, 최근 급등하고 있는 자재비 상승을 고려해 기본형 건축비를 일정 정도 올려주겠다는 게 핵심이다.

정부가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분상제 개선으로 분양가가 기존보다 최대 4%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4.5%) 보다 높지 않은 수준이다.

정비사업을 추진하던 조합원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다. 분상제 폐지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분양가를 체감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려 주는 방안이 담길 것으로 기대했기 대문이다. “이건 그저 물가인상 수준을 반영한 형식적인 인상”이라고 혹평하는 전문가도 있다.

21일 오후 둔촌 주공아파트 재건축 현장이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돼 있다. 이 단지는 공사비 증가 등으로 조합원이 내야할 분담금은 계속 커지는데, 일반분양가는 처음엔 HUG의 고분양가심사, 나중엔 분상제 적용으로 제한을 받아 삐그덕 거렸다. 결국 사업추진이 손해라고 여기는 조합원이 늘고 추가 공사비를 요구하는 시공사와 갈등으로 이어지고, 결국 1만2000가구 서울 최대 재건축 단지 사업이 중단됐다. [연합]

▶일반분양가 올라야 조합원 부담 줄어= 도시정비사업에서 일반분양가를 높일 수 있다는 건 조합원들에겐 자신들이 내야하는 ‘분담금’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분양 수익을 사업비로 쓰기 때문이다.

재건축·재개발 대상지 주민들이 사업을 추진하는 이유는 현재 ‘집값’에 ‘조합원 분담금’을 더한 금액 보다 나중에 받게 되는 새 집값이 더 높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조합원 분담금은 건설도급비용, 조합운용 비용 등을 조합원 숫자로 나눈 금액이다.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씩 내야 한다.

정비사업에서 사업성이 좋기 위해선 일반분양 수익이 높아 조합원 분담금이 낮아지거나, 사업이 마무리 된 후 받게 될 집값이 현재보다 대폭 높아져야 한다.

앞선 문재인 정부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통해 분양가를 통제하고, 민간택지에 분상제를 시행한 건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조합에겐 치명적이었다. 정부는 결과적으로 재건축 사업장의 일반분양가를 서울은 시세의 60% 수준, 지방은 시세의 80% 수준으로 막았다. 조합원들에겐 자신들이 내야 할 분담금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이고, 일반분양을 받는 수분양자에겐 그만큼 시세차익을 볼 수 있었다는 의미였다. 이른바 ‘로또분양’이다.

전문가들은 현 분상제를 현실화하기 위해선 건축비나 가산비를 조금 올려주는 수준이 아니라 분양가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택지비를 대대적으로 손보는 방법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도시정비사업 분양가에서 택지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강남은 80~90%, 강북은 50% 수준이나 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건 감정평가사들이 도시정비사업을 위해 책정하는 ‘택지비’의 산정 기준이 ‘표준지공시지가’라는 사실이다. 표준지공시지가는 정부가 전국의 과세 대상이 되는 개별 토지 중 대표성이 있는 토지를 선정해 공개적으로 공시하는 땅값이다. 이는 국토교통부 ‘공동주택 분양가격의 산정 등에 관한 규칙’ 시행령에 명시돼 있다. 이 시행령엔 ‘현실화 또는 구체화되지 않은 개발이익을 반영해서는 안된다’는 규정도 있다.

▶낮은 택지비 감정가, ‘표준지공시지가’가 원인= 결과적으로 도시정비사업을 위한 택지비 감정을 할때 표준지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하되 미래 개발 가치를 반영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정부는 만약 택지 감정가가 ‘비교 대상이 되는 표준지공시지가와 현저하게 차이가 날 경우 검증기관인 한국부동산원으로 하여금 해당 감정평가기관에 그 사유를 명시해 다시 평가할 것을 요구’하도록 했다. 택지비를 표준지공시지가와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관리 감독하라는 이야기다.

문제는 표준지공시지가가 아파트 시세와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재건축 추진 단지의 표준지인 ‘잠실엘스’(잠실동 19번지)를 예로들어 보자. 올 1월1일 기준 ㎡당 1985만원으로 공시됐다. 대지면적 3.3㎡당 6550만원 수준이다. 그런데 이 아파트의 전용면적 84㎡(공급면적 109㎡)의 대지 면적(대지지분)은 40㎡다. 24억~25억원에 실거래되고 있는 아파트의 땅값이 고작 7억9400만원(1985만원×40)에 불과하다. 3.3㎡당 매매가는 7575만원인데, 택지비는 2400만원 정도밖에 안된다는 이야기다. 건축물 가격만 3.3㎡당 5000만원 이상이라는 이야긴데 납득하기 어렵다. 땅값이 지나치게 낮게 감정된 데 따른 착시다.

만약 이 표준지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최근 재건축 정비계획 고시가 난 인근 ‘잠실주공5단지’나 분양을 앞둔 ‘진주아파트’의 택지비 감정을 해 일반 분양가를 책정하면 시세 대비 절반도 못미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정부가 이번에 아무리 합리적으로 ‘택지비검증위원회’를 만들어 검증과정을 투명하게 한다고 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감정평가업계 관계자는 “현 분상제 시스템에선 가산비, 건축비를 아무리 올려봤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표준지공시지가가 너무 낮기 때문에 분양가와 시세 차이가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며 “분상제를 적용하는 한 로또 아파트는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민간택지 도시정비사업을 통해 공급물량을 늘리려면 택지비 기준이 되는 표준지공시지가를 대폭 올려야 하는데, 여러 세금 문제와 연관돼 쉽지 않을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민간택지엔 분상제를 폐지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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