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데스크칼럼] 우즈와 소렌스탐이 함께한 주
뉴스종합| 2022-07-21 11:27

“무인전투기 시대가 오면 조종사는 사라질 수 밖에 없어.” 상관의 경고에 전설의 파일럿 톰 크루즈가 받아친다.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오늘은 아닙니다(Maybe so, sir. But not today).” 국내 누적관객수 600만명 돌파를 코앞에 둔 흥행작 ‘탑건: 매버릭’에 나온 화제의 대사다.

최근 인터뷰한 프로골퍼 최경주의 말도 비슷했다. 고단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묻자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 “결국 오늘을 살기 때문에 내일이 준비되는 것 아닐까요. 그저 힘 닿는 대로 오늘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기쁜 마음으로 사는 ‘오늘’이 쌓이면 기대치 않았던 ‘내일’을 선물받게 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영화와 현실 속 베테랑들은 모두 내일이 아닌 오늘을 말하고 있었다.

사실 지난주는 세계 남녀골프의 두 레전드가 14년 만에 동시에 필드에 선, 기념할 만한 한 주였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47·미국)와 ‘골프여제’ 안니카 소렌스탐(52·스웨덴)이다. 우즈의 제150회 디오픈 등장은 떠들썩했지만 소렌스탐의 LPGA투어 출전은 비교적 조용했다. 우즈와 소렌스탐은 2000년대 남녀 프로골프를 압도적으로 지배한, 살아 있는 전설이다. 1996년 프로 데뷔한 우즈는 82승의 PGA 투어 통산 최다승을 썼고, 1994년 데뷔해 2008년 은퇴한 소렌스탐은 72승으로 LPGA투어서 세 번째로 많은 승수를 기록했다.

당시 골프계는 우즈와 소렌스탐을 끊임없이 비교했지만 둘의 우정은 오랜 시간 더없이 도타웠다. 같은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거주하며 함께 연습하는 시간이 많았다. 2001년 이벤트 대회 땐 함께 팀을 이뤄 우승을 합작했다. 소렌스탐이 2007년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에서 처음 열린 브리티시여자오픈에 출전하자 우즈는 올드 코스 공략법이 빼곡한 자신의 야디지북을 직접 건네주며 응원하기도 했다.

지난해 2월 마지막 주엔 둘의 운명이 엇갈렸다. 2008년 은퇴를 선언한 소렌스탐이 13년 만에 투어에 복귀한 그 주, 우즈는 자신이 운전하던 차가 전복되는 교통 사고를 당했다. 소렌스탐은 훈련 중 소식을 접하고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지만 “우즈는 언제나 기적을 만드는 사람”이라며 그가 다시 일어설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돌고 돌아 다시 지난주. 14년 만에 같은 시간 경기를 치렀지만 같이 웃지는 못했다. 우즈는 수술한 다리를 절뚝이며 명예회복을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컷 통과에 실패했다. 갤러리의 기립박수 속에 18번 홀 그린을 향하던 그는 끝내 북받치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반면 소렌스탐은 첫날 1위에 오르는 놀라운 선전을 펼쳤고 최종 28위로 대회를 마쳤다.

소렌스탐은 다음주 대회를 묻는 질문에 빙긋 웃으며 답했다. “다음주는 생각 안 해요. 나는 언제나 ‘한 번에 하루’만 얘기하거든요!” 이는 “몇 년 뒤 올드 코스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어깨를 늘어뜨린 우즈에게 ‘오늘만 생각하라’고 등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선수 인생의 백나인 후반부를 뛰는 이들이 당장 내일 필드를 떠나더라도 이상할 건 없다. 그들은 그저 ‘오늘’에 전력을 쏟을 뿐이다. 거인들의 충실한 오늘이, 당신의 오늘은 어땠느냐고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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