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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멩코는 블루스를 낳고..유라시아 민중예술의 총아
라이프| 2022-11-23 07:50
플라멩코 애절한 선율과 느린 춤사위
자진모리 비바체의 흥겨운 플라멩코 대목

[헤럴드경제, 마드리드=함영훈 기자] “알레 알레 (아자,아자 힘내)”, “달레 달레 (해봐, 하자)”, “토케 칸테(지화자)!”

스페인 마드리드 플라멩코 공연장 겸 레스토랑 코랄 델라 모레리아(Corral de la Moreria)의 무대는 매일 애절한 감성과 흥이 교차한다.

눈에 띄는 것은 댄서와 연주자, 가수의 ‘추임새’이다. 우리의 ‘조선팝’ 국악공연과 흡사하다. 그들은 우리 식의 “얼씨꾸”, “좋~다”, “지화자!”를 외치며, 순간 순간 무대의 센터가 된 가수와 댄서의 힘과 흥을 돋운다고 스페인 관광청은 설명한다.

아니리, 진양 조의 대화형 노래로 시작하는 플라멩코 무대
우리의 ‘살풀이’ 비슷한 공연 초반 무대

▶알레알레 플라멩코 추임새, 발레발레 대화 맞장구= 다분히 동양적인, 아니 어쩌면 지구촌 모두의 가락이었을지도 모를 한맺힌 ‘진양’조 선율을 감상하면서 숨 죽이던 관객들은 서서히 중중모리로 돌입하고, 절정에 가까워지면서 자진모리, 휘몰이, 프레스토, 비바체로 이어지자, 공연장이 떠나갈 듯한 갈채와 환호로 호응한다. 추임새의 주인공은 이제 관객이 된다.

“발레발레(OK OK)” 스페인 사람들의 대화를 보면 우리 처럼 상대 말에 “그래그래, 맞아맞아”라면서 맞장구 쳐 주는 경우를 흔히 본다. 경청과 호응의 예의는 다분히 동양적이다. 한국사람들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은 스페인사람들이 ‘깍쟁이 유럽인’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유럽과 아시아 모두의 정서와 예의, 겸손, 명랑, 열정을 가져서 참 좋아한다.

플라멩코는 스페인의 인류무형유산이다. 우리가 TV를 통해 흔히 접하는 각종 댄스 경연대회에서의 플라멩코 춤은 무형문화유산의 극히 일부이거나, 정통 무형유산이라기 보다는 이를 응용한 댄스이다.

‘젊은 피’ 전승자들의 애절한 노랫가락과 기타 연주, 중요한 타악기인 박수치기.

정통 플라멩코는 우리의 ‘한오백년’, ‘정선아리랑’의 세마치 혹은 느린 선율의 노래 ‘꼬쁠라’(포르투갈에선 ‘파두’로 불림)와 남국,지중해,동서양파티에서 볼수 있는 흥겨운 춤, 애절하거나 흥겨운 현악기 연주, 스토리를 완성하는 ‘아니리’ 풍의 말하듯 하는 짤막한 타령, 무대와 무대 밖 등장인물들의 노래 대화 등 다양한 개별 예술이 합쳐진 종합예술이다.

칸테(노래), 토케(기타 연주), 바일레(춤), 팔마스(박수) 등을 기본으로 하고, 필요한 다른 요소를 더한다. 지역 마다 조금 다르지만, 종합마당극이라는 점은 같다.

▶유라시아 민중 예술의 총아= 발동작 사파테아도(Zapateado)는 구두로 무대 바닥을 치며 기묘한 흥분을 자아내는 플라멩코 춤의 백미다. 시각적, 청각적 효과를 모두 낸다. 팔 동작 브라세오(Braceo), 손 동작 마노(Mano)는 노래와 춤의 서정을 잘 전달하는 기예 중 하나이다.

이 중 플라멩코 춤은 자체 응용 포맷들이 다채롭게 개발되고, 나아가 탱고와 살사로 분기된다. 유럽과 북아프리카, 아메리카의 전통 기반 춤의 원형이 플라멩코인 것이다.

빠른 리듬으로 접어들 무렵 남성 리더가 발동작 사파테아도(Zapateado) 등 기예를 한껏 뽐내며 열기를 고조시킨다.
공연이 절정에 이를 무렵 남성-여성 메인 댄서가 만나 함께 춤을 춘다.

