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사건 속으로] ‘6조→2800억’…민·관 협업으로 선방한 론스타 분쟁
뉴스종합| 2022-09-08 10:01
법무법인 태평양의 김준우 변호사(왼쪽)와 김우재 변호사. 태평양은 론스타가 제기한 6조원대 ISDS에서 우리 정부를 10년간 대리하며 청구금액의 4.6%만 인정되는 좋은 결과를 받는데 기여했다. [태평양 제공]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전부 승소를 하지 못한 점은 유감이지만 지난 10년간 법률자문단으로서 정부를 대리해 최선을 다해 대응했다. 정부가 적극 추진하기로 한 집행정지 신청을 뒷받침하고 끝까지 노력하겠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우리 정부가 10년간 벌였던 6조원대 투자자-국가 간 국제중재(ISDS) 사건은 법무법인 태평양이 장기간 뒷받침했던 사건이었다. 태평양은 이번 분쟁에서 해외 국제 중재 경험이 많은 김준우 변호사와 김우재 변호사가 주축이 된 대응팀을 꾸렸다. 금융분야 서동우·양시경·이재인 변호사와 김영모 외국변호사, 조세 분야의 유철형 변호사와 김혁주 세무사, 장승연 외국변호사, 국제통상 분야 권소담 변호사와 정규상 외국변호사도 협업했다.

10년 분쟁 ‘선방’ 이끌어내며 노하우 축적…“인생 건다는 생각으로 싸웠다”

태평양은 2012년 11월 론스타가 국재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중재 신청을 한 이후 미국 로펌 아놀드앤포터(Arnold & Porter)와 공동으로 우리 정부를 대리했다. 우리 정부는 론스타 외에도 여러 건의 국제중재 사건 당사자인 상황이다. 실제 이란의 다야니 가문에게 730억원대 배상금이 인정된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론스타 사례는 6조원대에 달하는 청구금액 외에도 금융위기 이후 ‘외환은행 헐값 매각’ 논란으로 상징성이 훨씬 큰 사안이었다. 분쟁 초기부터 실무를 맡은 김준우 변호사는 “인생을 건다는 생각으로 싸웠다”며 “사건 규모, 복잡성, 난이도, 기간 등으로 인해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었지만 모두가 개척자 정신으로 임했다”고 말했다. 론스타는 우리 정부에 46억8000만 달러(약 6조1000억 원)을 청구했지만, 실제 배상책임이 인정된 금액은 4.6% 정도인 2억1650만 달러(2800여억 원)에 그쳤다.

태평양은 10년 간의 론스타 분쟁을 통해 정부와 협업하는 노하우를 축적했다.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관련 형사 사건의 수사 및 재판기록과 론스타가 관련된 다른 사건의 중재 기록을 모두 분석했다. 특히 10여건이 넘는 론스타의 조세 소송기록과 2003~2012년까지의 금융당국 문서, 세무서 과세처분 문서를 확보해 데이터를 구축했다. 분쟁이 장기화되면서 정부 담당자들도 계속 바뀌었지만, 대응전략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도 초점을 맞췄다.

태평양의 서동우 대표변호사는 “론스타 분쟁이 국제중재의 중요성을 체감한 계기가 된 만큼 우리 전문가들의 역량을 더욱 강화하고, 쉰들러가 제기한 ISDS 사건에서 정부 대리 업무에 만전을 기해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밝혔다. 스위스에 본사를 둔 승강기 업체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 유승증자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잘못으로 손해를 입었다며 1억9000만 달러(약 2618억원)를 요구하고 있다.

2800억도 못 준다… 2라운드 접어든 론스타 분쟁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 판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

“론스타가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점에 비춰 보면 단순히 ‘먹고 튀었다(Eat and Run)’를 넘어 ‘속이고 튀었다(Cheat and Run)’고도 볼 수 있다.”

법무부가 공개한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판정 요지에는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주가조작을 한 대목이 그대로 기재돼 있다. 론스타가 청구한 금액의 극히 일부만 인정된 데에는 우리나라 검찰이 외환카드 주가조작 정황을 밝혀낸 게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과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은 무죄를 확정받았다. 반면 론스타가 외환은행 인수를 위해 외환카드 주가를 조작했다는 혐의는 반전을 거듭했다. 유회원 론스타 대표는 1심 징역 5년,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대법원은 유죄취지로 파기환송 판결했고, 최종적으로 2012년 2월 징역 3년형이 확정됐다. 이때 주가조작 혐의 활로를 열었던 대검 중수부 소속 한동훈 검사는 현재 법무부장관으로 론스타 중재에 불복해 판정 취소에 나서기로 했다. 당시 론스타 수사팀에 참여했던 윤석열 검사는 대통령이 되었고, 조상준 검사는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이복현 검사는 금융감독원으로 재직 중이다.

정부가 중재 판정에 대해 취소 신청을 하면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서 3명으로 이뤄진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다시 살펴본다. 서면, 공판, 심리 등을 새로 진행하게 되는데 최소 1년 이상 소요된다. 법무부가 지난 10년간 판정 취소 사례를 분석한 결과 10% 정도 사건에서 일부 또는 전부가 취소됐다. 불복해 더 좋은 결과를 얻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셈이다.

법무부는 이번 론스타 판정 소수의견에서 우리 정부의 책임을 ‘0원’으로 산정한 대목에 주목하고 있다. 판정문 요지를 보면 중재판정부 소수의견은 “금융위 증인 및 내부문건들을 보면 금융위가 매각 가격인하 행위를 지시했다는 증거를 전혀 찾을 수 없고, 일관되게 매각 가격은 계약 당사자들 사이에서 자율적으로 정해져야 한다는 입장으로 보인다”며 외환은행 매각 지연에 우리 정부 책임이 없다고 판시했다.

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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