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이름값만 매일 10억씩?…“‘환갑’ 조던, 나이키는 거들 뿐” [김유진의 브랜드피디아]
라이프| 2023-06-25 00:57
나이키 ‘점프맨’ 캠페인. [NIKE]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절대 안 된다는 말은 하지 말라. 한계는 두려움과 마찬가지로 환상일 뿐이다” -마이클 조던(60·Michael Jordan)

은퇴한 지 20년, 올해 나이 환갑. 전성기가 지났어도 현역처럼 거론되는 남자가 있다. 현역 스포츠 아이콘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8·알나스르 FC), 르브론 제임스(39·LA 레이커스)마저 능가하는 존재감이다. ‘NBA의 전설’이자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로 나이키의 성공신화를 이끈 마이클 조던 얘기다.

첫 번째 매장인 월드 오브 플라이트 밀라노는 363㎡, 두 번째 매장인 시부야는 854㎡와 비교해 서울 홍대 매장은 가장 넓은 면적을 자랑한다. 2층 라운지 앞으로 탁 트인 널찍한 공간은 향후 펼쳐질 커뮤니티 이벤트를 기대하게 한다. 김유진 기자/kacew@

조던의 백넘버 ‘23’을 의도하기라도 한듯 지난 23일, 서울 스트릿 패션의 메카인 홍대에 조던 ‘월드 오브 플라이트’(WoF)가 본격 상륙했다. WoF는 ‘조던’만을 위해 존재하는 전 세계 단 3개 뿐인 매장이다. 에어 조던 스니커즈는 물론, 조던 브랜드 의류까지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이탈리아 밀라노와 일본 시부야에 이어 세번째로 문을 연 이곳은 규모면에서는 단연 세계 최대다.

홍대 매장에 들어선 순간, 마치 패션쇼를 연상시키는 역동감이 감돈다. 조던을 입은 채 2열종대로 선 열두개의 마네킹들은 방금 홍대 거리에서 섭외한 젊은이들처럼 경쾌함 그 자체다. 그저 서 있을 뿐인데, 패션쇼 피날레를 위해 걸어나온 모델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도전하지 않는 것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던 조던의 기상이 곳곳에 스몄다.

나이키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달려있다는 조던. 조던을 ‘불멸의 레전드’로 재탄생 시킨 나이키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발매만 되면 웃돈이 몇 배씩 붙는 ‘에어 조던’으로 조던의 현역시절 태어나지도 않았던 세대까지 팬덤을 일으키게 한 나이키의 영민한 전략은 무엇이었을까.

‘농구’보다 ‘나이키’로 더 벌었다…‘환갑’ 조던, 작년에만 수익 3222억!
미국 프로농구(NBA)가 뽑은 마이클 조던의 활약상. [NBA 공식 유튜브]

조던 브랜드의 흥행은 스포츠맨 마이클 조던을 억만장자(billionaire) 반열에 올려놨다. 그는 은퇴 후인 2015년 포브스 세계 억만장자 리스트에 운동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현역도 아닌 은퇴 선수가 농구장을 떠난 지 10여 년도 넘은 시점에서 억만장자가 된 비결은 억대 연봉도, 로또 당첨도, 비트코인 대박도 아니었다. 바로 약 40년 전 나이키와 맺은 특별한 계약 덕분이었다.

조던은 미국 프로농구(NBA)에 갓 데뷔한 1984년 나이키 신제품에 자신의 이름을 허락한 대가로 이 제품 수입의 5%를 받기로 약속했다. 이는 운동선수가 제품 수익금 일부를 영구히 받기로 한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됐다. 당시 운동선수들이 약 10만달러 규모로 스포츠 브랜드와 계약했던 점을 감안하면, 나이키가 제시한 25만달러(3억2000만원)는 파격적인 액수였다. 그때도, 지금도 조던 같은 이름값을 자랑한 선수가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월드 오브 플라이트 서울 홍대. 조던이 주요 커리어를 보낸 시즌에 신었던 에어조던 시리즈를 전시했다. 에어조던6(1991년), 7(1992년), 8(1993년), 11(1996년), 14(1998년) 등 다섯 켤레다. 마이클 조던은 1991년 첫 우승 챔피언십을 거머진 뒤, 1993년에 6월 16일에는 55득점, 8 리바운드, 4 어시스트로 자타공인 최고의 경기를 펼쳤다. 1996년엔 네 번째 챔피언십 반지와 NBA MVP를 동시에 품에 안았다. [헤럴드경제 영상팀]

2003년 조던이 NBA에서 완전히 은퇴했지만, 그의 브랜드 가치는 여전하다. 조던 브랜드는 지난해 약 50억달러 매출로 사상 최고의 해를 보냈다. 조던이 지난해 '조던 브랜드'로 나이키에서 벌어들인 수익은 2억5600만달러(약 3322억원)에 이른다.

