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챗GPT 시대 감동 답변 남기고 떠난 ‘지식인 할아버지’
뉴스종합| 2023-03-30 11:23
녹야(綠野)란 아이디로 누리꾼 사이에선 ‘지식인 할아버지’로 칭송받던 조광현 옹이 세상을 떠났다. [녹야블로그 캡쳐]

Q: “죽음이 두려운 게 자연스러운 건가요? 나이 먹는 것도 무서워요.” A: “어릴 땐 다 그래요. 80살이 넘으면 오히려 죽음이 반갑고 그리워지기도 해요. 그러니 그때까지라도 살아야 합니다. 살면서 죽음이란 공포를 이겨내세요.”

Q: “산타 할아버지 나이는 몇 살인가요?” A: “아빠 나이와 동갑입니다.”

Q: “사는 건 무엇일까요?” A: “주눅들지 마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외다.”

5만3000여개의 질문과 답들. 질문도 답도 그냥 우리의 삶과 인생 얘기다. 어떤 고민은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깊은 비밀이고, 어떤 고민은 그냥 길 가다 생각난 엉뚱한 질문이다. 답도 마찬가지다. 때론 인생의 선배처럼 깊은 철학이 담겼고, 또 어떤 답변은 배꼽 잡을 만큼 엉뚱하기도 하다.

녹야(綠野)란 아이디로 누리꾼 사이에선 ‘지식인 할아버지’로 칭송받던 조광현 옹이 세상을 떠났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1년 만이다. 그의 블로그엔 애도글이 쇄도하고 있다. 챗GPT 등 아무리 기술이 진화한다 해도 인생과 연륜이 담긴 그의 조언은 따라잡을 수 없다.

고인은 지난 27일 오후 10시께 서울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29일 전했다. 향년 87세.

그의 죽음이 더 애달픈 건 불과 1년 전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는 남편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는 아내를 돌보기 위해 매일 요양원에 갔고 마지막까지 곁을 지켰다. 2022년 3월 아내를 떠나보내고, 마치 거짓말처럼 1년 뒤 그 역시 하늘나라로 떠났다. 생전 그는 서예가였던 아내가 큰 상을 수상했던 때를 “인생에서 가장 뿌듯한 순간”으로 꼽기도 했다.

고인은 경복고, 서울대 치대를 졸업 후 치과를 운영했다. 이후 61살 때 치과를 그만두고, 2004년부터 네이버 지식인으로 활동한다. 네이버 지식인은 등급이 있는데, 고인은 ‘절대신’다음으로 높은 ‘수호신’ 등급이었다.

하지만 그가 ‘녹야 할아버지’, ‘네이버 할아버지’등으로 널리 불린 건 단순히 등급 때문이 아녔다. “이재용 부회장의 아들은 세뱃돈이 얼마나 될까요?”란 질문에 “그런 생각하지 마세요. 살기 힘들어집니다”라고 답하는 등 인생 지혜가 담긴 답변으로 유명했다.

언론 인터뷰에선 답변을 위해 지금도 공부한다고도 했다. 그는 “나이를 먹어서도 모르는 건 알고 싶어 공부한다. 궁금해서 스스로 알아본 건 안 잊어버리더라. 지식은 늘 이렇게 늘려왔다”고 했다.

“내가 모르는 걸 알고 있다면 초등학생도 은인이죠. 내 선배라고 생각해요.”

그의 마지막 답변은 2022년 11월 10일. 이제 더는 촌철살인의 인생사를 들을 수 없다. 한 누리꾼은 블로그에 이런 추모글을 남겼다.

“이 시대 가장 큰 도서관이 사라진 느낌입니다. 하늘나라에서도 늘 행복하세요.” 김상수 기자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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