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져
친근한 촌마을 ‘친촌’과 예술 깃든 스페인 소도시들
라이프| 2022-11-23 09:14
“한국 것 닮았죠? 우리 친촌 사람들 한국인들 많이 좋아하는데, 꼭 놀러 오세요” 한국인 일행을 맞은 마르펠러씨의 미소
중세 모습을 잘 간직한 마드리드 자치구 내 소도시 친촌 전경
만사나레스 성

[헤럴드경제, 친촌=함영훈 기자] 마드리드 시티를 조금만 벗어나면, 좋은 음식과 와인, 마늘, 예술, 영화촬영지 등이 있는 소도시를 여럿 만날 수 있다.

로소야, 만사나레스, 에나레스, 하라마, 타후냐 강이라는 젖줄과 과다라마 고원이라는 지붕 아래 착상한 아기자기한 마을들이다. 그들은 도심의 파란만장한 역사 대신, 평화, 안온, 보존, 인정의 키워드로 ‘에스파냐~스러운’ 문화를 계승발전시키고 있었다.

▶고원 마을 친촌= 마드리드에서 출발해 아란후에스를 거의 다 왔을 무렵 동편으로 조금만 가면 만나는 ‘친촌’은 평균 해발 753m 고지대에 있는 고원마을이다. 해발고도가 태백 귀내미마을, 평창 의야지 바람마을 쯤 되겠다.

성모승천성당이 내려다 보는 친촌

스페인의 여름이 10월까지 이어진다고는 하지만, 친촌은 4계절이 뚜렷하고, 여름은 산 위에서 부는 바람에 시원한 편이다.

친촌은 고원에 요새까지 있어 소소한 침략을 당하지 않은채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성모승천 성당이 마을 전체를 내려다 보는 가운데, 산꼭대기 성채, 투우경기, 동아시아의 최고 식재료인 마늘 주산지 답게 마늘축제도 여는 곳, 이사벨 여왕을 정치적으로 지지하면서 안정을 기반으로 번성한 곳, 마을 주변에 거대한 올리브 밭이 형성된 올리브녹지 등으로 이름 나 있다.

친촌마을 올리브밭

여러 차례 리모델링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동안에도 큰 틀은 변하지 않았으며, 지금 대부분의 건물은 18세기 이후 바로크 양식으로 중수됐고, 지금까지 잘 보존돼 있다.

성모마리아교회 시계탑이 내려다보는 마을 중심에 투우장이 있는데, 마드리드가 4월부터 매주 경기를 치르는데 비해, 이곳은 7월 중순부터 매주 진행한다.

전통잡화 민속상품 및 농산물 가게를 하는 마르펠러(66)는 아버지 그레고리오로부터 6살때부터 수확한 마늘꼬기 도왔다. 우리처럼 ‘접’을 단위로 엮는 것은 아니지만, 말릴 목적으로 비슷한 방식으로 꼬았고, 시장에 내놓을 때엔 구근의 열매 부분만 동그랗게 잘라 판매한다.

마르펠러의 가게에는 돌아가신 아버지 그레고리오가 늘 지켜준다. 가업을 딸이 이었다.
친촌의 물건은 마치 강원도 것 같아서 친근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동네 어르신들

▶손님을 위해서라면...= 그녀는 지난 10월 하순 한국인 여행객 일행과의 대화에서 “아버지는 평생 장사를 하셨다. 마을에서 조상대대로 하시던 일을 이어갔다. 집안대대로 마늘농사를 지었는데, 나도 참여했다”고 회고한 뒤, “코로나 전에는 한국인들이 많이 놀러왔는데, 아직은 뜸한 편이다. 다시 한국인들이 하나 둘 씩 오니 기분이 참 좋다”고 말해 한국인에 대한 친분을 대놓고 고백해줬다. 그녀 외에도 많은 주민들이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넨다. 친촌은 한국인에게 친한 촌락임에 틀림없다.

가게 간판은 없다. 마르펠러는 “그냥 ‘추억’이라 이름 붙일까”라고 너스레를 떤 뒤, 소녀 같은 미소를 짓는다. 가게에 돌아가신 아버지 사진을 늘 걸어놓고, 아버지 얘기를 계속 하는 걸 보면 애교도 많고, 아버지 사랑도 참 많이 받았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선친 그레고리오는 생전에 ‘딸 바보’였음이 확실하다.

