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축의금이 없어요” “빙수기라도 맡길게요”…불황에 전당포 찾는 MZ
뉴스종합| 2023-05-17 10:10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박지영 수습기자]“축의금이 없다며 중고 휴대폰을 맡긴 뒤 10만원을 대출해가곤, 두 달여가 지난 현재까지 휴대폰을 찾아가지 않고 있습니다”

서울 마포구 전당포를 운영하고 있는 김강진(38)씨가 전한 말이다. 그는 “20, 30대 청년들이 가게를 찾아 무선 이어폰을 가지고 와 단돈 3만원을 대출하는 사례도 많다”고 덧붙였다. 대구의 한 전당포 관계자역시 “손님 중 절반은 청년들일 때도 있는데, 대출을 잘 받을 수 없는 청년들이 전당포까지 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법정 최고금리가 지속적으로 내리면서 폐업을 선택하는 전당포가 늘고 있는 가운데, 불황 속에 급전이 필요한 청년들이 여전히 전당포를 찾고 있다. IT기기, 중고명품 등 청년 거래가 활발한 전당포 사이에선 오히려 ‘호황’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명품 가방부터 가구, 빙수기까지 내놓은 자영업자

서울 용산구에 있는 소위 ‘IT 전당포’도 주 고객이 주로 청년들이다. 17일 기자가 방문한 10평 남짓의 사무실 곳곳에 가득한 휴대폰, 노트북, 모니터 등 IT기기들 위로 먼지가 쌓여 있었다. 사장 박재균(35) 씨는 “최근엔 한 30대 남성이 ‘강아지가 아픈데, 돈이 없다’며 모니터를 맡겨 200만원을 대출했다”며 “물건을 의뢰한 뒤 견적 과정을 거쳐 돈만 챙겨 급히 자리를 뜨는 손님이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사정을 털어놓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급전은 필요하고, 신용대출은 받지 못하는 처지에 찾아와 물건을 맡기고, 결국엔 돈을 갚지 않고 물건도 찾아가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전당포를 찾는 이들의 사연엔 고물가, 부동산 하락 등 불황의 여파가 고스란히 엿보인다. 대구에서 전당포를 운영하는 A씨에게는 지난해 자영업자 부부가 찾아왔다. “원래 우리 집 잘 사는데, 부동산 가격이 떨어져서 사정이 어려워졌다”고 털어놨다는 이들은 샤넬 가방을 시작으로 가구, 전등, 마지막엔 빙수기까지 맡겨 1000만원가량을 대출했다. A씨는 “물건을 가지러 오겠다고 하더니 한동안은 이자도 내지 못하다가, 나중엔 그냥 물건을 다 팔아달라고 해서 10~20만원씩 가격을 더 쳐줘가면서 팔아줬다”고 했다.

MZ 발길 이어지지만…전당포는 “돈 안 돼”

이처럼 청년들이 전당포로 발길을 향하는 건 법정 최고금리 인하로 전당포 대출이자 부담도 적어진 영향이다. 법정 최고금리는 1962년 이자제한법 제정 당시 연 40%에서 점차 낮아져, 재작년 7월에는 24%에서 20%로 내렸다. 월 이자로 환산다면 1.66% 수준으로, 10만원을 빌리면 매달 1660원, 500만원을 빌리면 8만3000원을 지불하면 되는 수준이다. 이에 정작 전당포 사이에선 소액 대출을 문의하는 이들이 늘면서 소득이 크지 않다는 푸념도 나온다.

전당포 업주 조정훈(50)씨는 “이자수익보다 교통비가 더 드는 수준이고, 물건 처분도 중고명품 같은 경우는 최근 리셀시장에서 가격이 떨어지면서 크게 의미가 없어져 요즘엔 소액 IT기기 대출은 문의조차 받지 않는다”며 “한 달 사이에만 인근에서 같이 장사를 하던 전당포 3곳이 폐업했다”고 했다. 실제로 이날 기자가 ‘노트북을 맡기고 싶다’고 의뢰한 전당포 6곳 중 3곳은 거절했다. 한국대부금융협회 관계자도 “금리 인상으로 전당포 상인들의 자금 조달 역시 어려워지면서, 전당포를 포함해 대부업체 영업이 축소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전당포 시장 규모 자체는 커지는 추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전당포를 포함한 대부업체 담보대출 잔액은 지난해 6월 8조5486억원으로, 2021년 말(7조6131억원) 대비 12.3% 늘었다.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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