“Never Say Never” NBA도 못 막은 나이키 고집…조던 쟁취한 짝사랑 성공기
나이키와 마이클 조던의 역사적 계약과 막후 협상을 그린 영화 '에어'(2023). [영화 '에어'(2023)포스터]

조던과 손잡은 나이키는 이후 1등이 너무나 당연한 독보적 스포츠 브랜드가 됐다. 지금은 떼려야 뗄수 없는 관계지만, 나이키와 조던의 만남엔 우여곡절이 많았다. 나이키 모델이 된 조던과 그의 이름을 딴 에어 조던 스니커즈의 탄생이 더욱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유다.

1980년대 조던을 품에 안기 위해 던진 승부수와 물밑 작업은 영화로 각색될 정도로 극적이다. 수익금 5%를 준다는 전무후무한 제안, 선수 이름을 딴 독자 브랜드 ‘에어 조던’을 출시하는 도전의 과정이 지난 4월 개봉한 벤 에플렉 감독의 영화 ‘에어’(2023)에 담겨 있다.

1985년 제작한 나이키 에어조던1 ‘밴드’(Banned) 캠페인. [NIKE]

영화 ‘에어’가 주목한 건 막후에서 조던을 설득한 그의 모친 델로리스와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 마케팅 담당자 조지 레이블링의 스토리다. 배우 출신 감독 벤 애플렉은 영화 제목에서 일부러 ‘조던’의 이름을 배제했다고 후술한다. 누구나 아는 이름이어서 굳이 명시할 필요도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등장만으로 다른 인물들을 조연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존재감 탓에, 감독은 그를 80년대 경기 영상으로만 등장시켰다.

에어 조던 출시 후 나이키가 선보인 발칙한 ‘Banned’ 마케팅도 알고보면 실화에 기반한다. NBA는 복장 규정을 위반한다는 이유로 조던의 나이키 스니커즈 착용을 금지했다. 그러나 나이키는 벌금 5000달러를 기꺼이 지불하며 조던에게 그 신발을 신게 한다. 나이키는 해당 일화를 에어 조던 브레드(Bred·‘블랙앤레드’의 줄임말) 마케팅에 활용했지만, 실제로 규정을 위반한 운동화는 소리없이 사라진 비운의 ‘에어 쉽’으로 알려졌다.

“하나쯤은 다 사봤을 걸” 나이키 오른팔 ‘에어 조던’

조던과 함께한 40년의 세월 동안 나이키는 글로벌 1위 스포츠 브랜드의 명성을 쌓았다. 본캐 나이키 옆에서 ‘부캐’ 에어 조던은 조금 다른 행보를 걸었다. 기능성 스포츠 의류의 대명사를 넘어서 트렌드 최전선을 주도하는 패션 브랜드로 도약해온 것. 당첨 돼야 겨우 구할 수 있다는 에어 조던 인기 스니커즈는 유행에 민감한 힙스터와 스트릿 패션의 아이콘이 된 지 오래다.

2022년 국내 한정판 거래플랫폼 KREAM에서 판매된 신발 가운데 프리미엄이 가장 많이 붙은 신발로 선정된 에어 조던 시리즈. [KREAM]

조던 브랜드의 상징은 누가 뭐래도 에어 조던 스니커즈다. 에어 조던 시리즈는 1984년 시카고 불스 신인 시즌에 처음으로 신고 나와 유명세를 탔다. 이듬해 ‘에어 조던 I’이 대중에게 공개된 뒤, 지금까지 30종 넘는 시리즈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디올·오프화이트 등 럭셔리 브랜드는 물론 스포츠카 페라리 디자인 등 발매하기만 하면 이목이 집중되는 콜라보레이션의 대명사가 됐다.

