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벌써 반년이 지났다. 물리적 진도상으로는 절반이지만 기업의 시계는 좀 다르다. 연말이 아니라 상반기만 지나도 서서히 올해 성과를 점검하고, 벌써 내년 준비에 들어가기도 한다. 최근 들어 대내외 환경도 급변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금리와 물가 상승, 장기화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공급망 차질 등 복합위기에 봉착했다. ‘글로벌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다. 삼성, SK, 현대차, LG 등 대기업은 사실상 비상경영을 준비 중이다. 얼마 전 만난 한 기업 임원은 “한 달 만에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사내 회의에서 2008년 금융위기가 다시 올 수 있으니 하반기와 내년을 단단히 대비하라는 주문이 떨어졌다”고 전했다. 경기에 민감한 건설업계는 무리한 수주는 가급적 자제하는 분위기다.
급변하는 경제환경 속에 기업들의 머리가 더 무거워지고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조사한 7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전망치(92.6)는 1년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기업 10곳 중 3곳이 하반기 투자를 축소하겠다고 했다.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수출에선 상반기에 역대 상반기 기준 최대인 103억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기업의 눈은 늘 현재보다 미래에 있다. 캐시카우(현금창출원)가 있어도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신사업을 계속 만들어내야 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6개월 만의 해외출장 직후 ‘기술’을 세 번이나 언급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시장의 변화와 불확실성 속에서는 확실한 우위의 기술력만이 생존과 성장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곧이어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3나노 반도체 양산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삼성전자도 늘 긴장감에 휩싸여 있다. 기술적 우위의 유지기간이 그리 길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분위기를 정치인들은 이해를 못하는 듯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얼마 전 정치권에서 정유사를 상대로 나온 ‘횡재세’ 언급이다. 유가상승으로 정유사들이 초과 수익을 냈으니 이를 세금으로 더 내놓으라는 것이다. 반도체 등 업종별로 늘 사이클이 있다. 호황기에 벌어들인 자금으로 불황기를 대비한 자금 확보와 신사업 투자를 해야 한다. 정작 기업이 적자로 허덕일 때 손실보전을 해주자는 언급은 없었다. 기업에 대한 이해 수준과 시각이 이 정도라는 것에 개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새 정부가 민간주도성장을 슬로건으로, 기업 환경개선을 위한 여러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를 뒷받침할 입법 과정이 곧바로 이어져야 했지만 국회는 지난 35일 동안 개점휴업이었다. 이제야 지각 개원했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싸늘하다. 자고 나면 터지는 경제 악재 속에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기업으로서는 정쟁에만 몰두했던 국회는 참 한가해 보인다. 이런 가운데 현대차 노조는 4년 만에 파업을 할 분위기이고, 지난 2일 대대적인 집회를 한 민노총도 하투(夏鬪)를 벼르고 있다.
기업이 지금 처한 절박함을 정부와 정치권, 노동계가 공감하고 도와줘야 한다. 결국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핵심은 기업이다. 복합경제 위기와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 잠시라도 멈칫하는 순간 도태된다. 그것이 정글 같은 비즈니스 세계의 냉혹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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