타령 조의 노래는 다분히 아시아적이다. 특히 우리말과 어순이 같은 나라가 많은 실크로드, 동북아시아에서 많이 듣던 가락들이다. 무언가를 호출하고 호소하는 듯한 고음 부분의 비틀기 창법에선 북아프리카 느낌도 조금 난다. 흥겨운 선율은 중부, 동유럽 전통 팜파티에서 부르던 것과 닮았다.

노래는 스페인 남부 거점도시 세비야 사투리가 제법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주제는 다양하다. 어떤 화가가 발렌시아 어촌 풍경에 매료된 얘기도 나오고, 어느 산전수전 다 겪은 나그네가 사랑에 빠졌다가 이별할 수 밖에 없는 얘기도 있다.

어려운 고음 처리를 능숙하게 해내면 출연자들은 “아, 린도! (아 예뻐!)”라는 추임새를 넣어준다.

모레리아 공연장에서 유네스코 무형유산 지정 당시 정통성을 잘 계승한 플라멩코를 선보인 전승자는 한복 비슷한, 바닥에 끌리는 펑퍼짐한 치마를 입었다가 나중에 섹시한 의상으로 갈아입으며 변신한 댄서 마리아 모레노(여), 리더격으로 가장 춤을 잘 추고 즉흥연기에도 뛰어난 모습을 보였던 헤수스 페르난데스(남), 이 공연전승단의 젊은 피 가수인 마누엘 데 라 니나(여), 안헬레스 똘레다노(남), 역시 젊은 피가 흐르는 기타 연주자 베니또 베르날, 타악기 연주자 로베르또 하엔이었다. 한국의 진도 처럼, 인류 무형유산을 계승하는 세대교체도, 플라멩코에 대한 세계인의 환호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마드리드에서 활동하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플라멩코 전승자들

▶목포의 눈물도 보이고, 유목민의 팜파티도 보이고= 플라멩코는 세비야(Sevilla), 코르도바(Cordoba), 그라나다(Granada), 말라가(Malaga), 카디스(Cadiz) 등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이 거점인데, 이들 지역은 동양 문화가 비교적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북부 구겐하임 미술관이 있는 북부 바스크 지역도 동양문화가 많이 남아 있지만 춤과 노래가 남부지방과는 다르다.

물론, ‘사람이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처럼, 스페인 곳곳의 유명 플라멩코 가수와 댄서, 연주자들은 하나, 둘, 수도인 마드리드로 집결해 지금은 정통 플라멩코를 세비야, 마드리드에서 볼수 있다. 세비야, 그라나다는 관광객용으로 좀더 화려하게 꾸몄고, 정통파 공연은 오히려 마드리드에 더 많다고 현지인들은 전한다.

동료 전승자, 관객들의 추임새로 흥을 돋우는 장치가 있다는 것은 흥이 난 이후 즉흥적, 창의적 동작과 음성이 크게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플라멩코는 전체 콘텐츠의 30~40%가량이 준비안된 즉흥 영역이다. 박자 만 맞으면, 그 예술이 가진 서정과 전통의 색깔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내에서, 즉흥 춤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영혼을 담아 복부에서부터 숨소리와 음성을 섞어 소리를 이끌어내거나, 목포의 눈물 이난영식 혹은 칸초네식 비음을 섞는 창법, 우리의 민요나 트로트, 아중동 전통노래 처럼 3단 고음을 예쁘게 혹은 허스키하게 내기 위해 두성, 가성 등을 다양하게 구사한다.

마드리드 플라멩코 공연장 코랄 델라 모레리아(Corral de la Moreria) 앞 작은 공원에선 스페인왕궁과 바티칸 닮은 대성당이 잘 보인다.

▶스페인의 문화 포용력이 낳은 최고 예술품= 민속사전엔 플라멩코를 ‘집시들의 문화’라고 하지만 사실과 다른 것 같다. 세계 곳곳의 문화를 다양하게 접해본 여행자들은 이를 스페인의 동서남북 주변 문화에 대한 포용력이 낳은, 최고의 토털 예술품으로 평가한다.

‘집시’라는 표현은 스페인 왕조의 가톨릭 중심주의라는 순수성와 외부에서 유입된 문화 다양성을 분리시키기 위해 사용한 정치문화적 비하로 보인다.

‘아랍 문화’라고 주장하는 아중동(중동~북아프리카) 논평자도 있지만, 이 역시 사실과 다른 것 같다. 아중동 이외의 문화적 요소가 너무도 많다.

