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져
날이 좋아도 흐려도 多좋아...100m 멀다하고 재밌는 ‘사이판’
라이프| 2022-07-19 11:30
드래곤테일 사이판 숨은 여행지. 한국인들이 어느새 ‘용미해안 신비협곡’이라는 한국지명을 붙인다.
티니안 타가비치의 명랑DNA 청소년 다이빙 [북마리아나 관광청 제공]
패블비치 닮은 사이판 골프장

우리가 코로나로 힘겨워하던 2020년 2월 한국을 방문해 우정과 위로를 전하고, 나중엔 한국식 방역으로 가장 건강한 여행지가 된 뒤 최초의 여행안전권역 협정을 한국과 맺은 사이판, 티니안, 로타섬 사람들의 한국 사랑.

남국의 정취·해상레저·역사유적을 제주도의 1/15 면적에 집약해 100m가 멀다하고 재미있고 감동적인 풍경과 스토리가 있는 곳. 바닷물이 해안 절벽 사이 용 모양 협곡에 들어오는 드래곤 테일 등 숨은 매력을 발견한 기쁨. 에메랄드빛 산호바다의 아름다운 경치. 한국징용자 후손들의 해맑은 표정, 방탄소년단(BTS)의 팬 ‘아미’가 된 그들. 강제징용돼 이곳에서 희생된 수천명의 선조들에게 묵념하고, 후손들이 ‘한국 대세’를 자랑하며 속 시원하게 노는 모습을 보여줄수 있었던 점. 사이판의 날이 좋아도, 흐려도, 적당해도, 그 모든 것이 좋았다.

한화월드리조트

▶3색꽃의 환대, 최고의 선셋=인천에서 아침에 떠난 사이판행 비행기가 착륙을 준비할 무렵 창밖으로 티니안섬도 보이고, 캘리포니아 패블비치를 연상케 하는 코랄GC 14번홀도 나타난다. 공항에 도착하니, 또다른 한국발 비행기도 브릿지에 연결돼 있다. 요즘 이곳 관광객 10명 중 7명은 한국인이다.

한화그룹이 스마트하게 만들어놓은 월드리조트로 가는 동안, 연도에는 알리만다 노란꽃, 불꽃나무로 불리는 프레임 플라워 붉은 꽃, 북마리아나제도 깃발에도 나오는 플루메리아의 흰 결실, 삼색 꽃풍경이 번갈아 미소짓는다.

현지인들과 눈이 마주치면 그들은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여장을 푼 뒤 코끼리물폭탄 한바탕 맞고 휴식을 취한 다음, 리조트 인근 산이시도르 비치파크와 슈가덕 해변 사이 찬란한 석양 앞에서 선다. 누구든 영화 주인공이 된다. 습도 낮은 지역임에도 적당한 구름이 끼고, 햇살이 강렬해 노을 번짐이 넓고 다채로우며, 일몰지점 주변으로 적색,주홍, 분홍, 연보라의 스펙트럼을 만든다. 이곳 석양은 세계 최고인 것 같다.

토마호크 스테이크, 새우구이, 양념볶음밥 등 한국 입맛의 글로벌 미식을 즐기며 석양을 감상하는 이곳 서프클럽은 TV예능 ‘맛있는 녀석들’의 촬영무대이기도 하다. 키스하는 연인의 모습 처럼, 서로를 향해 휘어진 야자수와 하트 모양의 조형물이 있어 인생샷 촬영의 예쁜 소품이 되고 있다.

일제 전범들이 자살한 슈사이드클리프 앞 을 달리는 스포츠카

▶걸어서, 페달-엑셀 밟으며 탐험=이튿날 아침 조깅은 해안의 우람한 수목 아래 나무데크길이 잘 조성된 비치로드 해변에서 한다. 길게는 월드리조트~마이크로비치 5㎞, 짧게는 나무데크길만 있는 2㎞ 가량 뛰면서, 맑디 맑은 사이판 아침공기를 흡입한다. 조깅을 끝내고 월드리조트 뷔페에 가니, 동서양 온갖 음식이 가득한데, 특히 안동찜닭과 배추겉절이의 최고 맛을 사이판에서 경험한다.

2일차엔 자전거를 빌리고, 3일차엔 배로 ‘사이판 참새방앗간’ 마나가하섬을 탐험했으며, 4일차엔 스포츠차를 렌트했다. 차 렌트업체는 많고, 자전거는 가라판 시내 ‘바이크샵 사이판’, ‘오토클래스 프로-사이판 바이크’에서 빌린다. 바이크샵 사이판의 친절한 알렉스 사장은 한국인을 위해 애지중지하던 자기 딸의 1200만원짜리 자전거를 흔쾌히 내주었다. 한국인 하이커들이 다치치나 않을까 염려하며 일과도 포기한 채, 한국인 일행을 따라다녔다.

