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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 온 佛 6세대 와인메이커 “8000년 전통방식 버리지않은 와인, 그게 우리의 긍지”
라이프| 2023-06-21 16:56
한국 방문차 코리아헤럴드에 들른 루이 스타르크만 루이 페레 에 피스 회장은 어렸을때부터 한국게임기를 갖고 놀았고, 한국문화와 음식에 매료됐었다고 한다. 165년 전통의 와이너리를 이끌고 있는 그는 “지역과의 상생과 나눔에 관심이 크며, 고품질 와인제품으로 한국시장에서 더욱 사랑받고 싶다”고 했다. 사진=임세준 기자/jun@heraldcorp.com

[헤럴드경제=김영상 기자] #. 1800년대 초반. ‘차르’ 알렉산더 1세(Tsar Alexander Ⅰ) 군대의 군인이었던 한 사나이가 있었다. 군을 떠나면서 그는 와인상인이 됐다. ‘신의 물방울’인 와인은 그에겐 정열의 대상이었다. 그런 열정은 그의 아들에 이어졌고, 아들 역시 와인을 꿈꿨다. 아들은 조지아(Georgio) 출신의 이브게니 루이 막스(Evgueni Louis Max)였다. 조지아에서 유독 넘쳐났던 프랑스 와인 생산업자들에게 영감을 얻은 그는 아예 1858년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와인하우스를 설립했다. 루이 페레 에 피스(Louis fere et Fils) 와이너리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가 와인하우스를 만든 것은 조지아 특성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했다. 잘 알다시피 조지아는 와인의 본고장이자, 성지로 통한다. 성경에 나오는 ‘술 취한 노아’나 포도나무 얘기 등은 그 지역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와인이 없었다면 존재 의미가 없었을 것이라는 조지아. 오죽하면 그 곳에는 “물보다 와인에 빠져 죽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표현했을까. 165년 전통의 루이 페레 에 피스는 와인 고장인 조지아(조지아 와인은 무려 8000년전의 방식, 즉 인공첨가물 없이 6개월 숙성하는 자연 방식을 따르는 등 오늘날 와인 메카 중 하나다) 태생의 한 사내로부터 이렇게 시작돼 부르고뉴로 영역을 옮긴 것이다.

오늘 특별한(?) 손님이 하나 찾아왔는데, 바로 이브게니 루이 막스의 후손인 루이 스타르크만(Louis Starkman)이었다. 루이 페레 에 피스의 회장으로, 막스가(家) 혈통을 이어받은 그는 6세대 와인메이커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를 만나 막스가 선조들의 와인 개척 스토리와 흥미로운 와이너리의 역사, 그리고 와인메이커로서의 자긍심과 비전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최진영 코리아헤럴드 대표이사실에서 와인에 대한 흥미로운 대화를 나눈 후, 자리를 옮겨 헤럴드 1층 스튜디오에서 진행했다. ‘신의 물방울’이라는 찬란한 이름으로 불리는 와인, 선조들의 피와 땀으로 일군 그것을 후손은 어떻게 승계하고 오늘날 그 명맥과 전통을 이어가고 있을까.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서 만들어지는 ‘신의 물방울’=루이 페레 에 피스 와이너리는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Burgundy·프랑스어 표기 Bourgogne)에 위치해있다. 토양은 주로 석회암과 이회암이다. 큰 강을 중심으로 포도원이 서 있고, 일조량이 풍부해 와인의 재료가 되는 양질의 포도 생산이 가능한 곳이다. 부르고뉴 토양은 프랑스 말로 떼르와(Terroir)라고 하는데, 흙과 기후가 와인생산과 찰떡궁합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와인으로 쓸 수 있는 포도의 습성은 토양을 가리고, 햇볕도 신경쓰는 등 매우 까다롭다. 일반 포도는 평범한 흙에서도 잘 자라지만, 와인용 포도는 빗물이 잘 빠지는 토양에서만 잘 성장한다. 빗물이나 수분이 빠르게 빠져나갈때 재빨리 수분을 가로채고, 많은 일조량을 동시에 먹으면서 포도 스스로의 영양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 와인용 포도다. 즉, 빗물이 고여있는 토양은 일단 와인용 포도생산지로 낙제점이란 뜻이다.

165년 전통의 프랑스 와이너리 ‘루이 페레 에 피스’의 다양한 와인상품(위)과 와인병 라벨의 그림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 중 하나라는 자부심으로 루이 페레 에 피스는 지역사랑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명품 와인을 지향한다. 맨밑 오른쪽에 피카소 그림이 들어있다.

“부르고뉴는 그래서 캘리포니아 나파밸리나 호주나 타 유럽 등지의 와인보다 더 좋은 포도와 와인을 빚어낼 최상의 곳이라고 봅니다.”

