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사설] ‘코인판 리먼 사태’ 대비해야 한다
뉴스종합| 2022-11-15 11:22

세계 3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미국 FTX 파산 후폭풍이 심상치 않다. FTX의 부채 규모가 최대 500억달러(약 66조원), 채권자가 10만명에 달하는 메가톤급인데, 파장이 이제부터 퍼져나가는 모양새다.

FTX는 고객 돈을 계열사에 빌려주는 등 부적절하게 운용하고, 해킹에 의한 자금유출 정황도 드러났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이 “FTX 사태는 금융상 오류가 아니라 사기 냄새가 난다”고까지 비판한 이유다. 금융회사가 신뢰를 잃으면 곧 ‘런(run·인출사태)’이 일어나고, 파장은 금방 시장 전체로 번진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공동수상자인 더글러스 다이아몬드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금융위기는 사람들이 금융 안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가질 때 발생한다”고 말했다.

조짐이 보인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주요 가상화폐 가격이 급락하고 있고, 비트코크, AAX 등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이용자 출금을 한시 중단했다. 월가 기관투자가들을 필두로 이탈도 시작됐다. 블룸버그통신은 “가상화폐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면서 투자대상에서 배제하는 기관투자가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투자자 이탈 → 가격 하락 → 이탈 가속 → 가격 추가 급락’의 악순환이 우려된다. 유진투자증권은 보고서에서 “FTX발(發) 유동성 위기가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가치가 달러 등 특정 통화에 고정되도록 설계된 코인)이 지급준비금으로 보유한 미 국채와 회사채 등에 대한 매도 압력으로 작용해 전통 금융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 코인 업계도 폭풍전야다. 국내 FTX 이용자가 1만명가량이고, 컴투스그룹의 자체 암호화폐 C2X는 FTX에 상장돼 있다. 또 국내 가상자산 금융서비스업체 델리오는 FTX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미국 코인 대출업체 블록파이 등에서 약 6억달러의 가상자산을 공급받는 계약을 하고 있다. 그나마 테라루나 사태 여파로 블록파이와의 계약이 이행되지 않은 건 다행이다. 국내 게임사 위메이드가 만든 가상화폐 위믹스는 FTX 모델과 비슷하게 자회사와 코인 담보대출 관계로 엮여 있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국내 가상화폐 투자자 10명 중 6명이 MZ세대다. 이들의 체감경제고통지수가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다는 전경련 조사가 있었는데, 고통이 가중될까 걱정된다.

제방이 어디서 뚫릴지 모른다. 국내 5대 가상화폐 거래소 대표들이 투자자 보호, 거래소 전산시스템 안정화 등 선제적 조치에 나서고 있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불공정거래 규제, 이용자 자산보호조항 입법, 고객예치금 별도기관 보관 의무화 등까지 더 나아가야 한다. 혹시 모를 ‘코인판 리먼 사태’를 대비하는 최소한의 마지노선이다.

pils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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