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평창에 또 음악제가 생겼나요?” 평창대관령음악제 20년, “정체성 확립이 과제”
라이프| 2023-06-08 07:40
평창대관령음악제의 4대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양성원은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평창대관령음악제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해외 아티스트 섭외를 위해 접촉하다 보니 ‘평창에 다른 음악 페스티벌이 또 생겼냐’고 묻더라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었습니다.”

올해로 성년이 평창대관령음악제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성공한 음악 축제 중 하나다. 바이올리니스트 강효(78)와 정명화(79)·정경화(74) 자매, 피아니스트 손열음(37)이 이 음악 축제의 예술감독으로 지난 성취를 이끌었다.

4대 예술감독으로 지난 2월 위촉된 첼리스트 양성원은 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대표하는 음악 축제로 눈부신 성장을 이룬 평창대관령음악제가 중장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고민하는 것이 첫 과제였다”고 말했다.

“해외 음악가를 접촉할 때, ‘더 그레이트 마운틴스 뮤직 페스티벌’, ‘평창 뮤직 페스티벌’ 등을 혼재해 썼어요. ‘뮤직 인 평창(Music in PyeongChang)’이라는 브랜드 정체성을 확고하게 자리매김하도록 노력했습니다.”

양 예술감독은 첼리스트로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후학 양성(연세대, 영국 런던 로열 아카데미 오브 뮤직(RAM) 교수)에도 힘쓰고 있으며, 프랑스에서 매년 열리는 페스티벌 오원(2011년~)과 페스티벌 베토벤 드 보네(2018년~)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에선 여수 예울마루 실내악 페스티벌(2013년~)도 기획하고 있다. 그는 “예술감독이라는 타이틀로 일하는 것은 큰 부담이다”라면서도 “12~13년 쌓아온 경험은 매우 소중한 데이터가 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준비해 더욱 탄탄하게 깊이 뿌리내릴 수 있는 페스티벌을 이끌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성원 예술감독 [평창대관령음악제 제공]

스무 살 평창대관령음악제는(7월 26일~8월 5일까지) ‘자연’을 주제로 한다. 총 20회로 이어질 모든 공연에 “자연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곡을 배치”(양성원)했다. 양 예술감독은 “대도시에서 받은 스트레스에서 해방돼 순수한 마음과 깨끗해진 머리로 듣는 음악에서 깊은 영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개막공연의 첫 곡은 그리그의 ‘페르귄트 모음곡’. “맑은 공기의 평창에서 아침 산책하는 느낌을 줄 것”이라는 판단이다. 음악제에선 ‘찾아가는 음악회’(8회), ‘실내악 멘토십 프로그램’, ‘찾아가는 가족 음악회’도 진행한다. ‘찾아가는 가족 음악회’에선 무성영화에 맞춰 즉흥연주를 들려주는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출연하는 음악가들도 다양하다. 그간 평창을 찾지 않은 음악가들은 물론 K-클래식 스타들이 총출동한다. 지난해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같은 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첼로 부문에서 우승한 첼리스트 최하영, 도쿄 비올라 콩쿠르에서 우승한 비올리스트 박하양, 올 초 모차르트 콩쿠르에서 우승한 현악사중주단 아레테 콰르텟 등이 나온다. 양 감독은 콩쿠르 우승자뿐만이 아니라, 조명받지 못한 음악가들도 소개하는 무대로 평창대관령음악제를 이끌 것이라고 했다.

“올해 음악회엔 처음 오는 아티스트들이 많아요. 높은 예술적 수준을 갖췄는데 무대에 설 기회를 갖지 못하는 음악가들이 있어요. 그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축제를 만들고 싶어요. 특히 평창은 콩쿠르에서 2, 3위를 했던 음악가들도 조명하는 무대가 될 겁니다.”

특별한 손님도 있다. 우크라이나의 스트링 오케스트라 ‘키이우 비르투오지’다. 전쟁으로 고국에서의 음악 활동을 중단한 이 악단은 현재 이탈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다. 음악제 기간 중 공연뿐 아니라 비무장지대(DMZ)에서 하는 연주도 추진 중이다.

양 예술감독은 “전쟁에 의한 희생자뿐 아니라 예술 활동을 멈춰야 하는 음악가들도 너무나 비참한 상황에 놓였다”며 “우리만의 페스티벌보다는 세계 사회에 기여하는 페스티벌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평창대관령음악제는 예산 삭감으로 인한 페스티벌 축소 우려도 있었다. 양 예술감독 역시 “지난 몇 해보다 더 어려운 재정 상태다. 안정적 재정은 축제의 지속성을 위해 중요하다”는 점을 언급했다. 다만 그는 “슈퍼스타들의 출연이 반드시 음악제를 풍성하게 하는 방법은 아니다. 우리의 상황과 예술적 가치를 나누는 축제라는 점을 충분히 설명했을 때, 출연료가 맞지 않아 섭외에 응하지 않은 음악가는 단 한 명 뿐이었다”고 했다.

양 예술감독이 그려가는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정체성은 “뛰어난 예술성과 사회에 기여하는 축제”다. 이를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축제를 이어갈 계획이다. 해외 음악가의 초청은 물론, 평창대관령음악제를 바탕으로 한국 음악가들의 세계 무대 진출도 모색한다. 그는 “세계적 예술가가 음악제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이름으로 한국 음악가를 세계 무대에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내년엔 “파트너십을 맺은 이탈리아 시에나의 키지아나 페스티벌 무대에 한국 음악가들이 설 예정”이다.

shee@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