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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 펼쳐지는 섬소년의 로망
라이프| 2023-03-14 07:50
강홍구, 무인도 035, 디지털 사진 위에 아크릴, 39x55cm, 2022 [사비나미술관 제공]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매년 봄이 짙어지기 시작하는 3월말 4월초가 되면 어머니가 고향에 가고싶다고 하셨다. 한국 디지털 사진 1세대 작가인 강홍구는 “떠난지가 20년은 족히 된 그곳을 그리워하기도 했지만, 사실은 고사리따러 가시고 싶으셨던 모양”인 모친을 모시고 신안 어의도 찾았다. 오랜만의 고향은 그가 기억하던 그곳이 아니었다. 사진기를 들었고, 기록했다. 17년 동안 ‘어쩌다보니’ 이어진 프로젝트는 신안군의 구석구석을 담았다. 한 때 나마 그곳에 살았던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자연 풍경들이고, 외지인이기에 가능한 삶의 모습들을 포착했다.

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은 강홍구작가의 개인전 ‘무인도와 유인도-신안바다2’를 개최한다. 신안에는 총 1025개의 섬이 있다. 유인도는 72곳, 무인도는 935곳이다. 작가는 신안의 무인도와 유인도에서 발견한 삶과 죽음의 풍경사진, 사라져가는 것들의 기억과 환상이 혼재된 합성사진을 시작으로 파도에 밀려온 것들을 채집한 오브제를 매달아 완성한 회화, 26점의 작품을 이어붙이고 실로 꿰매 완성한 14미터 길이의 콜라주 등 78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강홍구, 무인도 082, 디지털 사진 위에 아크릴, 90x140cm, 2022 [사비나미술관 제공]
강홍구, 무인도 085, 디지털 사진 위에 아크릴, 68x100cm, 2022 [사비나미술관 제공]

지난해 원앤제이 갤러리에서 ‘신안바다-뻘, 모래, 바람’라는 주제로 신안의 자연을 보였다면 이번엔 그곳에 사는 사람의 삶과 풍경의 결과물에 집중한다. 남편이 배를 끌고 나가면 아내는 물질하러 바다로 들어가는 민박집 부부, 일 년에 한 번 온 마을 사람들이 다함께 자연미역을 채취하는 미역바위, 잡아온 생선을 건조하는 빨래줄 등이 주인공이다. “무인도들은 한 때 유인도였다가 무인도가 됐다. 내 작업은 조사보고서가 아니라 사진을 찍으러 다니며 마주친 삶의 양상들이다”

전시가 다큐멘터리로 흐르지 않는 이유는 작가의 개인적 이야기가 섞여있어서다. 어린시절 바닷가에서 살다시피 했던 소년에게 무인도는 꿈과 환상의 대명사였다. 해적이야기를 읽고 몽상에 빠졌고, 용이 되지 못한 구렁이가 보물을 지키고 있다는 전설은 진짜일까 싶을정도로 흥미로웠다. 바다에 떠내려오는 물건 중에 신기한 것이 있는 날은 하루종일 흥분상태였다. 섬을 촬영한 사진 위에 배추, 무, 둘리, 연필 따위를 그려넣은 건 그 당시의 기억과 몽상에 대한 오마주인 셈이다.

강홍구, 구름과 바다, 천 위에 아크릴과 오브제, 148x438cm, 2023 [사비나미술관 제공]

3층 전시장엔 바다를 그린 회화도 있다. 폭풍우가 몰려오는 하늘아래 울부짖는 듯한 파도가 압권이다. “도저히 사진으로는 이 느낌을 담아낼 수 없어서” 붓으로 그려냈다. 작가는 작가 노트에서 “아마도 카메라와 붓을 들고 돌았던 17년의 세월과 신안 바다 모든 곳이 옛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여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수 십 년이 지나 다시 만나는 첫사랑과의 재회처럼, 익숙한 낯설음이 전시장을 채웠다. 4월 23일까지.

강홍구 작가 [사비나미술관 제공]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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