전쟁범죄 일본군이 패망직전 자기 어린아이, 한국징용자까지 밀어 동반자살했다는 자살절벽을 거쳐, 초라한 무기 잔해 만을 남긴 일본군 최후 사령부까지 완만하던 경사는 잠시후 깔딱고개로 급해지고, 페달을 꾹꾹 눌러 밟아야 했던 여행자의 숨도 거칠어졌다.

이런 급경사 서너 개를 거쳐, 한국-중국-일본 방향으로 나있는 반재클리프(만세절벽)에 올라 시원스럽게 펼쳐진 태평양을 굽어보며, 피로감을 씻는다. 만세를 뜻하는 반재는 반제(反帝:제국주의 반대)이기도 했다. 일본군 표석에 한국, 중국, 동남아 관광객들이 껌을 붙여놓았다.

빨간 스포츠카를 빌린 날, 전범들의 자살절벽 앞을 삼원색의 한국인 스포츠카 여러 대가 수시로 지나간다. 방탄소년단은 2018년 이곳에서 푸른색 허머를 렌트했다. 선조들의 영혼이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보았을 것이다.

둥근 해식절벽 사이, 세계최고 다이빙 명소 그로토

▶그로토와 새섬=사이판의 북동쪽은 태평양의 강한 파도에 깎여나가 해식단구 지대가 많은데, 대표적인 곳이 ‘매독곶’이며, 그 중심에 해식 동굴 그로토가 있다.

그로토 전망대에서 초승달 모양의 해안 절벽에 둘러쳐진 곳 한복판, 짙푸른 군청색 바닷물에서 여행자들이 물 안팎에서 노는 모습을 보고난 뒤, 117개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길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느꼈을 설렘이 있다.

수상조끼를 입고 스노클링 장치를 끼고 물속으로 조금 깊이 들어가도 둥근 해식절벽 한복판으로 쏘아주는 햇살 ‘신(神)의 랜턴’ 덕분에 다른 스노쿨링 장소보다 맑고 밝다.

인근의 새섬 전망대는 찻길 옆에 있다. 전망대에 섰지만, 새 모양의 섬이 보이지 않는다. 초행자는 멀리 보이는 곶(串)이 이곳에서 보면 새의 긴 부리처럼 보이기에 “새 모양은 섬이 아니라 곶이구나”라고 착각할 무렵, 김현국 가이드는 거북이 모양의 섬이 새섬이라 일러준다. 바다 속에 있다가 지각변동으로 솟은 산호섬이고, 여기 첫 주인이 새들이라 새섬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당국의 허가를 받아 드론으로 수직촬영하면 섬은 새의 몸뚱이 처럼 생겼고, 강한 파도가 밀려와 포말이 크게 갈라질 때 새가 날개를 펴는 모양이 된다. 근처엔 미니 성산일출봉을 낀 포비든 아일랜드가 있다.

티니안 ‘매운고추 축제’어린이들 한국인의 후손임을 알 수 있다.

▶사이판 드래곤테일과 티니안 한국후손=사이판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경동지괴 지형이라는 점은 한반도를 닮았다. 지대가 높은 동쪽 해안 정글을 20여분 트레킹하면 ‘용맹한 경관’이 나오는데 바로 드래곤 테일이다. 파도는 기암절벽산을 가르고 용 모양의 협곡을 만들어 육지쪽 깊숙이 진입한 것이다. 이 신비한 곳까지 도달하는 정글 트레킹 코스엔 줄 타는 구간도 있어 장갑이 필수적이고, 정글에선 리본 묶인 나무들만 따라 걸으라고 북마리아나 관광청은 당부했다. 3000명 가량의 주민 중 한국계 후손이 40% 가량 차지하는 티니안 섬은 파워맨 추장 타가의 유적, 태평양전쟁의 흔적이 있는 산 호세 성당 종탑, 중심부를 가르는 브로드웨이, 전범 일본을 향한 원폭 비행기 출격지, 자연분수 블로우홀 등으로 유명하다.

티니안의 매운 고추 축제 무대에는 한국인을 닮은 다수의 아이들이 차로모 전통춤을 추며 흥을 돋운다.

명랑, 유쾌, 상쾌한 여행 사이로 스며든 선조들의 고난, 명랑DNA를 간직한 그 후손, 즉 우리 형제-조카들의 이야기가 북마리아나제도 관광을 더욱 두툼하게 한다. 그냥 놀다오기만 했다면 감동이 덜했을지도 모른다. 그 영령들 이젠 안심하시라고, 또, K팝 덕질하는 현지의 우리 조카들이 건강하게 잘 지내라고, 여러모로 반전매력을 안겨주었던 사이판 길을 더욱 시원하게 질주해 본다.

함영훈 기자ㅋ'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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