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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블랩스 “‘K-바이오신화’ 쓰려면 자동화가 필수죠”
뉴스종합| 2022-11-16 07:01
신상 에이블랩스 대표가 인천 송도에 있는 사옥 입구에서 액체 핸들링 로봇 ‘노터블’을 소개하고 있다. [에이블랩스 제공]

많은 지표가 국내 제약·바이오산업, 소위 ‘K-바이오’의 전망에 대해 희망을 품게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바이오기업들이 위탁생산(CMO), 위탁개발생산(CDMO) 경쟁력을 키워 매출 면에서 급성장하고 있다. 체급을 키운 제약사들은 혁신신약의 문을 두드릴 수 있게 됐다. 바이오벤처들도 기술수출 등의 크고 작은 승전보로 희망을 보탠다.

백조의 우아한 날갯짓에 가려진 수면 아래의 쉼 없는 발짓을 보자. 이름만 대면 알만한 굴지의 바이오기업들도 현실은 연구원들의 ‘무한 파이펫팅’에 기대고 있다.

파이펫으로 시약을 검체로 옮겨 주입하는 파이펫팅은 연구개발(R&D)의 기본이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 반복작업으로 인해 아까운 시간을 많이 축낸다는 점이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보니 정확도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셰프를 꿈꾸며 유명 요리학교를 졸업한 유망주들이 하루종일 식당에서 설거지만 하는 것과 같다.

연구진들이 무한 파이펫팅에서 벗어나 더 높은 수준의 연구에 전념하고, 파이펫팅의 정확도를 높이려면 자동화가 필수다. 신상 에이블랩스 대표도 자동화 문턱을 넘어야 ‘넥스트 스텝’이 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액체 핸들링 로봇에 도전했다.

신 대표는 “본래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연구를 아웃소싱하는 형태의 플랫폼 창업을 생각했는데, 그러자면 자동화 시스템이 필수였다. 그런데 국내 바이오기업이나 연구하는 분들은 자동화경험 자체가 없었다. 자동화 비중은 전체 연구의 5%도 안 될 정도”라며 “먼저 연구진의 자동화경험을 높여야겠다는 생각에 우리가 직접 자동화기기를 만들자고 생각했다”고 창업 동기를 밝혔다.

기존에도 액체 핸들링 로봇이 있었지만, 국내 연구소에서는 거의 쓰여지지 않았다. 이 로봇의 톱티어는 정밀기계로 유명한 독일이나 스위스산. 고가의 정밀부품이 들어가는데다 독일, 스위스의 인건비가 포함되다보니 한 대에 5억, 6억원을 호가할 정도로 비쌌다. 비싼 값인데도 고객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기계 세팅이나 AS를 할 때마다 독일, 스위스에서 엔지니어가 직접 와야 해 1000만원은 족히 들었다. AS가 끝날 때까지 일주일은 손을 놓고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세팅한 기계가 수행하는 기능은 한 두 가지가 전부다. 신 대표는 “자동화 세팅을 해보면 ‘첨단산업 시대라는데, 이것밖에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 했다.

에이블랩스가 만든 액체 핸들링 로봇 ‘노터블’은 시약을 한번에 여러개에 나눠 정량을 자동으로 내보내게 만들어졌다. 미세한 압력을 감지하는 센서가 있어 용액의 특성에 맞춰 빨아들이고 내보내는 속도를 자동으로 조절한다. 액체의 수위를 감지해 적정한 깊이만큼 파이펫을 담그기도 하고, 누수나 막힘도 감지할 수 있다.

에이블랩스는 사용자 친화성 측면에서 기존 제품과 차별화 했다. 가장 큰 차이는 세팅을 사용자가 직접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 대표는 “기존 자동화기기 제품은 공정자동화라고 해서 버튼 한번 누르면 동일한 전체 공정이 진행되게 돼 있다”며 “바이오에서는 이런 개념을 벗어나야 한다. 바이오 실험은 언제, 어느 타이밍에 시약을 얼마나 주입해야 할 지 매번 달라진다. 결과값에 따라 다음에 주입해야 하는 것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유연하게 프로세스를 변동시켜야 하는데, 그러려면 공정자동화로는 안 된다는 것. 그래서 에이블랩스는 첫 세팅부터 중간 과정마다 수정까지 사용자가 직접 할 수 있게끔 사용자 친화성을 극대화 했다.

가격은 기존 제품의 10분의 1 수준까지 낮췄다. 신 대표는 “기존 제품은 나노 단위까지 다룰 정도로 정확도가 나오는데, 바이오에서는 마이크로 단위도 충분하다”며 “초고가의 정밀 부품을 쓰지 않고도 정확도를 낼 수 있도록 제어기술을 끌어올리는데 주력했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만드는 하드웨어는 중국에서 역설계 하면 6개월 안에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어기술 만큼은 쉽게 따라올 수 없습니다. 액체 핸들링 로봇은 하드웨어 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이 다 융합돼야 하고 바이오까지 알아야 합니다. 이런 융합과 제어기술을 갖추는데 집중했습니다.”

에이블랩스는 사용자 편의성을 강화한데 이어 제품군을 다양화 하고 있다. 연구기관마다 정확도부터 한 번에 처리 가능한 작업량 등 중요하게 보는 것이 다른 만큼 시장공략을 달리 한다는 것이다. 신생기업이 기술 연구개발부터 제조업으로서의 난관을 뚫고 이만한 성과를 내기까지 2년여도 걸리지 않았다.

지난해 2월 설립된 에이블랩스는 시드투자 5억원과 액셀러레이터(창업기획자) 퓨처플레이 등으로부터 30억원의 프리 시리즈A 투자를 받았다. 과천시 창업아이디어 경진대회와 스타트업 서바이벌 프로그램 유니콘하우스에서 우승하며 성장성도 입증했다.

국내에서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에이블랩스의 장비를 도입했다. 자동화 장비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관심이 높다.

신 대표는 “미국 등 선진국은 인건비가 비싸고, 설비 운영비용이 비싸 자동화수요가 더 높다”며 “내년 미국 현지법인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은 가장 큰 시장인데다 제품 기능을 최우선 고려하므로 오히려 신생기업이 진입하기에 오히려 좋다”고 밝혔다.

글로벌 진출의 첫 타깃은 미국, 이후 동남아를 유력한 시장으로 보고 있다. 신 대표는 “동남아는 자동화 수준이 아직 낮고 경쟁사도 적다.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고객사와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 했다.

에이블랩스는 실험실 자동화 수준을 높이기 위해 로보틱 암, 자율주행로봇 등도 연구하고 있다. 연구를 바탕으로 실험실 자동화 플랫폼을 구현하는 게 목표다.

신 대표는 “삼성이나 애플 등 IT제품을 잘 만드는 기업들이 새로운 아이템을 선보였을 때 기존고객들이 자연스럽게 유입되는 경우가 많다. 당사의 제품을 써본 고객이라면 실험실 자동화 플랫폼 등에도 관심이 이어질 것”이라 자신했다.

도현정 기자

kate0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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