그냥 ‘스페인이 만든, 유럽에서 만나는, 유라시아 민중의 전통 공연문화, 최고 결정체’라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마드리드 왕궁 남서쪽 인근에 있는 플라멩코 공연장 코랄 델라 모레리아(Corral de la Moreria)는 전통 식당을 겸한다.

주지하다시피 이베리아 반도는 똑똑한 주먹도끼(고고학박물관 전시)를 쓰는 토착 선사시대인들의 개척 이후, 로마, 훈(흉노·선비, 한국 신라의 일족), 게르만, 몽골(한국 부여의 일족), 투르크(돌궐), 아중동, 영국, 프랑스 세력들이 오랜 기간 머물거나 잠시 들어와 문화접변을 한 곳이다.

14세기 이후 스페인 집권세력이 자신의 집권논리에 유리한 이민족(켈트,로마,오스트리아,프랑스) 문화만 취사선택해 자기 것이라고 한 뒤, 다른 문화(훈,게르만,몽골,이슬람)를 배척하는 과정에서, 유라시아 다문화 퓨전형태인 플라멩코를 꽤 오랜 기간 중시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플라멩코가 대놓고 수도 마드리드에서 공연한 것은 19세기 부터이다.

▶미국 부르스에 영향, ‘정한(情恨)’ 정서 동질감= 플라멩코 노래는 아메리카로 건너가, 멕시코 ‘마리아치’가 된다. 미주에 가서 좀더 흥겨워진 측면은 있다. 최근 인류무형유산인 멕시코 마리아치단의 한국 공연때 ‘모종의 동질감’ 때문에 관객들이 열광적인 갈채를 보낸 바 있다.

플라멩코의 영향을 받은 멕시코 마리아치(바르가스 공연단)
미국 맨해튼에 붙어있는 블루스-재즈 공연 벽보

플라멩코가 예술 전반에 스며들는 누에보 플라멩코(Nuevo Flamenco)가 유행하고, 미국의 ‘브루스’ 형성에도 영향을 준 이후, 최근 들어서는 플라멩코를 재즈나 록음악과 결합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고, 기타연주 분야에서는 플라멩코 기타리스트가 독자영역을 구축하는 양상이다.

플라멩코 가락의 기반 두엔데(Duende)라고 불리는 독특한 정서인데, 우리의 국악에 빗댄다면 ‘정한(情恨)’쯤 되겠다.

한국인 여행객은 플라멩코 동작 하나하나와 선율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하면서 감상한다면, 극동아시아 땅끝마을에서 부터 이베리아반도 땅끝마을까지, 민중 문화를 합쳐 놓은 듯한 플라멩코 매력을 두배 이상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스페인 마드리드 문화유산 미식 스마트 여행, 현장 탐방기 싣는 순서 = ▷11월2일 ①아란후에스 짙은 선율 타고 스페인 세계유산 속으로 ②스페인 미식 한국인 입맛과 찰떡 궁합...타파스가 삼합? ③옛성·수도원서 하룻밤, 스페인관광청 파라도르 적극 붐업 ▷11월8일 ④마드리드 도심 여행, 그란비아 가도, 시벨레스 광장 ⑤스페인 왕궁 무려 2800칸, 선물 받은 이집트신전 눈길 ▷11월11일 ⑥“미술혁명 인상주의, 마드리드에선 17세기부터 했다” ⑦마드리드 소피아 ‘게르니카’ 뭉클, 고고학博 한국 닮은꼴도 ⑧마드리드 맨날 장날? 시끌벅적 서서먹는 시장 음식 발달 ▷11월13일 ⑨스페인 한류 열풍, K팝-車-스마트 정책..전방위 확장 ▷11월15일 ⑩어리고 귀여운 아내 위한 ‘빛의 풍경’ 마드리드를 비추다 ⑪마드리드 하면 축구지..레알, AT, 바르사의 전쟁 ▷11월23일 ⑫플라멩코는 블루스를 낳고..유라시아 민중예술의 총아 ⑬친근한 촌마을 ‘친촌’과 예술 깃든 스페인 소도시들 ▷11월25일 ⑭친환경·스마트·영 마드리드..어학·마이스·나이트 생태계 ⑮스페인 전국 가볼만한 곳, 마드리드로 상경한 맛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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