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빗물이 목까지, 남편과 껴안고 버텨”
뉴스종합| 2022-08-10 11:14

“집안에 물이 침투한 정도가 아니에요. 빗물에 쓸려 갈 뻔해서 겨우 살았어요”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 49년째 살고 있는 방금순(68·여) 씨는 지난 8일 오후 9시30분께 집안에 빗물이 차올라 구조요청을 했다. 키 150cm가 채 안 돼 뵈는 방씨는 집안에 빗물이 목까지 차 급류에 쓸려가지 않기 위해 남편과 얼싸안고 버텼다고 했다. 그는 “다행히 구조대원들이 보내준 밧줄을 몸에 칭칭 감고 나서야 구사일생으로 구조될 수 있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소방대원의 구조로 다행히 목숨을 구할 수 있었지만 방씨의 걱정은 이제부터다. 구룡마을에 자신이 운영하는 구멍가게도 피해가 막심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방씨는 “장사가 안 돼 몇 년 째 가게에서 술, 담배만 팔아 생계를 이어갔는데, (그곳도) 지금 난장판 일 것”이라며 “하루 빨리 함께 잔해를 치워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안타까운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이달 8일부터 장시간 폭우가 쏟아져 전국 곳곳에 인명피해와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구룡마을 주민들은 순식간에 자신들의 거처를 잃어 슬픔에 잠긴 모습이 역력했다.

지난 9일 헤럴드경제가 찾은 서울 강남구 구룡중학교 체육관엔 전날부터 구룡마을 주민들을 위한 대피소가 설치됐다. 이날 오후 3시께 찾은 대피소엔 주민들 200여명이 체육관에 깔린 매트리스 위에서 잠을 자거나, 대피소 관계자들이 나눠준 빵을 먹는 등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주민 대부분은 50대를 훌쩍 넘긴 노약자였다. 몇몇 주민들은 서로 전날의 악몽을 공유하며, 자신들이 무사하단 사실에 안도했다. 아직 폭우로 인한 트라우마에 헤어 나오지 못해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었다.

몇몇 주민들은 구급차에 실려 대피소까지 오게 됐다. 70대 여성 A씨는 “전날 비가 차올라 구급 대원이 올때까지 가구에 매달린 채 버텼다”면서도 악몽을 회상하듯 손사래를 쳤다.

서울 강남구청 관계자는 본지에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지만 대피 발령이 언제 해제될지는 모른다”며 “대피소에 있는 주민들에게 아침 점심으로 속옷, 수건 등 구호물자와 생수, 음식 등 생필품을 지원하면서 불편 없도록 최대한 조치 중”이라고 말했다.

대피소 관계자에 따르면 시설을 방문한 몇몇 주민은 집 안에 고인 물을 빼기 위해 구룡마을로 돌아갔다고 했다. 실제 본지가 이날 오후 4시30분께 찾아간 구룡마을엔 주민들이 집안에 남은 진흙과 물웅덩이를 정리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이날 구룡마을로 돌아가던 80대 여성 김모 씨는 “대피소에서 다시 올라오는 길이다. (집안에) 고인 물을 퍼 나르러 왔다”고 말했다. 그는 “내 집 내가 치우지 구청 사람들이 치워주겠나”고 반문하며 “아직 비도 안 그쳐서 집안에 빗물이 계속 차오를텐데 나 혼자 (대피소로) 피하면 상황이 해결 되겠나. 최대한 치우고 늦게 대피소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폭우로 물살이 거칠어지면서 옆면이 뜯긴 판잣집들이 속속들이 보였다. 판자와 담요로 뒤덮인 집들은 이번 폭우에 버티지 못하고 맥없이 무너진 것이다. 이곳 주민들에 따르면 폭우로 물살이 가팔라지면서 물살에 인접한 집들이 대부분이 훼손됐다고 했다.

이날 구룡마을의 한 자택 현관 앞엔 흙 범벅이 된 신발 5켤레가 대야에 담겨 있었다. 빗물에 젖은 옷과 지폐를 말리려 집안엔 선풍기, 공기청정기 등이 켜져 있었다. 젖은 바닥을 말리려 곳곳엔 신문들이 깔려 있기도 했다. 이 자택에 거주하는 이정자(58·여) 씨는 “자다가 벼락 맞은 꼴”이라며 “(8일) 새벽부터 오늘(9일) 저녁까지 쉬지 않고 물을 밖으로 퍼 날랐다”고 하소연했다.

주민들은 다음을 걱정하고 있었다. 앞으로 어떠한 자연재해가 닥쳐올 때마다 이번 폭우 사태의 악몽을 떠올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구청 측에서 수해를 예방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대피소에 있던 구룡마을 거주민 김재승(55) 씨는 “앞으로 이런 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튼튼한 건축물과 충분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김영철 기자

yckim645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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