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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게리·안도 타다오·자하 하디드…스타 건축가들을 품은 비트라 [디자인플러스]
라이프| 2023-06-21 11:35
네델란드 출신 정원 디자이너인 피에트 우돌프가 가꾼 정원 뒤로 스위스 건축사무소 헤르초크 드 뫼롱이 건축한 비트라하우스가 보인다. [이한빛 기자]

[헤럴드경제(독일 바일 암 라인)=이한빛 기자] 스위스 바젤 중앙역에서 버스로 20분. 국경을 넘어 독일 바일 암 라인(Weil am Rhein) 지역을 5분 정도 달리면 스위스 가구회사 비트라의 공장과 미술관이 함께 있는 비트라 캠퍼스에 도착한다. 가구에 관심 있는 사람은 물론, 건축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들러야 하는 명소다. 그곳엔 오리지널 임스체어를 비롯한 7000여점의 가구와 1000여점의 조명, 2만 여점의 디자인 컬렉션이 프랑크 게리, 안도 타다오, 자하 하디드, SANNA와 같은 스타 건축가들의 건축물 아래 자리잡고 있다.

바젤 근처, 독일 국경에 어쩌다 이같은 기라성 같은 건축가들의 작업이 한 데 모아 포진하게 된 것일까. 원인은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가구 생산 공장이 있었던 이곳 바일 암 라인에 큰 불이 났다. 다시 공장을 복원하는 대신 비트라는 건축가들에게 프로젝트를 의뢰한다. 비트라는 프랑크 게리에겐 비트라 디자인 미술관을, 자하 하디드에겐 소방서를, 안도 타다오에겐 컨퍼런스 파빌리온을, 장 푸르베에겐 주유소 설계를 부탁한다.

스위스가 사랑하는 건축 듀오 헤르초크 드 뫼롱에게는 수장고를, 알바로 시자에게는 생산공장 건축을 맡겼다. 이들 건축가 대부분이 건축계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하기 전에 비트라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건축 평론가 필립 존슨은 “저명한 건축가들에 의해 설계된 건물이 한 곳에 모인 유럽의 지역은 이곳이 유일”하다며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프랑크 게리가 설계한 비트라 팩토리 빌딩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

전도유망한 건축가들의 손에서 제각각의 건축물이 탄생했지만, 비트라 캠퍼스는 이 모두를 포용하면서 훌륭한 조화를 이뤄낸다. 내부 디자이너 없이도 전 세계 가구시장을 평정한 비트라의 내공인지도 모르겠다. 비트라는 찰스 임스와 레이 임스의 의자, 베르노 판톤의 판톤 체어, 장 푸르베의 스탠다드 체어 등을 대히트 시켰으나, 이들 중 그 누구도 비트라의 직원으로 고용하지 않았다.

‘디자인은 디자이너에게, 생산은 생산자에게’라는 단순한 정책이 디자이너는 디자인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것이 비트라가 퀄리티 높은 제작으로 세계 디자인 시장을 평정한 비결이 됐다는 업계의 시각이다. 스타일의 통일성을 강조하기 보다 열린 프로젝트 안에서 다양한 입장을 제시하는 기업 철학이 스타 건축가들을 불러들였고, 그들의 작업을 한 자리에서 가능케 한 근원인 셈이다. 헤럴드경제가 이들 건축물을 소개하며, 비트라의 철학을 짚어본다.

프랑크 게리 설계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

▶프랑크 게리 =미국 건축가인 프랑크 게리는 1989년 총 3개의 건물을 설계한다. 비트라 디자인 미술관과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 전시장 및 게이트하우스, 공장 건물 등이다. 게리는 첫 유럽 작업인 이 프로젝트에서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로 구성된 입방체 볼륨이 돋보이는 건축을 제시했다. 각각 구조물들이 조각조각 나뉘는 것처럼 보이는 역동적 건물이 완성됐다. 평생의 역작으로 꼽히는 빌바오 구겐하임(1997년)의 원형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프랑크 게리는 1989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다.

