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헤럴드시사] 관대함과 불신
뉴스종합| 2023-06-07 11:06

형사사건의 경우 검찰 수사나 처분, 법원 재판은 증거와 법리를 토대로 결론이 난다는 것은 진리에 가깝다. 물론 변호사의 역량이나 열정, 검사나 판사의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죄의 무게(예컨대 양형)가 다소 달라질 수는 있지만 죄가 없는데 처벌을 받거나 그 역의 경우는 거의 찾기가 어렵다.

그런데 ‘사법 불신’이라는 단어는 끊임없이 제기된다. 언론에도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것이 ‘사법 불신’이고, 정치권에서도 이를 불식시키겠다며 다양한 법률안이 발의되곤 한다. 검찰이나 법원은 억울하게 생각할 것이 틀림없다.

대부분 판사나 검사는 증거와 기록을 토대로 법리 판단을 한 결과물을 국민에게 제공하기 때문이다. 만일 편견에 사로잡히거나 법리나 증거를 무시한 사법 판단이 비일비재했으면 벌써 우리 사회는 무너졌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국민은 여전히 검찰 수사나 법원 판결이 불공정하다고 느끼고 있다. 특히 권력이나 기득권층에 대한 수사나 판결이 일반 사건과 다르게 취급될 경우 사법 불신은 커져만 간다. 이러한 불신을 제공한 당사자는 다름 아닌 검찰과 법원이다. 벌써 몇 년째 우리 사회를 편 가르게 만든 두 가지 사건을 예로 들어보겠다.

지난달 4일 김건희 여사가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에 관여했다는 야당의 고발 사건에 대해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는 언론 보도를 접했다. 이 사건이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도이치모터스 사건 수사가 시작된 것은 문재인 정권인 지난 2020년이다. 권오수 전 회장에 대한 1심 판결이 선고된 지도 벌써 3개월이 지났다. 햇수로 3년이 지났는데도 검찰은 김 여사에 대한 수사 결과를 국민에 내놓지 못하고 있다. 나는 김 여사가 죄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검찰은 국민의 의혹을 불식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이다. 혐의가 있으면 기소하고, 없으면 불기소하면 된다. 이 과정에서 대면 수사가 필요하면 소환조사를 하면 된다. 더구나 수사 대상자가 영부인이기 때문에 검찰은 한 점 의혹 없이 사건을 결론 내야 한다.

현 검찰은 수사를 맡았던 문재인 정권 당시 검찰 수뇌부가 결론을 내지 못한 것에 대해 원망이 클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민이 그때 검찰과 현재 검찰을 일일이 구별해서 고려해야 할 의무는 없다. 연말이면 야당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한 특검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이제 검찰에게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다.

최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인 조민 씨의 유튜브가 화제다. 개설 11일 만에 구독자가 10만명을 돌파했다. 의전원 입학 취소든, 어머니가 수감 중이든 유튜브 개설은 성인인 조민의 자유다. 그런데 그냥 넘어가기에는 찜찜한 점이 있다. 조국 전 장관에 대한 1심 판결문에 입시 비리와 관련해 조국이 배우자와 조민과 ‘공모’한 점을 명확히 남겼기 때문이다. 조민 씨는 부모와 범죄를 저지른 공범이란 점을 법원이 우회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검찰은 대체 무슨 이유로 조민 씨를 기소하지 않은 걸까. 그리고 법원은 조국에 대해 범죄의 동기와 죄질이 불량하다고 실형을 선고하면서도 증거 인멸 염려가 없고 사회적 유대관계가 있다고 해 법정 구속은 하지 않았다.

과연 조국이 아닌 일반 국민이 같은 범죄를 저질렀으면 어떻게 됐을까.

검찰과 법원의 관대함으로 인해 “딸 때문에 다른 학생이 떨어진 적은 없다”는 조국 전 장관의 말이나 “나는 떳떳하다.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는 조민 씨의 말을 들으며 대다수 국민은 분통을 터뜨려야만 했다.

국민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권력층이나 특권층이 연루된 사건 처리 과정을 사법 공정의 잣대로 삼는 경우가 많다.

법원과 검찰은 평상시 아무리 공정하게 사건을 처리해도 ‘말짱 도루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dand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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