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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종료아동 정착금까지…‘로맨스 스캠’ 피해액 2년만 3억원→39억원 13배 급증
뉴스종합| 2023-05-21 14:46
[헤럴드DB]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안효정 수습기자] #.대학생 A씨(24)는 지난달 초 SNS(사회적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알게 된 신원 미상의 외국인 남성 ‘월터’에게 자신의 전 재산 약 4400만원을 송금했다. A씨는 “2017년 보육원을 퇴소하고 받은 자립 정착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아둔 돈이다. 지금 수중에 20만원 밖에 없다”며 “부모님이 없다는 사실을 털어놓는 등 저와 비슷한 처지라 생각해서 마음이 확 열렸다. 전 재산을 잃고 나서야 로맨스 스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비대면 소통을 통해 상대방의 환심을 산 뒤 금전을 뜯어내는 ‘로맨스 스캠’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국정원이 확인한 피해액만 지난해 39억원으로 2020년 대비 10배 넘게 늘었다. 로맨스 스캠은 보낸 돈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구조인 만큼 피해 구제도 어렵다.

21일 A씨 측에 따르면 A씨는 지난 8일 영등포경찰서에 윌터측이 입금할 것을 요구한 계좌주 3인에 대해 사기,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아울러 피해금이 입금된 해당 계좌주들이 이를 현금화하지 못하도록 지급 정지도 요청했다.

월터는 지난 3월 SNS를 통해 A씨에게 접근했다. 그는 자신이 한국계 미국인으로 현재 노르웨이에서 프리랜서 수석 엔지니어로 일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월터는 A씨와 카카오톡 등 메신저를 통해 가족 이야기부터 사소한 일상을 공유하며 호감을 쌓았다.

처음부터 금전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A씨 측에 따르면 월터는 고소인에게 한 사이트에 들어가 월터 자신의 명의로 된 계좌에서 재료값 37만 2000달러, 한화 약 5억원을 타인에게 이체할 것을 도와달라고 요구했다. 자신의 재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시켜주는 방식을 통해 신뢰를 쌓아간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현장 운송비, 비행기값, 세금 등 명목으로 세차례에 걸쳐 한국 지인의 계좌에 4400만원을 입금할 것을 요구했다.

A씨가 입은 피해는 전형적인 로맨스 스캠이다. 로맨스(Romance)와 신용사기를 의미하는 스캠(Scam)의 합성어로 온라인으로 접근해 상대방에게 연애 감정을 심은 뒤 금품을 요구하는 사기다. 최근 5년 사이 급증한 비대면 사기다. 국정원에 따르면 ‘국정원 111콜센터’에 접수된 로맨스스캠 사기 피해 금액은 지난 2020년 3억 2000만원에서 2021년 31억 3000만원, 2022년 39억 6000만원으로 무려 13배 늘었다. 같은 기간 신고 건수는 37건, 61건, 95건으로 피해건수는 9건, 40건, 67건으로 늘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국정원에 접수된 신고는 총 281건으로 피해가 확인된 사례는 147건, 피해액은 총 92억2000만원에 달한다. 경찰청 등으로 접수된 사건을 포함하면 신고건수, 피해액 규모는 더울 클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로맨스 스캠을 일종의 신종 디지털 범죄로 보고 관련 수사 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피해 사실과 수법을 공유하는 것을 현실적 대안으로 꼽는다. 로맨스 스캠 사기가 급증하고 있지만 피해자 구제는 어려운게 현실이다. 해외에 본거지를 둔 점 조직 형태로 조직적으로 벌어지고 있어 국내 수사로는 한계가 있다. 해외에서 온라인으로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해외총책, 국내 인출책을 관리하는 국내총책, 피해금을 직접 인출하는 인출책 등으로 나뉜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로맨스 스캠은 사회 현상이 반영된 범죄다. 이성 간 만남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고, 온라인 만남이 대중화되면서 늘어나는 것으로 보인다”며 “비슷한 범죄인 보이스피싱은 공론화가 많이 돼 디테일하게 규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전체적으로 디지털 범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로맨스 스캠은 비교적 단속이 덜해 여기로 옮겨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보이스피싱은 무차별적인 피해가 발생하는 형태지만, 로맨스 스캠은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금전이 오가서 일괄 수사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범인을 검거하는 것이 쉽지 않으니 할 수 있는 건 예방적 차원으로서 로맨스 스캠 사기를 알리는 것이 최선책이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자와 온라인 상에서 신뢰 관계를 만드는 게 얼마나 위험하고 무의미한 일인지 알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park.jiye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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