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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에 유리해진 청년도약적금…은행들은 ‘호구’가 아니었다 [홍길용의 화식열전]
뉴스종합| 2023-06-09 10:36

금융은 자본주의의 핵심이다. 많이 가질 수록 유리하다. 적게 가진 자에게 유리하도록 하려면 누군가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비용 부담을 꺼린다면 포용적 금융은 불가능해진다. 금융을 정치로 접근할 때 부작용이 따르는 이유다. 정치에서 출발한 청년도약적금도 결국 부작용의 벽에 가로 막힌듯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근로·사업소득이 있는 19~34세 청년이 매달 70만원 한도 내에서 저축을 하면 정부가 월 10만~40만원을 보태 10년에 1억원을 만들 수 있는 청년도약적금을 공약했다. 하지만 정부 부담이 너무 크고 기간도 지나치게 길다는 지적에 내용을 수정한다.

우선 정부 기여금을 월 최대 2만4000원으로 낮추고 기간과 금액도 5년 5000만원으로 수정했다. 사실 10년에 1억원 보다 5년에 5000만원이 더 어렵다. 정부 지원을 줄였으니 결국 부담은 은행 몫이다. 게다가 올 초까지 오르던 금리가 최근 크게 하락해 은행들의 부담은 더욱 커지게 됐다.

하지만 은행은 호구가 아니었다. 8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기업·부산·광주·전북·경남·대구은행이 은행연합회에 청년도약적금 기본금리(3년 고정)를 밝혔다. 국책인 기업은행이 4.5%로 가장 높았고, 준국책인 농협은행(4.0%)이 뒤를 이었다. 민간은행들은 마치 짠 듯이 모두 3.5%였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4월 예금은행 평균 수신금리는 정기예금(5년 이상)이 3.26%, 정기적금(3~4년)이 4.25%다. 은행들이 판매하는 특판상품들 가운데에는 이 보다 높은 금리를 주는 상품도 수두룩하다. 명색이 대통령이 공약한 정책상품인데 은행들은 평균에도 못미치는 금리로 답한 셈이다.

물론 우대금리도 있지만 깐깐하다. 저소득자(총급여 2400만원 이하, 종합소득·사업소득 1600만원 이하)에 겨우 0.5%포인트 얹어준다. 그래 봐야 4%다. 은행별 우대금리가 최대 2%포인트다. 은행별 우대금리는 금융거래 실적이 많을 수록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저소득자와는 거리가 멀다.

정부가 공언한 ‘월 70만원으로 5년에 5000만원 마련’을 위해서는 최소 연 6% 금리가 필요하다. 저소득과 은행별 우대금리를 동시에 받기는 극히 어렵다. 은행별 금리를 볼 때 6%가 가능한 유일한 조합은 기업은행에서 은행 우대금리를 최대한으로 받는 방법 뿐이다. 저소득자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은행들이 이처럼 내놓고 청년도약적금을 홀대하는 이유는 뭘까? 팔수록 밑지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5년간 가입자 평균월납입액 50만원에 금리가 연 6%면 이자 총액은 481만원이다. 금리가 연 5%면 399만원이다. 정부 예상 가입자 300만명에게 82만원씩 더 주려면 2조4600억원이 필요하다.

원래 은행은 푼돈으로 목돈을 만드는 적금 보다 처음부터 목돈인 예금을 더 좋아한다. 대출로 벌 수 있는 돈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목돈을 맡기는 예금에 더 많은 이자를 주는 이유다. 가뜩이나 적금을 달갑지 않은데 심지어 기간이 5년이나 되는 정책상품이라면 은행 입장에서는 골칫거리다.

결국 은행들은 청년도약적금 금리를 적금상품 평균치 아래까지 낮춤으로써 단 한 푼도 손해 보지 않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심지어 청년도약적금을 담보로 한 대출금리도 수신금리에 1.0%~1.3%포인트 더한 수준으로 정했다. 일반 상품의 1.0~1.25%와 비슷한 수준이다. 정책금융상품이지만 긴급한 사정으로 돈이 필요할 때 계좌를 유지하는 비용이 꽤 높은 셈이다. 대출 가산금리가 1%포인트 이하인 곳은 기업은행(0.6%포인트)이 유일하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에 가입자가 몰릴 수 있는 구조다. 기업은행의 부담이 커져 재무건전성이 악화되면 정부가 국민 혈세로 자본을 보강해야 한다.

이쯤 되면 은행이 금융위에 내놓고 반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금융위는 왜 이를 막지 못했을까? 우선 최근 금리가 하락해 연 6%는 구조적으로 무리한 금리 수준이 됐다. 아무리 금융위가 힘이 있어도 민간기업인 은행에 조 단위 비용부담까지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정부 사정도 빠듯하다.

금융위는 청년도약적금 가입자를 300만명 정도로 예상하고 올해 6~12월 지원금 예산으로 3678억원을 책정했다. 월 525억원 꼴로 5년이면 3조1500억원다. 정부가 추정한 가입 적격자는 400~500만명에 달한다. 올해 세수 부족이 심각한데 예상보다 가입자가 크게 늘면 재정부담이 더 커진다.

청년도약적금에 가입할 수 있는 소득자격은 중위가구 평균소득 180%까지다. 2인 가구기준 월 622만원 이하다. 꽤 소득이 높은 가구까지 포함된다. 이자가 다소 낮더라도 이자소득 비과세 혜택은 매력적이다. 저소득층 보다는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청년들이 꽤 몰릴 듯 하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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