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일반
러·중 상대하느라 지친 美, 이란 핵위기 ‘플랜 C’ 선택
뉴스종합| 2023-06-15 17:03
[로이터]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미국이 이란의 핵개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밑 협상을 시작했다. 이란의 핵개발을 실질적으로 막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중국과의 양면 갈등 상황에 놓인 미국이 우선 현재 상황을 관리하며 시간을 벌기 위한 ‘플랜 C’를 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미국 뉴욕에서 미국과 이란의 고위급 논의가 시작됐으며 백악관 관계자들이 추가 접촉을 위해 최소 3번 오만을 방문했다. 백악관에선 브렛 맥거크 중동조정관이 참여했고 이란에서는 핵 협상가인 알리 바게리 칸이 협상팀을 이끌었다. 양측 대표단은 직접 만나지 않았지만 오만 고위 관리들이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움직임과 맞물려 미국 당국은 이라크 정부가 이란에서 수입한 전기와 가스에 대한 대금 25억유로(약3조4590억원)의 지급을 승인했다. 이 자금은 미국의 대이란 경제 제재로 동결된 상태였다. 이와 관련해 한국 우리은행에 동결된 석유 수출대금 약 70억달러에 대한 동결해제도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핵합의 문제 뿐 아니라 미국인 포로 석방도 중요한 의제로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카타르가 양국 사이에서 수감자 석방 논의를 중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헨리 롬 워싱턴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이전에도 비슷한 자금 이전 승인 결정을 내린 바 있지만 이번에는 이란과의 긴장을 완화하려는 흐름과 떼어 놓고 해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이 이란과 핵 문제를 논의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언급도 늘어나고 있다.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 지도자는 지난 11일 “이란의 원자력 산업 인프라가 유지된다는 조건으로 서방과 핵합의를 하는 것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자국 의회 외교위원회에서 미국이 이란과 핵 관련 임시 합의(미니 딜)를 맺기로 결정했다고 밝히며 “이스라엘은 이러한 미니딜과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라며 수용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스라엘은 이란과의 핵합의 복원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중단시키는 것이 아니라 연기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협상에 반대해왔다.

중동 전문 매체 미들이스트아이의 보도에 따르면 임시 합의는 이란이 우라늄 농축 농도를 60% 이하로 유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사찰을 허용하는 대신 하루 100만배럴의 원유 수출을 보장받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지난 2015년 타결된 기존 핵합의(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는 이란이 농축할 수 있는 우라늄 농도를 3.67%로 제한하고 대 이란 제재를 해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외교 전문 매체 포린어페어스(FA)는 “바이든 행정부는 JCPOA를 부활시키는 플랜A와 이스라엘이 제안한 플랜B, 즉 이란에 대한 정치적, 정제적, 군사적 압력을 가하는 것을 모두 피했다”며 “대신 이란과의 핵 교착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최악의 결과(핵 개발 성공)를 막고 향후 해결 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해 플랜 C를 선택했다”고 평가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란이 우라늄 비축량을 계속 늘리더라도 농축 수준을 무기급(90%)로 높이지 않는 한,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피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이스라엘과의 대규모 훈련, 군사력 사용에 대한 위협, 유럽과의 공조를 통해 이란의 선택지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플랜 C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포린어페어스는 “미국은 유럽에서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도 관심을 중동에서 중국과 러시아와의 패권경쟁으로 돌리려고 했다”며 “미국 관리들은 더 중요한 문제로 자원을 돌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와 대리전쟁을 수행하고 있고 아시아 태평양지역에서는 중국의 부상을 막기에 급급한 미국 입장에선 중동 문제가 다시 불거지는 것을 원하지도 않지만 적극적으로 개입해 해결하는 데에도 한계를 느꼈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플랜C에는 명백한 한계가 존재한다. 이란은 미국의 위협을 과소평가하거나 이스라엘과의 갈등을 이유로 무기급 우라늄 농축을 강행할 수 있다. 이 경우 결과적으로 이란의 핵시설에 대한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군사적 공격이 야기될 수 있다.

또한 이란은 미국이 시간을 버는 동안에도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며 제재를 회피할수도 있다.

가장 큰 위험은 이란이 농축 우라늄 비축량을 늘리는 가운데 핵 프로그램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라늄 농축 과정에서 더 많은 수의 고급 원심분리기를 운영하면서 핵 개발을 위한 귀중한 지식을 지속적으로 쌓을 수 있다. 향후 핵 협상을 통해 핵 물질을 제거하더라도 이미 축적한 핵 관련 지식은 제거할 수가 없다.

워싱턴포스트(WP)는 “바이든 행정부는 하메네이에게 새로운 거래가 없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보내야 한다”면서 “기존 제재에 더해 동맹국들이 더 많은 제재를 가하도록 장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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