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승강기 6분 독점’ 30대 택배기사, 욕설한 주민 밀쳐 숨졌지만 法 ‘집유’
뉴스종합| 2023-07-04 09:47
[헤럴드DB]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아파트 한 층에 한꺼번에 물품을 배송하기 위해 약 6분 동안 엘리베이터를 독점한 택배기사가 이에 항의하며 욕설한 주민을 밀쳐 사망에 이르게 했지만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부산지법 형사6부(부장 김태업)는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된 30대 택배기사 A 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고 4일 밝혔다. 또 A 씨에게 80시간의 사회봉사도 함께 명령했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A 씨는 지난 1월 10일 부산 연제구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숨진 50대 피해자 B 씨의 어깨를 밀쳐 넘어뜨려 머리를 크게 다치게 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A 씨는 복도형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 문에 택배 상자를 끼워 닫히지 않게 한 뒤, 여러 세대에 물품을 배송했다. 설 연휴 대목으로 배달 물량이 평소에 비해 2배가량 많아 제때 식사도 하지 못한 채 작업을 했다.

A씨는 같은 방식으로 여러 층을 이동하며 6분 뒤 배송을 마치고 아래층으로 이동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다시 탑승했다. 이때 이 엘리베이터에 타게 된 B씨가 오랫동안 엘리베이터를 기다린 상황에서 택배 짐수레를 발로 차며 “XX놈아”라고 욕설 내뱉었다. 욕설을 듣고 화가 난 A 씨는 술을 마신 상태였던 B 씨의 어깨를 밀쳤다. B씨는 열려있던 엘리베이터 문 밖으로 넘어져 바닥에 머리를 세게 찧었다.

A 씨는 119에 신고하고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지만, B 씨는 2차례의 뇌수술 끝에 닷새 후 외상성 경막하출혈로 숨졌다.

A씨 측은 “피고인은 부당한 대우에 대항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했다”며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상당한 정도의 귀책사유가 범행의 원인이 될 경우, 감경 요소로 고려할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반면 검찰은 “피고인 주장과 달리 피해자가 가만히 서 있는데 밀어 넘어뜨린 것은 방어적인 행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머리를 강하게 부딪치는 경우 머리 골절 등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은 경험칙상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고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법원이 집행유예 결정을 내린 것은 가족들과 원만히 합의하고, 입주민들이 탄원서를 제출한 결과다.

숨진 B 씨는 평소 소음 등을 이유로 이웃주민, 택배기사, 배달원 등과 상당한 갈등을 빚은 것으로 조사됐다. 법정에 출석한 아파트 관리소장은 공사를 하지 않을 때도 B 씨가 공사 소음 때문에 시끄럽다는 민원을 제기했다고 진술했다. 해당 아파트 입주민들과 B 씨의 아내도 A 씨에 대해 선처를 호소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이 재판에서 배심원 7명 모두 유죄를 평결했고 상해치사가 인정된다는 의견을 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어깨를 강하게 밀쳐 사망에 이르게 된 점을 유죄로 판단한다. 피고인에게는 2차례 모욕죄 처벌 전력이 있는 점을 불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며 “ 범행 직후 119에 신고한 점과 유족과 합의한 점, 집행유예를 평결한 배심원들의 의견을 존중해 형을 정했다”고 덧붙였다.

5개월간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온 A 씨는 이날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석방됐다.

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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