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일반
美 샌프란도 홍콩도 “사무실 텅텅”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 위기 확산
뉴스종합| 2023-06-20 17:26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심화하고 있다.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글로벌 주요 도시의 60%가 금융 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의 사무실 공실 위기를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홍콩 국제금융센터. [로이터]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우리는 빈 사무실의 완벽한 폭풍을 보고 있다” (유럽 자산관리회사 CEO)

글로벌 상업용부동산(CRE) 시장의 공실 물결이 거세지고 있다. 팬데믹(대유행) 이전 가장 뜨거웠던 상업지구 중 하나인 미 샌프란시스코 등이 원격근무 확산과 기술기업의 이탈로 최악의 공실 사태를 맞고 있는 가운데, 상업용 부동산 위기는 금리 인상, 지정학적 위기와 맞물리며 아시아의 금융 허브인 홍콩과 유럽 등 전세계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지난 17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부동산 시장조사업체 CBRE 보고서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글로벌 주요 17개 도시 중 10개에서 공실률이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계 평균 사무실 공실률은 같은 기간 기준 12.9%로 집계됐다. 금융 위기 당시 기록한 13.1%에 0.2%포인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주요 도시 60%가 ‘역대급 공실’…미중 갈등에 홍콩도 위기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상업지구 거리의 모습. 재택근무 확산과 기술기업들의 인력 구조조정 등의 영향으로 샌프란시스코의 사무실 공실률은 30%까지 치솟았다. [로이터]

공실률 증가의 물결은 미국과 유럽, 아시아 등 세계 각국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위기가 가장 빠르게 가시화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다. 지난 13일 CBRE에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이 몰려있는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도심 금융지구 사무실 공실률은 약 30%에 달한다. 원격근무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데다, 지역 사무실 수요를 견인했던 메타와 세일즈포스, 리프트 등 기술기업들이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을 벌인 결과다. 팬데믹 이전 이 지역의 공실률은 6%에 불과했다.

CBRE는 현재 미국의 전체 사무실 공실률은 18%로 1990년대 이후 최악의 수준이라고 밝혔고, 미 사무실 점유율을 추적하는 XY센스는 북미 지역의 사무실 활용률이 팬데믹 이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보고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상업용 부동산이 즐비한 홍콩도 역대급 공실률을 경험 중이다. 블룸버그는 홍콩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청콩센터는 6월 기준 현재 약 25%가 비어있는 상태고, 부동산 전문기업 핸더슨랜드그룹이 건설 중인 빌딩도 공실률이 70%에 육박한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 업체 컬리어스에 따르면 4월 기준 홍콩의 A급 사무실 공실률은 15%에 육박하는데, 이는 팬데믹 이전인 2019년 대비 3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12.5%와 싱가포르의 4.6%를 훨씬 웃돈다.

홍콩의 상업용 부동산 경기 둔화의 배경은 주춤해진 중국의 경제 성장과 미중 갈등이 지목된다. 지난 2019년 범죄인인도법 반대 시위로 홍콩의 정세가 불안정해지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탈 홍콩’ 움직임이 본격화한 가운데, 미중 긴장이 고조되자 글로벌 은행들이 홍콩에서의 사업을 대대적으로 축소하고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갈등의 여파를 피해 싱가포르 등 대체 도시로 떠나는 은행들도 증가세다. 금융업은 홍콩 사무실 수요의 30% 이상을 차지한다.

블룸버그는 “중국 경제 성장이 주춤하면서 중국 기업들이 글로벌 은행 이탈로 생긴 사무실 공간을 메우지 못하고 있다”면서 “고층 건물이 더 많은 고층 건물을 짓고 있어 공실률을 해소하려면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또 한차례 기준금리 인상이 단행된 유럽에서도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뚜렷하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집계에 따르면 유럽의 상업용 부동산 가치는 지난 3월 기준 전년대비 10.8% 하락했다. 영국 역시 같은 기간 16%나 가치가 하락했다.

CRE 위기 현실화…대출 상환 포기·매각 검토 잇따라
차입 비용 상승과 자산 가치 폭락으로 유럽 상업용 부동산 회사들이 위기에 놓였다. 스웨덴 부동산 대기업 SBB는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상징적인 회사로, 가치가 사상 최고치일 때에 비해 90% 이상 폭락했다. [로이터]

공실률 증가와 상업용 부동산 가치 하락에 금융 당국은 올해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시작된 은행 시스템 위기의 재발 가능성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금리 인상과 담보 가치가 하락하면서 대규모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향후 2년 내에 만기가 오는 미 상업용 부동산 대출 규모는 1조5000억달러로, 이 중 70%는 지역 중소은행들이 차지하고 있다.

지난 16일 미 금융안정감독위원회는 성명을 내고 “규제 당국이 위험 관리를 강조함과 동시에 은행들의 상업용 부동산 노출을 조사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위기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임대인들과 투자자들은 헐값에 건물을 내놓거나 대출금 상환을 포기하고 있고, 부동산 개발회사들의 신용등급 하향과 매각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미쓰비시의 MUFG 아메리카그룹은 캘리포니아 스트리트 인근의 사무실 건물을 4년 전보다 80% 저렴한 6000만달러에 SKS파트너스에 매각했고, 유니언 스퀘어의 힐튼 호텔 소유주는 7억2500만달러의 대출금 상환 중단을 선언하며 호텔을 JP모건체이스에 넘겼다. 대형 쇼핑몰 웨스트필드 역시 샌프란시스코 쇼핑몰에 대한 모기지론 지불을 중단하고 건물을 대출기관에 넘긴다고 발표했다.

또한 블룸버그에 따르면 최근 북유럽 최대 부동산기업 중 하나인 시티콘이 부동산 가치 폭락과 자금 압박 속에 최근 신용 등급이 정크 등급으로 하락했다. 로이터는 스웨덴 부동산 회사인 SBB가 주가 폭락에 이어 회사 매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전략적 검토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상업용 부동산 위기가 은행 위기를 넘어 경제와 사회 전반의 위기로 확산하는 ‘둠 루프(악순환)’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상업용 부동산 가치 하락이 지방 정부의 세수를 잠식시키고, 이것이 경제 활성화를 돕기 위한 정부의 공공서비스와 기업 인센티브 능력 제한으로 이어지면서 또 다시 부동산 시장 둔화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샌프란시스코의 향후 2년간 예산 적자가 7억8000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며 “도시 세수 감소가 되돌릴 수 없는 둠 루프를 부채질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balm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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