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반
[송영길의 미래로 가는 길] ‘에너지 전환’이 경제다
뉴스종합| 2023-03-30 11:12
에너지 위기로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 조명시간이 단축됐다. [필자 제공]

필자는 원전을 탈탄소로의 에너지 전환을 지원하는 보충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원전을 늘려 재생에너지를 대체하는 것은 탄소중립에 역행하는 접근이지만, 그렇다고 원전이라는 보충 수단을 버리고 탈탄소로 가는 길을 열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정부가 친원전의 당위성을 주장할 때마다 원전 강국인 프랑스가 성공사례로 등장하곤 한다. 그러나 프랑스 에너지 정책의 틀 안에서 원전 정책을 살펴봐야만 의미 있는 분석이 가능하다. 프랑스의 에너지 전환 정책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같은 듯 다른 프랑스의 원전 정책

탈원전을 비판할 때마다 프랑스의 원전 정책이 한국에서 자주 인용된다. 프랑스는 원전이 에너지 믹스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원전 비중이 높으며, 29% 정도인 우리나라와 비교해도 2배 이상 높은 게 사실이다.

맥락 없이 원전 발전만 놓고 보면 프랑스의 원전 의존도는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프랑스의 마크롱 정부 역시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발버둥 치고 있으며, ‘원전 감축·재생에너지 확대’를 양대 축으로 하는 에너지전환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도 2021년 기준 23.6%로 최근 몇 년간 가파른 증가 추세를 보인다. 우리나라와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탄소배출의 주범인 석탄발전은 사실상 프랑스에서 퇴출당한거나 다름없다.

물론 프랑스도 재생에너지를 늘려 원전을 감축하려는 노력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다. 원래 목표는 원전 비중을 2015년 70%에서 2025년 50%로 낮추는 것인데, 마크롱 정부 들어 그 기준 시점을 2035년으로 10년 더 연장했다. ‘2050년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이 더욱 험난해진 것이다. 이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마크롱 대통령은 재생에너지 비율을 2030년까지 40% 이상을 상향 조정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산 가스와 원유 공급이 차단되면서 프랑스에서도 원자력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변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마크롱 정부는 2035년부터 상업운전을 하도록 설계된 6개의 EPR 원자로 건설을 제안하고, ‘2035년 원자력비중 50%’ 상한선을 삭제했다. 지난 3월 하원이 이를 의결함으로써 당분간 프랑스에서도 원전현대화를 위한 추가 투자가 계속될 전망이다.

프랑스의 원전폐쇄 정책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마크롱 대통령과 프랑스 전력회사(Jean Bernad Levy)가 원전노후화에 따른 책임 소재를 놓고 벌이는 논쟁이 점입가경이다. 골자는 정부의 무리한 원전감축 정책이 관리의 부실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원전은 56개가 가동 중이고 14개는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이 중 9곳이 배관부식으로 인한 방사능 누출 문제 등으로 점검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월성1호기 폐쇄 문제가 그 중심에 있다. 우리나라와 차이가 있다면, 프랑스의 원전폐쇄 정책은 정책적 판단에 대해 사법적 잣대를 들이대기보다는 경제적 접근을 통해 해법을 모색했다는 점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페세나임’ 원전 사례를 통해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자. 원전 수명은 대략 40년 정도인데 보강 작업을 통해 최대 60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페세나임 발전소는 2020년 폐쇄될 때까지 42년간 가동됐다. 원전 업계에는 2041년까지 20년 이상 추가 운영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시민단체 등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좌초됐다. 이 원전은 지리적으로도 벨기에, 스위스, 독일 등 여러 나라의 국경과 인접해 있어 주변국 600만 인구의 식수공급과 직결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가 이들의 원전폐쇄 요구를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크롱 정부가 내놓은 해법은 최대 운영 기간(60년)을 가정해‘ 원전폐쇄 보상체제를 마련하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페세나임 원전을 2041년까지 운영한다는 전제하에 미래의 전기판매 이익(4억유로)을 추정해 프랑스 전력회사의 손실을 지원했다. 우리나라는 이런 조치가 없었다. 근본적인 대책 없이 원전폐쇄를 한전 적자 원인으로 연결하는 것은 단선적인 접근이다. 물론 한전 적자는 원자재 인상분을 전기료에 반영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원전폐쇄로 발생하는 손실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 조치가 없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페세나임 사례는 원전폐쇄로 인한 손익구조를 국가 단위 정책으로 녹여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대안 없는 원전 건설은 ‘화장실 없는 아파트’

원전 정책이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문재인 정부의 원전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미래를 준비하는 에너지 전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정치적으로 해석해 시장을 위축시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세계적 추세에 맞지 않을뿐더러, 어렵다고 피해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재생에너지가 원전에 가려지면 우리나라는 대책 없이 탈탄소 경제에서 밀려나 국제 경쟁력을 상실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원전 정책에 있어 가장 큰 차이점은 프랑스의 경우 원전 추진과 함께 재생에너지를 대폭 확대하는 정책을 병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핵연료 재처리·재활용 기술개발과 핵폐기물 관리시설 확충을 통해 원전 정책의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수십년 전부터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고준위 핵폐기물 영구처리장’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것이 허용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사회적 공론화 과정이 이뤄진 적도 없다.