판매용 자연산 지팡이에는 새똥이 묻어있어, 신뢰할 만한 토속 상품임을 느끼게 했다. 우리 처럼 절반 잘라 만든 바가지도 있고, 자르지 않은 완전체에 작은 구멍을 뚫어 내용물을 파낸 것도 있는데, 모두 그릇으로 쓰이고 있다.

마드리드 자치구 관광청에 근무하는 테레사는 현장 관광인프라 시찰 온 김에, 친촌의 육쪽마늘, 팔쪽마늘을 잔뜩 사가지고 간다. “한국 김치와 한국식 찌개에 들어가는 마늘인데, 어디에 넣을 거냐?”라고 묻자, 테레사는 “마늘은 스페인 사람들이 먹는 온갖 음식에 거의 다 넣는다”고 답했다.

투우장 옆에는 고대 로마도시에서 흔히 보는 샘물 저장소가 멋지게 만들어져 있었다. 수로는 불(火)과 함께 고대 이후 민중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물저장소와 수로 옆 촌로의 오수

친촌은 가장 스페인 다운 마을로 중세영화에 영감을 주거나, 실물 세트장 역할을 한다. 존 웨인, 오손 웰스, 리타 헤이워드, 칸틴프라스 등은 이 도시에서 영화를 촬영했다고 한다.

마요르 광장은 고유명사이지만 여러 도시에 다 있어, 보통명사 같기도 하다. 공회당 광장이다. 친촌에서는 마요르광장이 주말 투우경기장을 겸한다. 친촌 광장은 까스티야왕국 양식으로 지어졌다. 층층이 지은 공동 주택234개의 집이 사방으로 둘러쳐있고 중정이 투우장 역할을 한다. 부활절엔 종교음악 콘서트장이 되기도 한다.

투우 경기가 열리는 날 주민들은 이 집들을 비워준다. 초록 나무 난간으로 만들어진 이들 234개 발코니는 멋지고 안락한 관중석이 된다. 이런 관행은 손님을 중히 여기는 마드리드 자치구 정부와 주민들이 파격적으로 뜻을 모았기 때문이다.

토요일 새벽에 친촌은 성모승천 성당으로 향하는 순례객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성모승천 성당의 주임신부가 고야의 형제여서 19세기 초 이 성당 중앙 제단에 고야의 성모승천 그림을 걸어두었다.

성모승천성당과 투우장. 투우경기가 열리는 주말이 되면 카스티야 양식의 집에 사는 주민 모두 손님들 관람석으로 쓰도록, 집을 비워준다. 파격적인 손님 응대 자세가 아닐 수 없다.

▶공주의 성, 만사나레스 성= 마드리드 도심 북서쪽 근교에 있는 ‘만사나레스 엘 레알’ 성 문화유산 보존상태가 매우 좋다. 어릴 적 동화 속 왕자와 공주 얘기의 배경이라면 이런 성이었을 것이라는 상상이 현실화된 곳이다.

마드리드 자치구 관광청에 따르면, 만사나레스 마을에선 중세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를 산책하고, 청정 개천과 숲, 산티야나 저수지, 마법 같은 곳인 산 라 베드리사 등의 서정을 흡입한다. 마드리드 자치구 북서 지역의 지붕이 되고 있는 과다라마 고원의 국립 공원 일부를 형성하는 곳이라고 한다.

마드리드 도심 남서쪽 근교에 있는 ‘나발카르네로’는 토속 와인으로 유명하다. 과다라마강과 알베르체강이 만나는 곳, 주변으로 광활하게 포도밭이 펼쳐져 있다. 강과 산이 바로 맞닿는 파란만장 지형 답게 일교차 크기 때문에 당도 높은 포도 농사가 잘 된다. 이 소도시의 세고비아 광장은 옛 정취가 물씬 풍기고 안온함을 느끼는 곳이다. 데노미나시온 데 오리헨데 마드리드 같은 좋은 와인을 즐기기에 이상적인 곳이라고 마드리드 자치구 관광청은 소개한다.

다양한 와인 잔치와 함께 전통민속박물관의 다양한 콘텐츠, 전통재즈 페스티벌, 시음행사 등을 수시로 진행한다. 이 지역 요리인 오야 델 세가도르에 이 와인을 곁들이면 더 금상첨화.

