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가 이익을 높이는 것은 싸게 돈을 조달해 높은 수익률로 굴리는 데에 있다. 가장 저렴하게 돈을 조달하고 이자비용이 들지 않는 것은 ‘주식’이다. 한때 현대차 시가총액을 넘어설 정도로 시장의 총애를 받았던 카카오뱅크와 상장일 시총 25조원으로 KB금융을 넘어섰던 카카오페이는 시작부터 높은 이익을 시장으로부터 얻어간 셈이다.
투자는 혁신에 대한 믿음에서 나왔다. ‘26주 적금’ ‘모임통장’ 등 발랄한 상품을 선보인 카카오뱅크와 공인인증서 없이 6개의 숫자나 지문으로 간편 결제를 가능토록 한 카카오페이. 기술과 마케팅으로 무장한 플랫폼기업의 혁신은 “더 성장할 것”이란 시장 믿음을 키우기에 충분했다.
카카오에 분노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카카오 플랫폼은 지난 1년여간 꾸준히 그 믿음을 깨왔다. 상장 초기 카카오페이와 카카오뱅크의 경영진은 주가가 치솟았을 때 가장 먼저 이익실현을 하고 나와 개미들의 눈물을 쏙 뺐다.
‘은행이 아닌 플랫폼’이라며 마케팅을 해 주가를 높인 카카오뱅크의 올 상반기 수수료 수익(플랫폼 비즈니스)은 170억원, 이자수익(뱅킹비즈니스) 4179억원의 25분의 1이다. 사실상 ‘플랫폼이 아닌 은행’이다.
게다가 주가가 빠지자 이번엔 우리사주를 취득한 구성원의 손실보전을 위해 100억원 규모의 기금을 모집해 대출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6월 말까지 카카오뱅크의 순이익은 1238억원, 번 돈의 10%를 내부 직원을 위한 비용으로 쓰겠다는 것이다. 일반투자자에 대한 무시는 물론 금융사가 앞서 ‘투자는 자기책임’ 원칙을 훼손하는 것과 같다.
이번 화재가 잘나가는 회사의 불우한 사고로만 여겨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카카오 플랫폼은 기본과 원칙을 훼손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성장한 플랫폼기업이 ‘데이터 분산’에 나서지 않았다. 그간 사용자가 쌓아준 이익이 개발자 몸값은 높였지만 사용자의 데이터보호를 위한 투자로는 이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판교가 아닌 서울 상암과 부산에 데이터센터를 둬 화재의 큰 피해가 없었던 카카오뱅크마저도 17일 주가가 5%이상 급락한 것은 이처럼 카카오 생태계에 대한 투자자 믿음이 꺼졌기 때문이다. 화재 후 카카오 4형제(카카오,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카카오게임즈)의 시총은 하루 새 2조원이 날아가며 37조원대다. 18일 반등으로 거래를 시작했지만 연초 시총이 111조원가량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3분의 1 토막 수준이다.
카카오 플랫폼은 ‘기술과 사람’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 카카오뱅크의 철학은 ‘내(사람)가 중심이 되는 은행’이고 카카오페이는 ‘마음놓고 금융하다’다. 아이러니하게도 상장 1년여 만에 시장(사람)은 그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마음도 놓을 수 없게 됐다.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아무리 강하게 보이는 기업이라도 기본과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무너진다”고 말했다.
실적이나 목표보다 추구하는 궁극적 목적을 먼저 정하고, 이윤은 어디까지나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조언이다. 혁신은 옳다. 그러나 높은 이익을 쌓으며, 기본과 원칙을 잃어버리면 무너진다. ‘기술과 사람’ 가운데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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