핵폐기물 관리계획 없는 원전 건설은 화장실 없는 아파트나 마찬가지다. 핵폐기물 방폐장 사례를 들어 살펴보자. ‘중저준위 핵폐기물 방폐장’을 만드는 데만 30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인천 굴업도 사태, 전북 부안사태 등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결국 경주에 겨우 건설하게 됐다. 더욱이 2050년까지 운영 계획을 마련해야 하는 ‘고준위 방사선 방폐장’은 갈 길이 첩첩산중이다. 방폐장 건설은커녕 전제조건인 지하 연구시설조차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각 원전의 폐기물 수용 한도가 포화상태에 이르는 것은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이처럼 대안없이 원전을 건설하는 것은 ‘화장실 없는 아파트’를 짓는 것이고, ‘쓰레기 소각장·매립장 없는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다.

민주당도 정부의 원전정책을 비판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EU의 녹색분류체제(Green Taxonomy)에 원전이 포함됨에 따라 탄소중립의 보조 축으로 인정받게 됐다. 대책 없는 원전 확대를 반대하는 것이지 안전한 원전의 역할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 이를 위해서는 녹색분류체제의 전제조건인 ‘사용후핵폐기물 처리’ 등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 시발점은 국회가 영구핵폐기물 건립과 관련된 법안(민주당 김성환 의원, 국민의힘 김영식·이인선 의원, 정부발의안 등)을 심의해 원전발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영구핵폐기물 처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초당적 대응이 필요하다. 공론화 과정을 통해 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를 토대로 제도화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그리고 2025년까지 요구되는 원전 사고에 대비한 고저항성 핵연료(ATF·Accident Tolerant Fuel) 개발과 확보에서도 민주당이 대안을 제시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경제가 직면한 ‘RE 100’ 리스크

글로벌 전반에 걸쳐 ‘RE100’에 동참하는 기업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애플, 구글 등 RE100을 선언한 기업은 지난해 5월 기준 371개로 늘어났다. 국내에서도 수출산업을 중심으로 이 대열에 동참하는 기업이 늘어나는 추세다. 사실상 탈탄소 경영을 강조하는 ESG(환경·책임·투명경영) 환경하에서 RE100은 이제 기업들이 피해 갈 수 없는 생존전략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RE100 기업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살펴보자. 2021년 기준 전력 다소비 상위 30개 기업의 전력 사용량은 103TWh(테라와트시)인데,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전체 발전량의 43TWh에 그쳤다. 이 정도로는 5대 기업의 RE100 달성도 어려운 수준이다. 국내 기업의 전력 사용량은 삼성(18.4TWh), SK하이닉스(9.2TWh), 현대제철(7.0TWh), 삼성디스플레이(6.8TWh), LG디스플레이(6.2TWh) 등의 순이다. 산술적으로,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지금보다 2배 이상 늘려도 우리 기업의 RE100 달성이 어렵다는 말이다.

RE100 리스크에 직면하면 탄소배출권시장에서 돈 주고 사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다. 물론 기업들이 자체 탄소배출 할당량을 전기에너지 절감, 탄소절감, 자체 재생에너지 생산 등으로 할당량보다 적은 탄소를 배출할 수 있으나 이를 초과하면 탄소배출권을 구입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유럽이 주도하는 탄소국경세(CBAM)는 2026년에 도입될 예정이다. 미국 역시 유럽연합이 탄소국경세에 발맞춰 철강, 알루미늄 등에 차별관세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유럽 27개국의 경제 규모는 미국과 비슷한 수준인데, 4억5000만명의 인구와 24조달러의 GDP를 보유한 경제공동체다. 최대 수출국인 중국(25.3%), 미국(14.9%), 유럽연합(9.9%)이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절반을 차지한다. 탄소국경세 장벽을 넘지 못하면 수출경제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뿐만 아니라, 글로벌 제조강국의 위상마저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을 보면, 탄소국경세가 추구하는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최소한의 조치인 기술개발 지원, 제도 정비 등이 대부분이고, 근본적인 대책인 배출권 유상활당 확대나 배출권 총량 축소 등 탄소배출 비용과 관련된 정책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유럽연합의 산업계 유상할당은 현재 57%이며, 철강, 알루미늄 등의 무상할당도 그 비율을 점진적으로 높여 2034년에 100% 유상할당으로 전환된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현재 무상할당으로 분류되는 철강업계다.

포스코를 예를 들어 살펴보자. 현재 선철수출가격이 t당 313달러인데 1t 생산시 1.9t의 온실가스가 발생한다. t당 탄소배출권 가격 100달러(지속 상승 전망)를 적용하면 약 190달러가 소요되는 셈이다. 여기에 2029년 유상할당 비율인 22.5%를 적용하면 약 42달러의 탄소배출 비용이 발생한다. 즉 탄소배출 비용이 수출가격의 13%를 차지해 영업이익률(8%)을 넘어서게 된다. 2029년 이후에는 철강수출이 아예 불가능하게 된다는 의미다. 제조업 비중의 높은 우리나라 수출경제에 보내는 경고장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가 기후후진국인 경제선진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모든 경제 주체들이 탈탄소로의 에너지전환에 동참해야 한다. 정부는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상호보완적 에너지원으로 인식하고, 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에 모든 정책역량을 결집시켜야 한다. 기업은 과감한 재생에너지 투자와 자원재활용을 통해 RE100 리스크에 전사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모든 제품을 RE100으로 생산하는 시기(2050 탄소중립)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기업 차원의 자구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애플의 ‘2030 탄소중립’ 선언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기업과 정부만의 노력으로 부족하다. 국민경제 차원의 시민적 운동이 필요한 시기다. 에너지 소비패턴, 폐기물 처리, 자원의 활용방식 등 생활 속에서 탄소배출을 줄이는 문화가 확산될 필요가 있다. 지금 바로 시작하지 않으면 다가오는 위기에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bonsang@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