튀르키예 카파도키아가 개구쟁이 스머프와 인터스텔라 영화에 영감을 주었던 것 처럼, 벤허, 쿼바디스 영화 무대미술에 영감을 준 ‘콜메나르 데 오레하이’ 마을도 와인과 ‘빠따따 출라’라는 음식으로 유명하다.

▶예술, 와인, 영화, 스키 소도시= 마드리드 자치구 서쪽 고원에 위치한 ‘산 마르틴 데 발데이글레시아스’ 역시 레드 와인을 만드는 가르나챠 포도와 화이트와인을 만드는 알비요 레알 포도가 호평을 받는 곳이다. 이 마을의 피카다스 저수지는 바다가 없는 마드리드 자치구 사람들에게 바다의 정취를 느끼게 하며 수상레저를 즐길 기회를 제공한다. 수상레저나 청정생태 트레킹을 연중 즐길 수 있다.

스페인관광청에 따르면, 회화로 유명한 소도시 ‘라스카프리아’, 슬레이트 건물이 예술적으로 구현된 ‘파토네스’, 산타 마리아 막 달레나 교회, 성당 부속 고딕양식의 곡물 창고, 프란시스카노스 데 라 마드레데 디오스 수도원 등으로 유명한 ‘토렐라구나’ 등 3개 소도시는 예술로 유명하다. 토렐라구나는 소피아 로렌, 캐리 그랜트, 프랭크 시나트라 등 연예인들이 촬영, 휴양 등의 목적으로 방문한 바 있다.

피카소 미술관인 에 우헤니오 아리아스 컬렉션이 있는 ‘비트라고 델 로소야’는 예술의 소도시로, 전통 수공예 작품이 많은 누에보 바스탄은 손재주 무형유산이 많은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겨울 스포츠 애호가들은 스키를 타거나 과다라마 고원에서 썰매를 탈 수 있다. ‘푸에르토 데 나바세라다’에는 리프트와 스키 트랙이 설치되어 있다. ‘발데스키’에는 무려 20㎞가 넘는 스키 트랙이 있다.

‘세르세디야’와 ‘푸에르토 데 로스 코토스’를 잇는 생태관광 기차, 고산 철도는 멋진 마드리드 자치구 겨울풍경을 선사한다. 겨울레포츠 마니아들은 ‘산 실베스트 레 바예카나’ 등지에서 열리는 트라이애슬론, 크로스컨트리 경주, 마라톤, 하프 마라톤 경연에도 참가할 수 있다.

보석 같은 소도시들이 마드리드 자치구 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 문화유산 미식 스마트 여행, 현장 탐방기 싣는 순서 = ▷11월2일 ①아란후에스 짙은 선율 타고 스페인 세계유산 속으로 ②스페인 미식 한국인 입맛과 찰떡 궁합...타파스가 삼합? ③옛성·수도원서 하룻밤, 스페인관광청 파라도르 적극 붐업 ▷11월8일 ④마드리드 도심 여행, 그란비아 가도, 시벨레스 광장 ⑤스페인 왕궁 무려 2800칸, 선물 받은 이집트신전 눈길 ▷11월11일 ⑥“미술혁명 인상주의, 마드리드에선 17세기부터 했다” ⑦마드리드 소피아 ‘게르니카’ 뭉클, 고고학博 한국 닮은꼴도 ⑧마드리드 맨날 장날? 시끌벅적 서서먹는 시장 음식 발달 ▷11월13일 ⑨스페인 한류 열풍, K팝-車-스마트 정책..전방위 확장 ▷11월15일 ⑩어리고 귀여운 아내 위한 ‘빛의 풍경’ 마드리드를 비추다 ⑪마드리드 하면 축구지..레알, AT, 바르사의 전쟁 ▷11월23일 ⑫플라멩코는 블루스를 낳고..유라시아 민중예술의 총아 ⑬친근한 촌마을 ‘친촌’과 예술 깃든 스페인 소도시들 ▷11월25일 ⑭친환경·스마트·영 마드리드..어학·마이스·나이트 생태계 ⑮스페인 전국 가볼만한 곳, 마드리드로 상경한 맛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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