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신주희의 현장에서] 시장과 마트의 오월동주
뉴스종합| 2022-12-26 11:21

지난 10년간 대형 마트의 발을 묶었던 ‘의무휴업’의 족쇄가 최근 대구에서 풀렸다. 대구시가 유통업계와 대형 마트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 추진협약을 맺으면서다. 조례에 따라 일요일이었던 대구의 대형 마트 의무휴업일은 새해에는 평일로 바뀐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번 협의에서 대구지역 소상공인이 ‘먼저’ 규제 완화를 요청했던 사실이다. 통상 지역 대형 마트의 의무휴업일을 정할 때에는 지자체, 상인 단체 등이 모여 의논한다. 이 과정에서 소상공인은 꾸준히 의무휴업 규제를 없애 달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 마트가 문을 닫는 주말이면 거리 유동인구가 줄어드니 “차라리 영업제한을 풀어달라”고 소상공인들이 주장했다고 한다.

요식업·유통업 할 것 없이 자영업의 성패를 가르는 첫 번째 요소는 유동인구다. 문제는 이제 소비자가 밖에 나가서 물건을 사지 않으면서 시작됐다. 오프라인 유통업체가 힘을 못 쓰는 사이 e-커머스라는 새로운 강적이 떠오른 셈이다.

통계청의 소매판매액을 보면 올해 1~9월 전문소매점의 소매판매액은 100조3000억원으로, 관련 통계가 있는 첫해인 2015년 같은 기간에 비해 1.5%나 감소했다. 슈퍼마켓·잡화점 소매판매액도 33조원에서 34조6000억원으로, 7년간 5.0% 증가하는 데에 그쳤다. 대형 마트도 비슷한 처지다. 2015년 24조9545억원이던 대형 마트 소매판매액은 올해 26조1747억원으로, 신장률이 4.9%에 불과했다. 반면 인터넷쇼핑, TV홈쇼핑, 배달 등 무점포소매의 소매판매액은 2015년 1~9월 33조9000억원에서 올해 1~9월 87조2000억원으로, 157.4%나 껑충 뛰었다.

여기에 대형 마트와 전통시장이 경쟁관계가 아니라는 인식도 확산했다. 한국경제연구원 연구를 보면 지난해 서울 소재 유통업체에서 판매하는 32개 제품 중 26개는 대형 마트와 중소 슈퍼마켓 간 영향을 미치지 않는 독립재 관계였다. 이에 더해 지역 내 대형 마트가 망하면 주변 소상공인들도 타격을 입는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조춘한 경기과기대 교수가 2020년 발표한 ‘대형 유통시설이 주변 상권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이마트 부평점이 2018년 폐점한 이후 인근 슈퍼마켓 등의 매출액은 감소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몇 년 전부터 전통시장과 대형 마트의 은밀한 협력은 시작됐다. 일부 전통시장에서는 대형 마트에 매장을 열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2019년에는 이마트에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입점을 요청한 전통시장만 40여개에 달하기도 했다. 대형 마트는 전통시장과 ‘공생’을, 전통시장은 대형 마트의 ‘집객력’을 노린 판단이다.

과거 고양이와 쥐로 비유됐던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은 이제 ‘오월동주’하고 있다. 상인들은 “동네 농협 하나로마트가 손님 다 뺏어간다”라는 푸념을 대형 마트 관계자들에게 심심지 않게 할 만큼 둘의 사이는 가까워졌다. 대구에서는 소상공인의 통 큰 결단에 대형 마트도 시장 이용 시 주차장 무료 개방을 약속하면서 화답했다. 다른 지자체에서도 대형 마트와 소상공인의 오월동주를 기대해본다.

joo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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