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달랑 4개 사니 끝” 1만원으로 바지락수제비를 만들어봤다 [만원살이]
뉴스종합| 2023-01-16 11:46

가격 심리적 저항선인 ‘1만원대 법칙’이 깨지고 있다. 거세게 몰아친 물가인상 파도가 새해 벽두부터 장바구니를 또다시 덮치면서다. 500g 고추장이 1만원을 넘어섰고, 200g 기준 삼겹살 1인분은 2만원에 달한다. 프랜차이즈 치킨 한 마리는 3만원에 육박했다. 그러다 의문이 들었다. 20년 전 한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 이름처럼 과연 단돈 1만원으로 2023년의 소비자는 얼마나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마트에서 장을 보되, 2인 가구 기준 한 끼 식사 지출로 최대 1만원을 넘기지 않겠다는 기준을 세웠다. 단, 최대한 영양이 고루 잡힌 집밥 한 끼로 준비하고, 간단한 후식도 챙기려고 했다. 마지막으로 물가상승을 제대로 체감하기 위해 가격인상률이 최고점을 찍은 식자재 위주로 구성된 음식을 만들기로 했다. 그 결과, 1만원으로 두 명이 먹을 수 있는 ‘바지락수제비’ 한 끼를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

최대 지출금액을 1만원으로 산정한 데에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1인 가구 기준 일평균 식비가 1만6000원이라는 점이 크게 고려됐다. 단순 계산하면 1인 가구 한 끼는 5333원이다. 전년 대비 올해 품목별 가격인상률은 관세청이 11일 공개한 농축수산물 수입가격에 근거해 산출했다.

단돈 1만원으로 살 수 있는 바지락수제비 재료들. 구성이 단출하다. 이정아 기자

장보기 결론부터 말하자면, 1만원으로는 당근, 감자, 대파가 쏙 빠진 반쪽짜리 바지락수제비가 가능했다. 밀가루와 바지락 가격이 1년 만에 각각 23.2%, 39.4% 오르면서 채소를 살 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수제비 양에 비해 바지락 양이 꽤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소 모양은 빠져도 지금껏 재료를 사서 만들어 먹은 바지락수제비 중에서 가장 비싼 음식이었다.

1만원으로 2인 가구 장을 보기 위해 10일 오후 9시 서울의 한 대형 마트에 방문했다. 20~30% 할인된 신선상품이 진열되는 저녁시간이라는 점을 공략했다. 하지만 바지락을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일말의 기대가 사라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000원대로 구입할 수 있다고 믿었던 ‘국민조개’ 바지락(200g) 상품의 가격이 2000원을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밀가루 판매 코너에서는 한참을 망설였다. 수제비를 만들 때 사용하는 중력분 밀가루(1㎏)가 무려 3000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빵을 만들 때 사용하는 강력분 밀가루로 수제비를 만들어도 문제가 없다는, 인터넷 검색 결과를 믿어보기로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말을 믿고 싶었다. 같은 용량이지만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강력분 밀가루(1㎏)를 담아야만 다른 식자재를 더 구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만원으로 구입한 바지락수제비 재료들. 감자, 당근, 대파는 구입조차 할 수 없었다. 이정아 기자

밀가루 반죽을 할 때 식용유 한 큰술을 넣으면 손에 반죽이 잘 묻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식용유가 가득한 판매대는 그대로 지나쳤다. 1년 만에 식용유 가격이 25.6%나 올랐기 때문이다. 식용유를 카트에 담으면 장바구니 예산을 초월할 것이 분명했다.

바지락수제비에 넣을 채소로는 애호박, 당근, 감자, 대파를 고려했는데 모두 살 수가 없었다. 1만원 예산이 초과하기 때문이다. 바지락수제비에 절대 빠져선 안 될 채소만 최소한으로 사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렇게 고민 끝에 구매한 식재료가 애호박과 양파였다.

3개월 전부터 더는 커피를 사 마시지 않는 기자는 대신 따뜻한 우유 한 컵을 마신다. 바지락수제비 재료를 사면서 후식으로 먹을 우유 한 팩 예산을 꼭 남겨둔 이유다. 하지만 남은 돈은 2000원 수준에 불과했다. 항상 사 먹는 우유가공업체 상품이 아닌 대형 마트 자체브랜드(PB) 제품을 구입해야만 했다. 1년 사이에 우유 평균가격이 6%나 오르면서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기호식품인 과자, 아이스크림, 음료는 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1만원으로 만든 바지락수제비 결과물. 이정아 기자

“미안해요. 1000원 올렸어요. 밀가루 가격이 워낙 올라서 버틸 수가 있어야지. 요새는 바지락까지 엄청나게 올라 버렸다니까…. 정말이야, 남는 게 거의 없어.”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뜨끈한 국물 두세 숟가락을 얹고 싶어 지난주 찾았던 서울 용산구의 바지락수제비식당, 주인아주머니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곳은 그전까지 8000원이었던 바지락 수제비 가격을 올해 초 9000원으로 인상했다.

1만원어치로 만든 바지락수제비는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으로 만들어졌지만 바지락 양이 부족해 개운한 국물맛이 아쉬웠다. 씹는 맛을 더해주는 감자, 당근 등 아삭한 채소의 풍미도 느끼기 어려웠다. 이정아 기자

dsun@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