에어 조던은 발매 즉시 품절돼 웃돈을 줘야만 구할 수 있는 신발로 유명하다. 지난해 국내 한정판 거래플랫폼 KREAM에서 판매된 신발 가운데, 프리미엄이 가장 많이 붙은 스니커즈 5개 중 나이키, 그 가운데 4개가 조던 브랜드 제품이다. 오프화이트와의 컬래버레이션이 돋보이는 조던1 레트로 하이 시카고 더 텐은 NBA 시카고 불스의 상징색 흰색·검정·빨강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으로 사랑받았다.

올 여름 눈길을 끄는 조던 스니커즈는 7월 전 세계 공개를 앞둔 ‘조던 루카2’다. 지난해 출시한NBA 구단 댈러스 매버릭스 소속 선수 루카 돈치치를 위한 시그니처 스니커즈의 새로운 모델이 23일 WoF 서울 홍대 매장에서 한발 앞서 세계 최초로 단독 공개된다.

조던 보러왔는데…“뉴진스·르세라핌이 딱!”
21일 조던 ‘월드 오브 플라이트 서울 홍대’에 진열된 트래비스 스캇(Travis Scott)의 조던 바이커 자켓(왼쪽). 아이와 어른이 함께 입을 수 있는 배스킷볼 코디(오른쪽). 김유진 기자/kacew@

지난 23일 문을 연 ‘조던 월드 오브 플라이트 서울 홍대’ 역시 심미적 요소에 집중했다. 정식 오픈 전인 21일 직접 매장을 방문해 1층에 들어섰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당장 아이돌 르세라핌이 입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조던 바이커 자켓이다. 70만원대 프리미엄 제품인 이 자켓은 힙합 아티스트인 트래비스 스캇(Travis Scott)과의 컬래버레이션으로 탄생했다.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양화로 홍익대학교 인근에 문을 연 ‘조던 월드 오브 플라이트 서울 홍대’. 나이키에서도 ‘에어 조던’으로 유명한 조던 시리즈의 운동화·의류만을 따로 판매한다. 김유진 기자/kacew@

“이건 뉴진스가 입을 것 같아요.” 2층 매장에 들어선 뒤 산뜻한 민소매의 배스킷볼 유니폼을 본 기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에어 조던 로고와 조던의 백넘버 23일 활용한 농구 유니폼이 뉴진스 ‘하입보이’ 뮤직비디오에 등장했던 민소매 블록코어룩을 연상시켰다. 맨투맨·야구점퍼의 부활을 이끈 ‘바시티’(varsity) 패션과 축구 유니폼에서 영감을 받은 ‘블록코어’(BlokeCore) 룩을 NBA 스타일로 변주하고 싶다면 눈여겨 봄직한 아이템이다.

“조던 좋아하던 강백호가 여기 있네.” 2층 디스플레이 공간을 지나 널찍한 ‘더 라운지’ 공간에 앉자, 국내 관객 400만명을 돌파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원작 만화책이 기자를 반갑게 맞이한다. 라운지는 조던 브랜드와 시카고 불스의 히스토리와 문화적 코드를 탐색할 수 있는 서적과 자료들을 총 망라해 모아놨다. 농구 팬이라면 반길 수밖에 없는 공간이자, 전 세대 농구팬들이 모여 설렘을 공유할 수 있는 WoF의 핵심 공간이다.

조던 ‘월드 오브 플라이트 서울 홍대’ 2층 풋웨어 데스티네이션. [나이키]

나이키는 “이 공간에서 전 세대를 아우르는 농구 커뮤니티가 자유롭게 소통하고 농구 문화를 키워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조던 브랜드의 목표”라고 말한다. 조던 브랜드와 소비자, 커뮤니티 간의 접점을 온라인과 오프라인 양방향에서 확장한 리테일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포부다.

라운지 앞으로 탁 트인 전방 공간은 향후 WoF에서 열릴 커뮤니티 이벤트를 기대하게 만든다. 답답하고 빼곡한 디스플레이 대신 사람을 위한 공간을 비워뒀다. 나이키 관계자는 당장 이날 오후에도 커뮤니티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조던 스토리를 작품으로 표현한 6명의 신진 작가들의 작품들도 카운터, 피팅룸 등 매장 곳곳에 숨어있다. 농구 마니아라면 작가들이 활용한 시카고 불스 상징색과 조던의 백넘버(23번) 등의 공공연한 비밀 코드를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월드 오브 플라이트 서울 홍대’ 2층에 마련된 워크샵 공간. 에어 조던 스니커즈와 쇼츠를 커스텀할 수 있다. 김유진 기자/kacew@

“이건 이름이 뭐에요?” 한정판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에어 조던의 아쉬움을 커스텀으로 달랠 수 있는 워크샵 코너에 접어들자 연신 질문이 쏟아졌다. 신발끈 가운데 끼우는 금속장식은 듀브레(Deubre), 신발 끈을 구멍에 쉽게 넣고 끝부분 올풀림을 방지하는 에글렛(Aglet)이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이곳에서 원하는 액세서리를 골라 에어 조던을 장식하거나 원하는 문구를 각인할 수 있다.

