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중국은 시진핑 아닌 공산당의 국가…선입견으로는 안 보인다”
뉴스종합| 2022-10-14 11:32
조영남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부원장이 12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남들은 그렇게 안 볼지 모르더라도 혼이 들어가 있는 책이에요.”

30년간 중국 정치를 연구하고 17권의 저서를 써 내려간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학자의 좁은 연구실은 삼면을 꽉 채우고도 넘치는 책과 직접 발로 뛰며 수집한 자료가 가득했다. 평소에도 중국 관련 외교관이나 중국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조언을 구할 때 가장 먼저 찾는 중국 현대 정치의 권위자, 조영남 서울대 국제대학원 부원장은 제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를 앞두고 더욱 바쁘다.

지난 12일 헤럴드경제가 만난 조 부원장은 최근 발간된 저서 ‘중국의 통치체제 1·2권’을 가리키며 ‘시뻘건 벽돌’을 내놓아서 미안하다며 웃었다. 조 부원장의 책은 두 권 합해서 1356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지만 어느 한 부분 저자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책 표지와 디자인은 10번 이상 수정을 거쳤고, 컬러 사진만 150매가 삽입됐다. 복잡한 정치 체제를 독자가 쉽게 이해하기 위해 사용된 도표의 출처 역시 모두 조 부원장이다. 이윤을 남기기 위한 목적이라면 세상에 나오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책이지만 고집을 꺾지 않았다. 조 부원장은 “제 책은 최소한 20~30년은 읽힌다는 목적으로 썼다”고 말했다.

[21세기북스 제공]

현대 중국 정치 연구의 길을 걸어온 학자의 순수한 열정과 꼼꼼한 성정이 책 곳곳에 스며들어있다. 한 학자의 일생이 담긴 방대한 연구를 그의 노고에 비해 독자가 이렇게 쉽게 엿보아도 되나 싶을 정도다. 조 부원장은 책 이야기가 나오자 독자에게 쉽게 전달되는지, 독자가 쉽게 읽을 수 있는지 재차 물었다.

현대 중국 연구 시리즈의 첫번째인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3부작, 두 번째인 ‘중국의 엘리트 정치 : 마오쩌둥에서 시진핑까지’가 전문가 독자를 위한 것이었다면, 이번 세 번째 시리즈 ‘중국의 통치 체제’ 3부작은 중국에 관심이 있는 학생, 학자, 언론인, 기업, 공무원 등을 위한 책이다. 그는 열여덟번째 저서 ‘중국의 통치 체제’ 3권 ‘국가 헌정 체제’를 준비 중이며, 네 번째 시리즈인 ‘중국의 이데올로기’, 다섯 번째 시리즈인 ‘중국 현대 정치사’를 계획하고 있다. 이는 15년 전 계획한 일로, 정년까지 그의 저서 계획은 빼곡하다.

정치권이나 언론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가 강연 형식의 방송에 출연했던 것도 중국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달라는 요청 때문이었다. 중국 개혁·개방 40주년이었던 2018년에는 JTBC ‘차이나는 K-클라스’에 출연했고, 공산당 100주년인 지난해에는 EBS ‘클래스-e’, KNN ‘최강1교시’ 등에 출연해 중국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 역할을 해왔다. 이번 인터뷰 역시 제20대 당 대회를 앞두고 어렵게 성사됐다.

“‘저 집단은 문제가 있다’고 보면 안 보여…객관에 근거해 종합적으로 봐야”

조 부원장은 중국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중국에는 반드시 문제가 있을 것이고, 당내 갈등이, 분파가 있을 것이고, 저 과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3연임)이 최초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엄청난 의미가 있을 것이고…. 팩트에 근거하지 않고 자신의 기존 관점에 근거해 추측을 제기하는 시각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이번 당 대회에서 시 주석은 3연임이 공식화되면서 ‘시진핑의 대관식’, ‘일인 체제 공고화’라는 제목의 기사를 많다. 조 부원장은 “집단 지도 체제와 일인 체제의 차이가 무엇이냐, 혼자 다 결정한다는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없다”며 “정치국도 월 1회 열리고 정치국 상무위원회도 주 1회 열리고 있다. 중요한 것은 시진핑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다 표결한다”고 말했다. 그는 3년 전 ‘중국의 엘리트 정치’ 저서를 통해 집단 지도 체제에 대해 상세히 다뤘다.

‘집단 지도 체제 개념이 낯설어서 그런 것 같다’는 물음에 조 부원장은 “‘저 집단은 문제가 있다’고 보니 안 보인다”고 진단했다. 그는 헤럴드경제와의 앞선 인터뷰에서 후진타오는 ‘분산형 집단 지도 체제’, 장쩌민과 시진핑은 ‘집중형 집단 지도 체제’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번 20차 당 대회에서 시진핑의 권한이 세질 것이 당연하다.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문제는 시진핑의 권한이 세느냐 약하냐가 아니라 중국의 엘리트 정치 체제가 바뀌느냐 안 바뀌느냐”라고 강조했다. 이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 ‘당 주석’직 부활과 ‘당내 최후결정권’ 부여 여부를 꼽았다.

조 부원장은 “중국에 대해 선입견이나 가치적 판단에 근거해서 보기 시작하면 안 보인다”며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고, 동시에 종합적으로 보면 달리 보일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중국의 편에 들거나 혹은 중국을 비판하는 이념적 판단의 영역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나라를 객관적인 근거를 가지고 정확하게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학자로서의 소신이다.

조영남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부원장이 12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중국, 아직 원래의 모습도 찾지 않아…더 가야 한다”

30년간 중국 정치를 연구해온 학자가 바라본 ‘중국’은 어떤 나라일까. 조 부위원장은 이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저서 서문에서 중국을 연구할수록 숲을 헤매는 느낌이었다고 고백했다. 이에 ‘가깝지만 이렇게 모르는 중국을 볼 때 우리가 꼭 염두에 둬야 하는 부분은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바꾸었다.

조 부원장은 중국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문명대국 ▷끊임없이 변신하고 자기 적응하는 독특한 사회주의 국가 ▷사회경제적으로 강대국으로 근대화된 국가 등 세 가지가 결합된 나라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은 항상 역사의 중심이었고, 그 중심에서 내려온 것은 딱 100년밖에 안 된다”며 “중국은 아직 원래의 모습도 찾지 않았다. 더 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역사도 깊고 문화도, 철학도 있고, 세계관도 분명하다”며 “단순히 땅덩어리만 크고 인구만 많은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문명대국, 이것이 하나의 중국의 모습”이라고 봤다.

또 하나는 “이념적·체제적으로 당원이 자기 변신을 하면서 현실에 적응해가는, 굉장히 독특한 사회주의 국가”라며 “중국은 ‘시진핑의 국가’가 아닌 ‘공산당의 국가다. 공산당 체제를 이해하지 못하니 사람을 통해 보려고 하면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행정체제와 사회 통치체제가 굉장히 정비가 잘 돼 있는 의미에서 현대화된 국가”라며 시각을 달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민주국가’나 ‘선진국가’라는 의미가 아니라 기층 가버넌스가 작동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이외에도 인권 탄압 문제와 강경한 외교 등도 언급했다.

조 부원장은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 정치학과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부터 서울대 국제대학원 국제학과 교수로 재직한 지 10년째에 부원장 보직까지 맡고 있다. 강의와 연구지도, 집필 작업까지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지만 보직을 맡은 이유는 후배 교수들의 시간을 뺏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