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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쟁의 손해책임…대법 “조합원 개인과 노동조합 동일하게 보는 건 부당”
뉴스종합| 2023-06-15 13:35
대법원[헤럴드DB]

[헤럴드경제=유동현 기자]노동조합의 쟁의행위로 회사가 손해를 입어 노동자에게 책임을 물으려면 불법 행위의 정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불법쟁의로 인한 손해 발생 시 조합원 개인에게 노동조합과 동일하게 책임범위를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취지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5일 현대자동차가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을 상대로 낸 두 건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각각 부산고법, 울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

현대차는 2011년 11월 15일~12월 9일 사이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 지회 조합원들이 울산 1·2공장을 점거하고 278시간 동안 가동을 중단시키는 파업을 벌이자 고정비(371억여원) 상당 손해를 입었다며 노동자 29명을 상대로 2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당시 울산공장 사내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은 현대차를 상대로 정규직 전환요구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노동쟁의를 벌였다. 대법원이 2010년 사내하청 소속 근로자 A씨에 대한 부당해고구제신청기각 취소 소송에서 ‘현대차가 불법파견으로 A씨를 2년 이상 고용했으므로 직접 고용으로 간주한다’는 취지의 파기환송 한 뒤 조합원들이 전원 정규직 전환 등을 요구하는 특별교섭을 요구했으나 거부한 게 발단이 됐다. 또 2013년 7월 현대차 공장 내 일부 라인을 점거해 63분간 중단된 행위에 참여한 비정규직 조합원 5명을 상대로 사측은 추가로 4530만원 규모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대법원은“개별 조합원 등에 대한 책임제한의 정도는 노동조합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조합원들이 조합과 동일한 책임을 부담한다는 전제 하에 책임을 50%로 제한하는 원심 판단은 형평의 원칙에 비춰 불합리하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은 “위법한 쟁의행위를 결정, 주도한 주체인 노동조합과 개별 조합원 등의 손해배상책임의 범위를 동일하게 보는 것은 헌법상 근로자에게 보장된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고 손해의 공평, 타당한 분담이라는 손해배상제도의 이념에도 어긋난다”고 했다.

1심은 원고 일부 승소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쟁의행위는 정당성이 없는 쟁의행위로서 불법해위를 구성한다”며 20억원 전액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사내하청노조 조합원들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내의 협력업체 소속된 근로자로서 직접 근로계약관계에 있지 않고, 사내하청노조 소속 근로자 중 일부(A씨)가 법원의 판결을 통해 현대차 근로자로 고용 간주되는 파견근로자로서의 지위를 확인받았더라도 사내하청노조 조합원에게 판결의 효력이 그대로 미치는 것은 아니다”며 “조합원들이 단체교섭 주체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단체교섭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울산공장 1공장을 점거해 생산라인을 전면 중단시킨 것은 법질서의 기본원칙에 반하는 폭력의 행사까지 나아간 것으로 사회통념상 용인될 만한 정도를 넘어선 반사회적 행위에 해당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29명 조합원 중 적극적으로 공장을 점거하고 사측의 손해 발생을 의도한 점이 인정된 11명에 대해서만 책임을 인정했다. 나머지 18명에 대해선 단순 파업 참여 정도로 보고 배상 책임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후 현대차는 정규직 전환 소송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25명에 대해 소송을 취하했고, 나머지 조합원 4명에 대해 항소했다.

2심은 남은 조합원 4명이 “20억원과 그에 따른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사내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이 현대차에 2년 이상 파견돼 근무했다면, 원고와 직접적인 근로계약관계에 있는 것으로 간주돼 단체교섭의 주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다만 쟁의행위는 그 방법과 형태에 있어서 폭력이나 파괴행위를 수반하는 등 반사회성을 띠지 않아야 정당한 정당행위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 사건은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과 유사 쟁점이 있는 사건으로 주목받았다. 노란봉투법은 크게 ▷사용자 범위 확대 ▷노동쟁의 범위의 확대 ▷불법쟁의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 시 엄격한 증명책임 부과로 축약된다. 법이 시행되면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라도 근로조건상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다면 사용자로 간주된다. 인정되는 노동쟁위 범위도 넓어진다. 기존엔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쟁에 국한됐지만 이미 결정된 근로조건을 두고도 노동쟁의가 가능해져 가령 단체교섭 이후라도 쟁의가 가능해진다. 또 불법 쟁의행위에 참여한 조합원들에 대해 각각 책임범위를 나눠야한다. 기존엔 공동불법행위로 간주하고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으나 앞으론 사측이 개별로 배상책임을 증명해야하는 제약이 생긴다.

dingd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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