스타르크만 회장의 이 말에선 부르고뉴맨으로서의 자기 고장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난다. 선대의 출발점인 조지아에 대한 설명도 곁들이면서 말이다.

사실 와인 왕국인 조지아는 와인 전통이 숨어있는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과 함께 ‘코카서스 3국’으로 불린다. 프랑스 와인 생산자들이 조지아를 발견한 것은 스타르크만 선조들의 입장에선 행운이었다. 막스 창립자 역시 여기서 영감을 얻었다. 세계 최고의 전통방식으로 와인을 배웠고, 인생 목표가 된 ‘와인으로의 여행’에 큰 울림을 주었다. 막스 설립자는 1858년에 부르고뉴의 중심지인 본(Beaune)에 그만의 메종(와이너리)을 세웠다. 이 도멘(Domaine·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 있는 와인업체를 칭함)은 묵묵히 자리를 지켰고, 오늘날 꼬뜨 드 본(Côte de Beaune), 꼬뜨 드 뉘(Côte de Nuits), 그리고 샤블리(Chablis)까지 브랜드 스펙트럼을 확장시킨 원동력이 됐다.

“그로부터 165년이 지난 지금, 루이 페레 에 피스는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포도 산지 중 3곳에서 전통과 혁신의 방식을 결합해 우리만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스타르크만 회장에 따르면 루이 페레 에 피스는 합리적인 포도 재배, 수확량 관리, 수작업의 수확 방식, 완전 성숙 상태에서의 선별방식 등을 고집하고 있다. 선조들의 뜻을 거역하지 않고, 옛것을 고수하는 것이다. 화이트 와인의 경우엔 각 구획에서 최상의 주스를 추출하기 위해 부드럽게 압착한 후 배트(Vat)나 배럴(Barrel)에서 숙성시킨다고 한다. 레드와인은 줄기 채로 배트(Vat)에 일정시간 담가 발효하며 이후에 배럴(Barrel)에서 전통적인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친다. 샤도네는 섬세함을, 피노 누아의 경우엔 기교와 우아함을 끌어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단다.

“이런 독창적인 경험과 노하우는 6대에 걸쳐 발전 및 계승돼 왔습니다. 제가 좀더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일하려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그가 선조들의 얼을 계승 받은 6세 와인메이커를 자임하는 것은 이같은 뜻에서다.

부르고뉴 와인메이커 답게 스타르크만 회장의 지역사랑은 유별나다. 그는 “우리 루이 페레 에 피스 와이너리의 철학은 항상 브르고뉴 지역에 대한 사랑과 존중에 기반한다는 것입니다. 지역과의 상생은 우리 와이너리의 제1의 모토이자, 목표점입니다.”

▶병 겉에 유일하게 피카소 그림 장착, 프리미엄으로 승부=루이 페레 에 피스 와인상품은 최고급이지만, 특히 와인병의 레이블에 좋은 그림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적인 게 피카소의 그림이다. “제 아버지가 어느날 우연히 피카소 가족과 저녁을 했습니다. 거기서 피카소 그림 하나 써도 되냐고 물었지요.”

그냥 피카소 그림을 병에 넣겠다고 하면 안될 말이다. 그런데 스타르크만 회장의 아버지는 미술 애호가였다. 부친은 평소 미술과 문화, 와인은 떼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고 한다. 그리고 부친은 그림 소장에 열성적이었는데, 마침 피카소 해당 그림을 소장하고 있었다. 피카소 가족들로부터 오케이(OK)를 얻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와인은 맛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와인병의 레이블도 무시 못합니다. 피카소 그림을 병에 넣은 것은 세계에서 우리가 유일합니다.”

스타르크만 회장은 브르고뉴 지역에 대한 애착을 또한 강조했다. 그의 아버지는 와인학교에 가서 수업도 하고, 그 학생들을 와이너리로 불러 현장실습도 가르쳤다. 피는 못속인다고, 그 역시 똑같은 나눔활동을 하고 있다. “아버지는 프랑스 리옹, 파리 등까지 가서 와인학교 수업을 하셨는데, 저 역시 같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저의 즐거움입니다.”

