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결혼식 불참, 제사 간소화…고물가에 ‘행사 회피족’ 는다
뉴스종합| 2023-03-02 10:06
[123RF]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인간관계에 계산이 늘어나서 씁쓸해요. 결혼은 축하하지만, 마음만 전하기로….” 최근 대학 선배의 결혼 소식을 접한 이현경(27)씨는 고민 끝에 참석을 포기했다. 한때 절친했던 사이지만, 졸업 후론 연락이 뜸했던 터라 축의금 부담이 앞섰기 때문이다. 이씨는 “예식장들 식대도 올라서 참석하면 적어도 10만원은 내야 한다는데 한달치 난방비라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고 했다.

고물가 여파에 경조사, 제사 등 ‘행사 회피족’이 늘어나고 있다. 거리 두기 조치가 해제되면서 대면 만남을 재개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지만 각종 행사 비용에 부담을 느끼는 시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탓이다. 2일 헤럴드경제가 만난 이들은 저마다 경조사 참석을 줄이거나, 제사를 간소화했다고 털어놨다.

직장인 최모(30)씨 역시 최근 ‘경조사 필참’ 원칙을 깼다. 결혼을 미뤄왔던 연인들의 수요가 몰리면서 최씨는 최근 한 달에 한 번 꼴로 청첩장을 받고 있다. 최씨는 “그래도 장례식 같은 조사는 가능한 참석하지만, 경사는 이런저런 계산을 하게 되는 게 사실”이라며 “지인들을 간만에 만나는 수단으로라도 행사는 꼬박꼬박 참석해왔는데, 연락을 길게 이어갈 사이가 아닌 경우엔 결혼식은 몇 번 핑계를 대고 빠졌다”고 했다.

이 같은 청년들의 반응은 작년부터 예식장 식대가 일제히 오르면서 ‘참석하면 축의금 10만원, 불참하면 5만원’이라는 공식이 자리잡은 영향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SK커뮤니케이션즈(SK컴즈) 여론조사 서비스 ‘네이트Q’를 통해 성인 861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 32%(2799명)는 적정 축의금 액수는 ‘10만원’이라고 답했다. 또 29%(2550명)는 5만원을 낸다면 결혼식에 노쇼(불참)해야 한다고 답했다.

코로나19 기간 간소화된 제사를 되돌리지 않는 가정도 나타난다. 양모(52)씨 가족은 매년 4번 지내다 2020년부터 2번으로 줄인 상태를 올해까지 유지하고 있다. 양씨는 “서로서로 사정 어려운 걸 뻔히 아는데, 제사 비용 부담을 얹기 미안해 굳이 제사를 다시 늘리자는 얘기를 꺼내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한때 주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제사 음식 대행업체도 예전만 한 활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 소재 A 제사음식 업체는 “직접 준비하는 것보단 주문하는 게 비용이 절감돼 아직은 찾는 분들이 많지만, 나물이나 전은 2,3가지만 주문하거나 생선은 아예 빼는 손님들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B 업체 역시 “세트 구성에 따라 통째로 주문하지 않고, 어떤 메뉴는 뺄 수 있냐는 등 자세하게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행사를 굳이 참석하지 않아도 서로 양해해주는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형성됐다”며 “고물가 시대엔 경조사 소식이 마치 고지서를 받아드는 것처럼 큰 부담이 될 수도 있어, 서로 이해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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