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깨알같은 디테일로 꽉채운 복수...‘김은숙’이라 가능했다
라이프| 2023-03-16 11:21
심각한 학교폭력을 소재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파트2가 지난 10일 공개 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심각한 학교폭력을 소재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파트2가 지난 10일 공개 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15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 패트롤’에 따르면,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파트2(9화~16화)는 공개 하루 만인 11일 넷플릭스 글로벌 ‘톱TV 쇼’ 부문에서 세계 3위를 차지한데 이어 12일에는 세계 2위를 차지했다. 공개 사흘 만인 13일에는 넷플릭스 월드랭킹 1위를 차지한 후 이날까지 톱(Top) 순위를 유지 중이다.

화제성을 입증하듯 ‘더 글로리’에 나온 배우 송혜교와 임지연 등 출연 배우 7명이 3월 2주 차 굿데이터 TV-OTT 드라마 출연자 중 화제성 부문 순위에서 톱10에 진입했다.

‘더 글로리’는 유년 시절 학원폭력을 당해 영혼까지 부서진 문동은(송혜교 분)이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처절한 복수와 그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파트 2에서는 극중 학교폭력의 피해자 문동은이 조력자인 주여정(이도현), 강현남(염혜란) 등과 함께 가해자 무리에게 어떻게 복수하는 지를 치밀하고, 정밀하게 그려냈다.

문동은은 극 중에서 오랜 시간 박연진 무리에 대한 복수를 계획하면서 독백 또는 대사로 ‘연진아’를 자주 부른다. 극중 송혜교가 하는 명대사인 “나 지금 되게 신나. 연진아”에도 나오는 ‘연진아’는 올해의 유행어가 될 조짐이다. 송혜교 뿐만 아니라 박성훈, 차주영 등 가해자 그룹의 여러 배우가 “연진아”라고 말하는 연진아 시리즈가 편집으로 모아져 ‘귀에서 피나는 연진아 #netflix #더글로리’라는 제목의 밈으로 돌아다닐 정도다.

그런가 하면 학폭 가해자로서 의혹을 받고 한동안 부인하던 ‘더 글로리’ 안길호 PD가 과거 고교시절 폭력 행사 의혹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일이 벌어졌다. 네티즌 사이에는 “학폭 당사자 PD가 어떻게 학교폭력물을 다룬 드라마를 연출할 수 있느냐”며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더 글로리’의 파트2는 음미해볼만한 내용과 구성들이 많다. 실제 있었던 학원 폭력을 바탕으로 집필된 ‘더 글로리’ 파트2의 복수 서사는 권선징악이 기본이다. 단순한 악인 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 구조를 정교하게 잘 세워 학교 폭력의 심각성과 경각심을 높이는 사회적 메시지를 주고 있다.

당했던 것을 그대로 돌려주는 복수 방식이라면 작위적이고 식상했겠지만, 김은숙 작가는 각자에게 어울릴만한 응징과 처벌을 단계적으로 치밀하게 구성해 식상함을 피해갔다. ‘복수의 디테일이 좋다’는 말이 이 지점에서 나온다.

가령 동은이 자신처럼 함께 당하는 입장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도와주지 못한 김경란을 제외하고 온전히 연진에게만 손명오(김건우) 살해의 책임을 넘기는 장면이 한 예다. 이로써 소희-동은-경란이라는 학폭 피해자들의 뜨거운 연대가 마련된다.

악행을 저지른 재준(박성훈)이 ‘비릿한 눈으로 본다’는 대사도 녹내장을 앓고 있는 재준이 결국 앞을 볼 수 없게 되는 결과와 맞물리며 기가 막힌 포석이 됐다는 평가다. 대본을 쓰면서 다음 과정으로 바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 전체를 총괄하는 구조가 만들어진 후 하나하나 디테일을 구상했기에 가능했다.

바둑은 동은이 연진의 남편 도영(정성일)에게 접근하는 도구로 사용되는데, 동은의 복수 방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메타포다. 바둑을 두면서 상대를 계속 공격하다 보면 자신의 집이 부서져 있는데, 바둑의 이러한 특징을 잘 살려 악의 연대에 균열을 냈다. 가해자들이 뭉친 것은 우정이 아니라 이해관계다 보니 가능했다.

“내 안에 너있다” “애기야 가자” 등 전작에서 명대사를 많이 남겼던 김 작가는 이번 드라마에서도 주옥과 같은 대사들이 자주 등장한다. “난 매맞지만 명랑한 년이에요”(현남), “물이 차다 그치. 우리 봄에 죽자”(에덴빌라 할머니가 어린 동은에게) 등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후자의 대사는 동은이가 어른이 되고난 뒤 “그리고 봄에 죽자던 그 말은 봄에 피자는 말이었다”라는 독백으로 되뇌인다.

‘더 글로리’ 파트2의 복수는 동은 혼자 하지 않는다. 폭력 남편 때문에 가정이 무너진 현남과 보건 교사 안정미, 에덴빌라 할머니(손숙), 세명초 강 선생 등 조력자들과 함께 한다. 이에 학교와 가정 등에서 폭력을 당해온 피해자들이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방안을 강구하게 한다. 그들의 뜨거운 연대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김 작가는 폭력 사회의 어른들에게도 메시지를 던졌다. 동은 엄마와 연진 엄마의 막장적인 모습과 최악의 상황인데도 딸을 위해 애쓰는 현남과 소희 엄마의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면서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극중에서 동은은 엄마에게 “내가 당신을 용서 안하는 이유는 당신이 내 첫 가해자라는 걸 당신은 지금도 모르기 때문이야”라고 말하기도 한다.

김 작가는 ‘더 글로리’를 통해 복수의 이유에 대해 “피해자가 되찾을 수 있는 건 나의 영광과 명예, 오직 그 뿐”이라며 “그래야 원점으로 돌아와 동은이 19살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복수를 마친 동은이 선택한 것은 무엇일까. 당초 계획대로 옥상 위 난간에 서기 보다 아직도 아버지의 살인마가 만들어 놓은 지옥에 있는 여정 선배를 구원하는 일이었다. 한 동안 여정에게서 떠났던 동은은 “복수가 아니라 사랑인가 보죠”라며 다시 돌아온다. 김 작가는 동은과 여정, 두 사람을 복수를 통해 구원을 이뤄내게 하고 그 와중에 멜로까지 챙긴다. 그 연결이 기가 막힐 정도로 정교하다. 장르물에 멜로가 들어가면 어설프기 마련인데, 김 작가는 이런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다.

김 작가는 이번 드라마를 통해 멜로는 물론, 치밀한 두뇌 플레이를 보여주는 장르물에서도 저력있는 작가임을 증명했다. 덕분에 그의 대중적인 기대치도 한층 올라갔다. 이처럼 작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뤄진 사회적인 드라마. 그의 치열한 글이 더욱 기대된다.

서병기 선임기자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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