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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살 할머니 작가가 말한다 “우리 삶은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여정”
라이프| 2023-07-06 07:51
베트남 출신으로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흐엉 도딘의 첫 아시아전이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열린다. [이한빛 기자]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이 선이 보이죠? 총 7개예요. 오른쪽에서 시작해서 왼쪽으로 갔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이렇게 왔다 갔다 하죠.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우리 삶의 여정이라고 해야할까요. 저는 7은 숙련자의 숫자라고 생각해요. 모든 경험과 관록이 쌓여 자유로움에 도달한 사람이죠. 그럼에도 거기까지의 여정은…”

희끗한 흰머리, 작은 체구, 온화한 주름이 가득한 78살 할머니 작가의 설명은 결국 마침표를 찾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는 짐작이 간다. 그러나 진정 작가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감히 상상하기 힘들다. 베트남 속짱에서 태어난 흐엉 도딘은 1953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발발직후 가족과 함께 파리로 이민을 떠난다. 이후 50년 넘게 파리에 머물며 작가로 성장했다. 어린나이 겪었을 전쟁과 이주, 경계인으로서의 삶이 쉽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알 수 있지만 ‘명상 하듯’ 작업하며, ‘모든 제스쳐가 내 작품의 일부’라고 말하게 되기까지의 그 삶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K.A. 280 2023 Organic binders and natural pigments on canvas mounted on wood 150 × 122 × 4 cm © Huong Dodinh , Courtesy of Pace Gallery

그의 작업은 미니멀하고, 수많은 메타포가 숨어있다. 옻칠을 하듯 여러번 쌓아올린 물감이 단단해 지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집중도도 높다. 작품을 읽어내는 힌트는 작품에 그려진 선의 수다. 3은 첫 시도, 5는 모험, 7은 숙련자의 자유로움 등이다. 결국은 인간 삶을 담았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모험을 떠나며 그 과정에서 배우고 숙련되면 결국 자유로워지는 우리 삶이다. 딱히 숫자에 대한 가이드가 없이도 명상하듯 작품과 조우하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작가는 베트남을 떠나 파리에 정착한 이후 처음으로 눈을 봤다고 한다. 하늘과 땅의 조화와 자연의 경이로움에 깊은 감동을 받았고, 이런 빛나는 순간을 자신 작업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다. 1965년부터 1969년까지 파리 보자르에서 공부했으며 판화, 석판와, 프레스코, 회화 및 건축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과정을 이수했다. 1968 운동을 겪으며 베트남 전쟁이 내포한 폭력성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이후 수십년간 홀로 회화작업에 매진했고 조안 미첼, 리사 데 쿠닝 등 프랑스에 기반을 둔 작가들과 교류했다.

2021년 파리 기메 국립 아시아 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으로 주목받았고, 2022년 베네치아 코레르 박물관 전시에 이어 2023년 광주비엔날레에도 초청됐다. 이번 전시는 페이스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이며, 아시아에서 처음 개최된다. 8월 19일까지.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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