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김지운!" 이름 맞춰 짝짝짝…'거미집' 칸서 7분간 기립박수
라이프| 2023-05-26 12:09

제76회 칸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진출한 영화 '거미집'의 배우들이 25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레드카펫 행사에 도착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수정(크리스탈), 오정세, 장영남, 임수정. [연합]

[헤럴드경제=이명수 기자] 26일(현지시간) 오전 1시께 제76회 칸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 진출작 '거미집' 상영이 끝나자 2천석 규모의 뤼미에르 대극장이 박수 소리로 들썩였다.

영화가 끝나고 시작된 박수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며 잠시 잦아지는가 싶더니, 장내가 밝아진 후 관객들이 일제히 일어나 다시 한번 큰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스크린에 김지운 감독과 주연 배우 송강호 등의 얼굴이 비치자 극장 안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누군가가 김 감독의 이름을 연호한 뒤부터 관객들은 박자에 맞춰 '짝짝짝'하고 연이어 손뼉을 쳤다.

관객에게 손을 흔들고 함께 손뼉을 치던 김 감독은 감격한 듯 눈시울을 붉혔다. 그가 칸영화제에 초청받은 것은 2008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후 15년 만이다.

기립박수는 김 감독이 칸영화제 집행위원장인 티에리 프레모 감독에게서 마이크를 건네받기 전까지 7분 넘게 계속됐다.

김 감독은 "영화를 즐겁게 봐주셔서 감사드린다. 칸에 올 때마다 영화를 정말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간다"며 "송강호 씨 등 모든 배우, 스태프에게 제가 지금 느끼는 감정을 나눠주고 싶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관객들은 김 감독과 배우진이 극장을 나설 때까지 다시 한번 힘찬 박수를 보냈다. 먼저 자리를 뜨는 관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시사회에 초대된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도 김 감독 바로 뒤에서 그에게 축하를 건넸다.

김 감독 옆에 자리한 송강호는 줄곧 김 감독의 어깨를 다독이며 격려했다.

'거미집'은 황금종려상 수상작 '기생충'(2019)으로 존재감을 각인하고 지난해 '브로커'로 남우주연상까지 가져간 송강호의 차기작이라는 점에서 영화 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이날 시사회 전 레드카펫 행사에서도 스포트라이트는 단연 그에게 쏠렸다.

차에서 내려 레드카펫으로 향하는 그에게 팬들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와 사인 요청이 쏟아졌다. 송강호는 이들에게 손 인사로 화답했다.

극장 안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레드카펫을 밟는 송강호의 모습이 스크린에 나오자 휘파람과 환호성을 보냈다.

영화 상영 중에는 그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웃음과 박수가 나왔다.

극 중 송강호는 걸출한 데뷔작을 내놓은 다음부터는 평단으로부터 "싸구려 치정물"만 만든다고 혹평받는 1970년대 영화감독 김기열을 연기했다.

영화는 기열이 며칠 내내 꾸는 꿈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얼마 전 촬영을 마친 '거미집'의 새로운 결말을 암시하는 내용이다. 이 꿈처럼 몇 장면만 바꾸면 마침내 걸작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그는 고심 끝에 이틀간 영화를 다시 찍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제작 환경은 그의 열정에 맞춰 움직여주지 않는다. 유신정권의 문공부는 서슬이 퍼렇게 검열해대고, 배우들은 하루에도 몇 개 세트장을 오가며 겹치기 출연을 해 스케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카메라 등 장비는 시간을 지켜 반납해야 해 마음껏 촬영할 수도 없다. 제작자는 다 찍어놓은 영화를 왜 다시 찍냐며 반대한다.

어찌어찌해 배우와 스태프를 불러 모은 그는 세트장 문을 쇠사슬로 걸어 잠그고 촬영에 들어간다. 그러나 촬영하는 동안에도 장애물은 끊임없이 생긴다. 문공부 직원이 갑자기 촬영장에 들이닥치고, 바뀐 역할이 마음에 들지 않는 배우는 못 하겠다 드러눕는다. 남녀 배우 간 스캔들이 드러나는가 하면 폭행도 빚어진다. 기열은 그가 꾼 꿈대로 걸작을 완성할 수 있을까.

극중 주인공은 김기열이라는 이름은 물론 안경을 낀 채 파이프를 물고 있는 외양까지 고(故) 김기영 감독을 떠올리게 한다. 기괴한 스토리와 파격적인 연출 스타일의 극중극 '거미집'도 김기영 감독 작품의 오마주로 보인다.

기열은 김지운 감독의 페르소나이기도 하다. 좋은 영화를 만들겠다는 기열의 열정 혹은 집착은 김지운 감독이 내내 느꼈을 감정이다. 모든 짐을 짊어진 채 촬영을 끝내고 외롭게 앉아 있는 기열의 모습에서도 김지운 감독이 겹쳐 보인다.

이 영화는 김지운 감독이 한국 영화를 개척한 선배 감독들, 나아가 모든 영화인에게 바치는 일종의 헌사다.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피와 땀, 눈물이 들어가는지를 '거미집'으로 보여준다.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도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들과 배우들, 스태프를 고루 비추며 감사의 마음을 건넨다. 그의 이런 마음은 송강호의 대사 한 마디로 고스란히 드러난다.

"영화는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

이날 관객들이 보낸 환호와 박수의 의미도 다르지 않을 듯하다.

husn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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