운동화 끈을 장식하는 듀브레는 이름부터 나이키가 원조다. 1994년 나이키의 신발 디자이너 데이먼 클래가 ‘두브리(Doobrie)’라고 부르던 명칭을 살짝 바꿔 정식 이름으로 사용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는 스코틀랜드 사투리로 ‘거시기’, ‘머시기’ 정도의 뜻이다. 에글릿은 라틴어로 바늘을 뜻하는 ‘acus’에서 파생된 프랑스 옛 단어 ‘aiguillette(aguille)’에서 유래했다.

SNKRS픽업(SNKRS Pick-Up) 코너는 그간 나이키 매장 일부 또는 온라인·모바일앱을 통해서만 구입할 수 있었던 조던 제품들을 매장에서 직접 구입할 수 있는 공간이다. 오는 7월 정식 런칭하는 SNKRS 앱을 통해 제품을 예약한 뒤 WoF를 방문하면 된다.

WoF 서울 홍대에서만 볼 수 있는 나이키 리버시블백 디자인 역시 ‘조던의, 조던에 의한, 조던을 위한’ 오프라인 공간으로 발걸음하게 만든다. ▶관련기사 2023년 4월 30일자 “300만원짜리 명품백 왜 사?” 외국인, 한국서 ‘직구’ 하는 이 가방 [김유진의 브랜드피디아]

“조던, 지금은 뭐하나”…환갑생일 128억원 기부, 갈수록 비싸지는 그의 이름값
마이클 조던. [게티 이미지]
“내가 나이가 들면, 농구를 하지 못하겠죠. 그래도 여전히 농구를 사랑할 겁니다.” -마이클 조던
현역 시절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스타들이 말년의 논란으로 과거의 명성에 먹칠하는 광경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런 점에서, 변치 않은 우상으로 자리잡은 조던은 거의 완벽한 예외다.
올해 환갑인 농구 황제 조던은 60살 생일을 맞이해 자선단체 ‘메이크 어 위시’에 1000만달러(128억5000만원)을 기부했다. 이는 해당 재단이 창립된 이후 43년간 가장 큰 개인 기부금 액수다. 기부금 마저 GOAT(Greatest Of All Times)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13년간 부진을 겪어온 농구팀 샬럿 호네츠의 구단주로 후학 양성에 나섰던 행보도 농구를 향한 조던의 진심을 보여줬다.
에어 조던 브레드(Bred·‘블랙앤드레드’의 줄임말). [소더비]
조던이 지켜온 이름값 덕일까. 그의 현역 시절 운동화와 유니폼은 여전히 경매만 나왔다 하면 최고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4월 조던이 1998년 시카고 불스와의 마지막 시즌에 신었던 브레드(Bred·‘블랙앤드레드’의 줄임말) 에어 조던은 소더비 경매에서 역대 운동화 가운데 가장 비싼 가격인 220만달러(약 29억원)에 팔렸다. 소더비에 따르면, 조던은 자신의 잃어버린 재킷을 찾아준 라커룸 볼보이에게 이 신발을 선물로 건넸다. 조던이 1998년 NBA 파이널 1차전에서 입었던 유니폼 상의는 지난해 소더비 경매에 나와 역대 스포츠 경기에서 실제 착용했던 수집품 가운데 최고가인 1010만 달러(약 133억 원)에 낙찰됐다.
나이키와 종신 계약을 맺은 농구 선수는 조던을 포함해 르브론 제임스(NBA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케빈 듀란트(NBA 피닉스 선즈) 등 3명이 전부다. 이 가운데 조던만 유일한 은퇴 선수다. 은퇴한 전설의 현재 진행형 역사, 어디까지 계속될까? 조던의 모든 것을 담은 WoF 서울 홍대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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