무엇보다 스타르크만 회장이 자신 있는 것은 와인생산 공법이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그는 루이 페레 에 피스만의 유니크한 기술력을 활용한다. 화이트 와인의 경우엔 우드(Wood)를 절대 쓰지 않고 스틸 탱크(Steel Tank)만을 쓴다. 포도를 수확하고 압축한 후 스틸 탱크에 저장하는데, 그 이후가 루이 페레 에 피스의 독자적인 공법이 적용된다. 구체적으로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그게 말로레틱(malolatique) 공법이라고 소개한다. 지금은 와이너리 중 적지 않은 곳에서 쓰는 생산기법이지만, 이것을 처음 시작한 곳 중 몇군데 안되는 곳이 바로 루이 페레 에 피스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반면 레드와인은 오크(Oak)통을 사용한다는데, 레드와인 얘기를 꺼내자 스타르크만 회장의 눈빛이 생기가 돈다. “사실 레드와인을 화이트와인보다 더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우리 레드와인 중 메큐리(Mercurey Premier Cru) 제품은 프랑스 현지에서 최고등급을 받았을 정도로 고품질을 자랑합니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와인메이커를 했다고 해서 꼭 그도 이 길을 걸어야 했을까. 가업 승계 외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궁금해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온다. “당연히 고민했지요. 대학을 마치고 뭘할까 하는데 아버지가 ‘한달만 와서 일해봐. 좋은지 안좋은지 그때 (결정해)보자’고 하시더군요. 와인학교에서 수업도 하고 현장실습도 해봤기에 와인생산 및 제조가 어렵지는 않았어요. 그렇게 일하다보니 어느새 12년이 지났네요.”

그렇다고 그냥 숙명을 받아들이며 가업승계만 한 것은 아니다. 부지런히 공부했고, 열심히 일했다. 와인 자격증 3개를 딴 것을 보면 그의 노력이 엿보인다. 스타르크만 회장은 와인 주조, 테이스팅, 와인제조총관리 등의 자격증을 갖고 있다.

165년 전통의 와이너리인 루이 페레 에 피스의 루이 스타르크만 회장. 헤럴드 1층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한 그는 “한국인은 와인을 잘 알고, 뭣을 사야할지 잘 파악하고 있는 등 맞춤형 니즈가 풍부하다”며 한국시장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사진=임세준 기자/jun@heraldcorp.com

▶한국시장에 애정 커…좋은 와인 계속 공급하겠다=그에게 한국은 낯설지 않은 땅이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 비즈니스를 오랫동안 해왔고, 서울은 40차례 이상 방문할 정도로 한국을 사랑했다. 아버지는 서울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와인얘기를 해주고 한국에서 산 기념품을 건네 주시곤 했다. 자연스럽게 한국은 친근한 존재가 됐다. “제가 어렸을때부터 한국은 친숙했어요. 12살때 한국 비디오게임을 했고, 한국의 문화 역사에 꽤 관심이 많았어요. 한국음식도 관심이 컸습니다.”

지금 루이 페레 에 피스 와인상품이 한국 유통시장에 활발한 손님으로 찾아오고, 일부 고급 레스토랑에 공급되는 것은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그의 노력도 가세가 된 결과물이다. “한국과 사업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것은 확고한 신념이고요. 한국 와인시장에 고품질로 승부하고 싶습니다. 한국인은 와인을 잘 알고, 뭣을 사야할지 잘 파악하고 있는 등 맞춤형 니즈가 풍부하다고 봅니다. 시장성이 큰 한국과 파트너십을 계속했으면 합니다.”

대화를 하다보니 어느새 주제가 기후위기 관련까지 넓혀진다. 프랑스 역시 기후위기로 와인 생산량이 현저히 줄고 있다고 한다. 일조량과 가장 관련이 큰 상품이기에 더욱 더 그렇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포도 생산량이 확 감소했습니다. 지난 5월인가 찾아온 해일, 크고 작은 태풍이 몰아치면서 와인 입지를 좁히고 있어요. 물도 적게돼 땅이 마른 상태가 한동안 계속됐어요.”

원래 할아버지때엔 포도를 10월께 수확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8월말로 앞당겨졌다. 5월부터 8월까지 일조량은 괜찮은데, 그 이후 햇볕의 양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물론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수확량이 줄고 희소성이 커지면서 루이 페레 에 피스 상품의 가격이 올라가면서 좋은 점도 있다. 하지만 와인의 대중화라는 측면에서 기후위기는 전세계의 와인 적(敵)이고, 그 역시 극복해야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와이너리 CEO의 미각이 궁금해 물어봤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면 당신 상품을 어떤 맛으로 골라야 할까요”라고. 명쾌하게 정리해준다.

“우리 대표 상품인 샤블리종은 프레이(Prehy·진흙이나 석회석이 많은 것) 토양에서 컸기에 미네랄이 풍부합니다. 톡쏘는 신맛 향이 강해요. 아마 이 맛으로 우리 품종을 척하니 알아맞출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좋아하는 한국인 혀맛에도 아주 좋을 것으로 자신합니다.”

165년 전통의 와이너리 루이 페레 에 피스의 6세 후손 경영자 답게 맛의 감상과 평가까지 막힘이 없는, 무엇보다 한국시장에 애정이 커 보이는 그의 말이 인상적이다.

ys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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