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이웃이 건넨 물먹고 15시간 잠든 아들 “눈뜨니 엄마·누나 숨져있었다”
뉴스종합| 2023-03-02 06:56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이웃집 이모가 건네준 ‘도라지물’을 마시고 15시간이나 잠에 들었고, 눈을 떠보니 엄마와 누나가 모두 살해돼 있었다”. (부산 모녀 사망사건 유가족인 아들의 법정 증언).

지난해 추석 연휴 부산 모처 빌라에서 숨진 모녀 사건의 재판에서 생존자인 10대 아들의 유력한 용의자로 이웃집 주민을 지목했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 형사6부(부장 김태업)가 지난달 27일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모녀의 이웃집에 살던 A(50대·여)씨에 대해 연 첫 공판에서 생존자 아들 B(15)군이 이같이 증언했다.

교복 차림으로 법정에 선 B군은 사건이 발생한 지난해 9월12일 집에 찾아온 A씨에게 문을 열어줬다. A씨는 자신의 어린 손녀딸과 함께 이웃집을 찾아왔고, 이전에도 3차례 정도 집을 방문한 적이 있는 인물이라 B군은 의심없이 집으로 들였다.

범행 당일 A씨는 B군에게 ‘몸에 좋은 주스’라며 연한 보라색을 띠던 도라지물을 마실 것을 권했다. 본인과 손녀딸은 이미 집에서 마시고 왔다고 했다.

B군은 이 물을 마신 뒤 A씨의 손녀딸과 잠시 놀아주다 그대로 깊은 잠에 빠졌다. 평소 오전 2~3시에 자던 B군은 약물에 든 수면제 성분 탓에 오후 9시가 조금 넘어 잠에 들었고 이튿날 낮 12시까지 깨어나지 못했다.

15시간 뒤 잠에서 깨어난 B군이 자신의 방에서 나와 마주한 건 싸늘한 어머니와 누나의 시신이었다.

검찰은 2015년 7월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아온 A씨가 자신이 복용하던 정신의학과 약을 이 도라지물에 섞어 B군 가족에게 먹인 뒤 살해한 것으로 보고 살인 혐의와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A씨를 기소했다.

A씨는 일정한 직업이 없어 월세나 생활비, 병원비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A씨가 귀금속 등 금품을 가로채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병원비나 카드대금을 내지 못하는 등 생활고에 시달리던 끝에 이웃이 가지고 있던 600만원 상당의 귀금속을 노리고 범행한 것으로 파악했다.

검찰은 B군이 잠든 뒤 B군의 어머니와 누나가 차례로 귀가했고, A씨가 이들에게 약물을 먹여 잠에 빠뜨린 뒤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고 있다. A씨는 끈이나 둔기 등을 이용해 이들 모녀를 잔인하게 살해했다. 집에는 애완견을 위한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었는데 사건 당시에는 선이 뽑혀 있었다.

B군 누나의 친구도 이날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B군 누나가 살해당하기 전 마지막으로 메시지를 나누던 친구였는데, 당시 ‘몸에 좋은 주스라고 해서 먹었는데 너무 어지럽다’는 내용을 보냈다. 평소와 달리 메시지에 오타도 상당히 많았다고 전했다.

앞서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해 9월12일 부산 진구 양정동의 한 빌라에서 어머니 C(40대)씨와 고교생 딸 D양이 숨진 채 발견됐다. 다른 방에서 자고 있던 중학생 아들 B군이 어머니와 누나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웃의 도움을 받아 경찰에 신고했다.

수사 초기 외부 침입 흔적이 없고 이들 가족이 생활고를 겪어왔던 상황으로 인해 극단적 선택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수사가 진척되면서 타살 의심 정황이 잇달아 발견됐다. 숨진 모녀 부검에서 부검의는 질식사가 고려된다고 판단했다.

사건 당시 이 빌라 거실에는 C씨가 피를 흘리며 숨져 있었고 옆에는 흉기가 있었다. D양은 방에서 발견됐으며, 타박상을 입고 숨진 상태였다. D양의 방에서는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불이 나 자연적으로 꺼지기도 했다. 함께 살던 반려견도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도 계속해서 혐의를 부인해온 A씨는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A씨 측 변호인은 법정에서 “도라지물을 먹인 적도, 살해를 한 적도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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