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디지털포렌식, 기업간 분쟁 리스크 줄이는 첩경” [법조 이사람]
뉴스종합| 2022-09-08 11:11
문무일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가 5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있다. 임세준 기자

“미국 같은 나라에선 300년 전부터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왔습니다. 소유-경영이 분리되려면 소유자와 경영자 사이를 메꿔주는 신뢰의 툴(tool)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야기는 많지만 아직 잘 안 되고 있으니 우리가 그 신뢰의 툴이 돼 보자고 과거 함께 일했던 분들과 뜻을 모아 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검찰총장 퇴임 후 3년 만에 법무법인 세종에 합류한 문무일(61·사법연수원 18기) 대표변호사는 “포렌식은 형사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 전 분야에 필요하다”며 검사 시절부터 자신의 ‘전공’이던 디지털 포렌식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문재인정부 첫 검찰총장을 지낸 그는 대검 디지털포렌식센터(DFC) 설립에 관여한 과학수사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기업 내에서 생긴 다툼이나 기업 간 분쟁이 생겼을 때 포렌식으로 자체 점검을 먼저 하고 대비에 나서면 리스크를 줄일 수 있고, 법정으로 가지 않더라도 명확한 분쟁 해결책이 된다고 설명한다. 문 대표는 “형사 분야 외에 민사, 행정, 기업 거래 분야에도 포렌식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문 대표의 합류 소식이 알려지면서 로펌업계에서는 세종이 특수수사 사건을 비롯한 형사사건 송무·자문은 물론, 포렌식 업무 전반의 대응력이 강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2008년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센터 설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이가 문 대표이기 때문이다. 2005년 새로 만들어진 대검 과학수사2담당관 자리에 문 대표가 발탁되면서 대검 디지털포렌식센터 설립은 급물살을 탔다. 당시 문 대표는 국내에서 독자적인 포렌식 기술을 개발해야 ‘수사 주권’을 지킬 수 있다고 강조하며 다른 부처 설득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문 대표는 문서 시대에 문자를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듯, 사회가 디지털화하면서 문서를 추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수사와 재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이야 매우 당연하게 활용되지만 당시만 해도 검찰 내에서조차 디지털포렌식은커녕 포렌식이란 말도 익숙지 않은 검사들이 많던 때였다. 문 대표는 “프로그램 짜는 분들, 사이버 보안 하는 분들, 컴퓨터 공학하는 분들 등등 해서 컴퓨터 관련 교수님은 거의 다 만났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2019년 검찰총장 퇴임 후 모교인 고려대에서 컴퓨터학과 석좌교수를 맡았던 것도 문 대표의 이러한 관심사가 반영된 행보였다. 대법관, 헌법재판관이나 법무·검찰 고위직을 지냈던 법조인들은 퇴직 후 법학전문대학원이나 법대에서 석좌교수를 맡는 게 일반적이다. 전직 검찰총장이 컴퓨터학과에서 석좌교수를 하는 건 이례적인 셈이다. 이같은 행보는 본격적인 로펌 생활을 세종에서 시작하는 계기로도 이어졌다.

문 대표는 “작년 가을에 고대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컴퓨터 윤리학’이라는 강좌를 맡아서 70% 정도 강의를 했다”며 “4차 산업혁명 관련 자료를 보면서 컴퓨터, 법과 윤리를 어떻게 매칭하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세종에서도 이 분야의 필요성에 공감했고 열린 마인드였다”고 했다. 8월 세종에 합류한 그는 “세종이 미래를 대비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로펌으로 탈바꿈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며 “4차 산업혁명에 맞는 스터디그룹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한 상태”라고 밝혔다.

문 대표는 세종에 합류하기 전 ‘투명경영연구소’라는 경영 컨설팅 기관을 설립했다. 과거 대검 특별수사지원과장 시절 만들었던 회계분석 수사팀과 디지털 분석팀에서 함께 일했던 전문가들이 다시 모여 의기투합 했다.

문 대표는 회계 분석과 경영상태 점검으로 소유-경영 분리를 활성화하면 기업 경영은 물론 사회적 투명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란 포부를 밝혔다. 이 연구소도 문 대표가 설립했지만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세종과는 전혀 별개의 법인이지만, 필요에 따라 문 대표를 가교로 업무를 협력한다는 계획이다.

문 대표가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때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던 검·경수사권 조정이 지난해 시행되면서 형사사법제도는 크게 바뀌었다. 더불어민주당이 검찰 수사권 제한을 골자로 한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을 개정하고, 법무부가 이를 보완하기 위해 대통령령 개정을 추진하면서 형사사법제도는 1년 8개월 만에 또 한 번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문 대표는 지난해부터 시행되고 있는 형사사법제도를 두고 “무엇보다도, 범죄를 딱 잘라 범주화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현행 제도가 검사의 직접수사 가능 범죄를 ‘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범죄, 대형참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정하고 있는데 이런 식의 분류 자체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10일부터는 ‘부패범죄, 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축소되는데 범죄 분류를 두고 이미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문 대표는 “어떤 범죄자가 분류된 범죄만 하나. 하다 보니 그런 범죄가 생기는 것 아니냐”며 “문언에 ‘~등’이 있냐 없냐가 문제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10일부터 시행되는 수사 개시 검사-기소 검사 분리를 두고서도 “논리적으로 재판과 판결 선고를 분리하는 게 가능하냐”며 “국민들을 상대로 혹세무민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 대표는 30년 가까이 몸담았던 검찰에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검찰에 하고 싶은 말을 묻자 문 대표는 “중립을 하면 공정은 따라온다”며 “첫째도 중립, 두번째도 중립, 세번째도 중립”이라고 강조했다. 2019년 5월 검·경 수사권 관련 기자간담회 도중 당시 총장이던 문 대표가 ‘검찰이 정권에 휘둘린 것 아니냐’는 질문에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양복 재킷을 벗어 흔든 것은 유명한 일화다. 당시 문 대표는 “뭐가 흔들립니까? 옷이 흔들립니다. 어디서 흔드는 겁니까”라고 말했다. 누가 검찰을 흔들었는지 봐달라는 ‘퍼포먼스’였다.

문 대표는 “정치적 중립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의 중립을 의미한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약자의 편을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검찰의 잘못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형제복지원 사건을 비롯한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던 첫 검찰총장이기도 하다.

문무일 대표변호사는 ▷광주제일고 ▷고려대 법대 ▷사법연수원 18기 ▷대구지검 검사 ▷대검 특별수사지원과장 ▷대검 과학수사2담당관 ▷대검 중수1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대검 선임연구관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 ▷서울서부지검장 ▷부산고검장 ▷검찰총장 ▷고려대 정보대학 컴퓨터학과 석좌교수 ▷투명경영연구소 의장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

안대용·박상현 기자

dand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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