안도 타다오 설계 비트라 컨퍼런스 파빌리온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

▶안도 다다오 = 안도 타다오가 비트라의 컨퍼런스 파빌리온을 맡은 건 1993년.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것이 1995년이니, 그보다 2년 앞섰다. 비트라 컨퍼런스 파빌리온은 그의 첫 해외 프로젝트였다. 노출 콘크리트와 목재 마감, 직선과 곡선이 어우러지며 차분하게 중정으로 모이는 건축 언어는 건물을 보자마자 안도 타타오의 작업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일본 전통 건축에 뿌리를 두면서도 르 코르뷔지에나 루이스 칸과 같은 건축가들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명확하다.

자하 하디드설계 비트라 캠퍼스 내 소방서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

▶자하 하디드= 1981년 대형 화재를 겪은 이후, 비트라는 자체 소방서를 짓기로 결정했다. 국내에선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건축가로 유명한 자하 하디드가 1993년 소방서 설계를 맡는다. 비트라 소방서는 자하 하디드가 건축가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한 첫 프로젝트로, 그는 이로부터 11년 뒤인 2004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다.

자하 하디드는 자유분방한 특유의 곡선으로 건축물 외부를 마무리한다. DDP도 비정형 곡면 금속 패널 4만5000여장을 외장재로 사용했다. 자하 하디드의 초기작인 소방서에도 비슷한 원형이 보인다. 하늘로 솟는 각이 날카로운 조각적 형태의 입구는 뒤에 자리 잡은 직각 건물과 대조를 이룬다. 제작을 위해 현장에서 복잡한 외피 제조과정을 거쳤다. 비트라 미술관은 이 소방서와 프랑크 게리 건물이 20세기 후반 건축사의 중요한 흐름인 ‘해체주의’의 대표적 작업이라고 소개한다.

헤르초크 드 뫼롱 설계 비트라 샤우데포트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

▶헤르초크 드 뫼롱 = 자크 헤르초크와 피에르 드 뫼롱의 건축사무소 헤르초크 드 뫼롱은 비트라 캠퍼스의 플래그십 스토어인 ‘비트라 하우스’(2010년)와 미술관이자 수장고인 ‘샤우데포트(Schaudepot·2016년)’을 지었다. 이들은 2001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다.

비트라 하우스에는 디자인 뮤지엄 샵을 비롯해 비트라의 제품으로 꾸민 쇼룸, 레스토랑이 자리잡았다. 12개의 길쭉한 박공집을 엇갈리게 쌓은 5층 형태의 건물로, 박공집이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건물 안에서 보는 풍경이 달라지는 것이 매력이다. 샤우데포트는 창문이 없는 단순한 박공지붕 형태의 건물이다. 창고처럼 보이지만 지하까지 이어지는 수장고에는 1977년부터 35년간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한 롤프 펠바움(Rolf Fehlbaum)이 컬렉션한 가구 7000여점이 수장돼 있다.

피에트 우돌프의 퍼벌리 가든→ [이한빛 기자]

▶피에트 우돌프 = 비트라 캠퍼스는 완성형이 아니라 계속 확장하고 변화하고 있다. 가장 최근 비트라 캠퍼스에 합류한 아티스트는 네델란드 디자이너 피에트 우돌프다. 뉴욕 하이라인 정원으로 유명한 이 디자이너는 비트라 캠퍼스에도 2020년 5월 4000㎡(약 1200평) 규모의 ‘퍼벌리 가든(Peverly Garden)’을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잘 가꾸어진 정원에서 만날 수 없는 관목, 여러해살이 풀, 덤불, 야생화가 주인공이다. 마구잡이로 심어진 듯 보이지만, 일반적인 자연 상태에서는 만날 수 없는 식물들을 개화 시기 등을 계산해 식재했기에 사계절 내내 야생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더불어 현재 비트라 디자인 미술관에서는 ‘정원의 미래:자연이 디자인하다’전이 진행 중이다. 정원(gardening)에 진심인 서구인들의 시각을 만날 수 있다.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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