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우리말 ‘K-합창’이 그래미를 향합니다
라이프| 2022-07-20 11:16
윤의중(왼쪽) 국립합창단 단장과 정경 워너뮤직 코리아 예술경영부 이사 이상섭 기자

하루 유동 인구 150만 명. 전 세계를 사로잡은 K팝 스타들의 얼굴이 간간이 비추는 곳.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K-클래식이 등장했다. 클래식계의 ‘슈퍼스타’로 불리는 연주자들도 아니다. 주인공은 국립합창단. 한복을 입은 합창단원의 하모니를 담은 영상은 지난 11일부터 일주일간 타임스퀘어 전광판을 장식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K팝 뮤직비디오 못지 않은 ‘때깔’에, 장엄한 영상미까지 채워 넣었다. 이는 최근 국립합창단과 세계 3대 음반사인 워너뮤직 코리아가 선보인 ‘보이스 오브 솔라스(Voice of Solace)’ 앨범 영상이다.

“국립합창단이 창단한지 50주년이 다 돼가는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전 세계로 음원을 유통한 적이 없어요.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하고 싶더라고요.” (윤의중 국립합창단 단장)

K-클래식 사상 전에 없던 초대형 프로젝트가 등장했다. 지난달 전 세계에서 동시 발매된 국립합창단과 워너뮤직의 합창 앨범 프로젝트다.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윤의중 국립합창단 단장과 정경 워너뮤직 코리아 예술경영부 이사는 “이 음반은 K-클래식을 알리는 시작이자, 한국 클래식의 새로운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합창단과 세계 3대 음반사인 워너뮤직 코리아가 선보인 합창 앨범 ‘보이스 오브 솔 라스(Voice of Solace)’. [워너뮤직 제공]

국립합창단과 워너뮤직 코리아가 손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 합창의 경쟁력 때문이다.

“성악, 합창 분야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한국을 무시하지 못할 위치에 올라서 있어요. 유럽의 어느 극장에 가도 한국인 성악가가 있고, 합창 역시 우리나라처럼 프로 합창단이 많은 데가 없어 세계 무대에서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윤의중 단장)

워너뮤직에선 국립합창단의 수장인 윤의중 단장의 역량을 높이 샀다. 정경 이사는 “이 음반을 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윤의중이라는 훌륭한 지휘자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합창 지휘자는 대부분 성악가 출신인데, 윤 단장님은 서울예고, 서울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최초의 연주자 출신 합창 지휘자예요. 악기를 다뤘기 때문에 오케스트라와 합창의 지휘가 동시에 가능한 유일한 지휘자인 거죠. 앞으로 정명훈, 금난새에 이어 윤의중의 시대가 올 수 있다는 것이 저희의 판단이었어요.” (정경 이사)

이 음반은 출발부터 거대했다.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말할지 모른다. 누구도 ‘꾸지 못한 꿈’을 향해 첫 발을 디뎠기 때문이다. 정경 이사는 “이번 프로젝트는 국립합창단과 윤의중 단장을 필두로 우리 클래식을 세계로 역수출하기 위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민국 클래식 최초로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고, 스타 프로듀서들이 총출동했다. 최첨단 기술을 동원한 뮤직비디오까지 제작했다. ‘클래식 한류 확산’을 위해서다.

실제로 국립합창단과 세계적인 음반사가 만나자, 규모는 커졌다. 총 제작비만 해도 7억 원. 대중음악 분야에 비하면 약소한 수치지만, 우리 클래식 음악계에선 전무후무한 시도다.

음반 제작을 위해 세계적인 음악감독들이 참여했다. 앨범의 녹음은 그래미 어워즈에서 11개의 그라모폰을 거머쥔 미국 레코드 프로듀서 블랜튼 알스포(Blanton Alspaugh) 감독, 그래미 어워즈 클래식 부문 최고 기술상과 최우수 합창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한 레코딩 엔지니어 황병준 감독이 참여했다.

알스포 감독을 ‘모셔오기’까지 과정은 쉽지 않았다. 본격적인 녹음 이전에 그에게 가녹음본을 보내줬다. “음반에 실린 곡의 가사까지 모두 번역해 음악과 함께 전달”했다. “한 번 들어보겠다”고 했던 알스포 감독은 국립합창단의 음악을 다 들은 뒤에야 한국으로 날아왔다. 세계적인 프로듀서가 보는 국립합창단의 실력은 이미 최정상이었다. 그는 “국립합창단의 소리 퀄리티가 미국과는 상당히 색깔이 달라 매력적”이고, “다른 그래미 수상작에 견줘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피드백을 줬다. 정경 이사는 “한국 클래식의 깊이, 국립합창단 단원들이 만들어내는 한의 정서와 감정이 국적이 다른 나라의 음악인도 사로잡은 것”이라고 봤다.

알스포 감독과의 녹음 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음반은 타이틀곡 ‘새야 새야’(전래동요, 편곡 오병희)를 포함한 창작곡 4곡, 한국 가곡 4곡 등 총 8곡(총 11트랙)이 수록됐다. 코로나19 시대를 지나오며 겪은 어려움을 위로하고, 위안을 건네는 메시지를 담았다.

세계 무대를 겨냥한 음반이 서양의 ‘전통 합창곡’이 아닌 아름다운 우리말로 된 한국 가곡을 담았다는 점에서 의미도 남다르다. 해외 합창단과의 교류, 다수의 세계 무대 경험을 통해 한국 가곡과 합창의 가능성을 확인한 윤 단장의 자신감이 음반에 담겼다.

윤 단장은 “전 세계 연주를 가면 현지인들이 정말 듣고 싶고, 흥미로워 하는 것은 한국 고유의 음악, 다른 문화와 지형에서 생긴 음악이었다”며 “번역의 도움을 받아 가사를 이해하고, 소리의 아름다움으로 감정을 느끼니 언어의 장벽은 높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합창에 있어 언어에 대한 이질감은 사라진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K-클래식을 꽃 피우기 위한 원대한 꿈의 첫 걸음은 ‘그래미 도전’이다. 윤 단장은 “이번 기회가 한국의 시, 한국 작곡가, 한국의 역사를 합창을 통해 알리고, 한국 문화를 퍼뜨릴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정경 이사는 “K-클래식의 기준을 높여 글로벌 무대로 나아갈 수 있는 프로젝트로 국립합창단은 안성맞춤이었다”며 “전 세계인이 따라오지 못하는 상품성을 만들어 새 역사를 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방탄소년단이 전 세계를 사로잡으며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이전 세대의 무수한 시도와 실패 사례가 쌓였기 때문이에요. K-클래식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사명감과 도전 의식을 가지고 시작한 이 시도가 첫 걸음이 될 거예요. 서양의 전유물이었던 팝 음악이 K팝에 의해 완전히 뒤바뀐 것처럼 서양 전유물인 클래식을 한국에 와서 배우고 커리어를 쌓고 싶어하는 문화가 올 거라고 봐요.” (윤의중 단장)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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