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재미교포 이성진 감독 “새로운 ‘분노’ 이어가고 싶다”
라이프| 2023-08-18 11:05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이성진 감독

“‘분노’라는 감정은 세계 어디서나 경험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 소재에요. 시즌마다 새로운 종류의 ‘분노’를 만들어 분노 시리즈로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할리우드에서 크리에이터로 활동 중인 재미교포 이성진 감독(41)이 일상적인 분노를 소재로 만든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원제 ‘BEEP’)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으면서 호평을 받고 있다. 각본·연출을 담당한 이 감독은 최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23 국제방송영상마켓(BCWW)’에 참가해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신호대기 중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뀐 걸 알아채지 못하자 뒤에 있던 백인 차 운전자가 경적을 울리고 소리를 지르고 난폭운전까지 했다”고 말했다.

‘성난 사람들’은 돈을 벌어 한국에 있는 부모를 모셔와야 하지만 사업이 잘 안풀리는 한국계 노동자(도급업자)인 대니 조(스티븐 연 분)가 마트에서 차를 후진하자 강한 크락션을 울리며 손가락 욕까지 하는 흰색 벤츠 SUV(스포츠유틸리티차) 운전자인 중국계 이민자 에이미(앨리 웡 분)와 시비가 붙어 도로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른바 ‘로드 레이지(Road Rage·도로 위의 분노)’다.

스티브 연, 앨리 윙, 죠셉 리, 데이비드 최, 영 마지노, 에쉴리 박, 저스틴 민 등 한국과 아시아계 미국인 배우들이 주축인 이 드라마는 오는 9월 미국 에미상 시상식에서 무려 13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그는 “팬데믹 기간에 ‘로드 레이지’가 무려 34% 늘어났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말도 안되는 분노를 쏟아내는 비디오들도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라며 “분노는 항상 있지만 팬데믹 때 더 많이 나왔고, 우리의 작업 방향이 옳다는 확신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분노를 계속 쌓아두기만 하고, 아무런 이해나 공감 없이 분노라는 감정을 표출한다면 위험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싶었다”며 “우리가 좀 더 연결(상호작용)하는 데 포커스를 맞춘다면 분노의 감정이 수그러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에미상 후보에 오른 것에 대해선 “후보가 된 것만으로도 꿈을 이뤘다”며 “아시아 배우와 크리에이터 팀이 만든 드라마가 에미상 후보에 올랐으니 10년 후에는 얼마나 더 훌륭한 작품들이 나올 지를 생각하면 신난다”고 말했다. 시즌2 계획에 대해선 “만약 분노에 대해 추가적으로 만든다면, ‘성난 사람들’을 통해 하고 싶다”며 “시즌마다 새로운 ‘비프’, 새로운 종류의 ‘분노’를 만들어 분노 시리즈로 이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아직 시즌2 제작은 결정되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작가 조합 파업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어서다.

그의 작품에서 코미디는 스토리텔링의 중심축을 이룬다. 그는 “코미디를 빼면 시청자가 줄고, 과도하면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간다”며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이나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을 보면 웃었다가 울었다가 겁에 질렸다가 여러 감정을 겪게 되지 않나”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미국도 요즘은 장르를 섞기도 하지만 드라마면 드라마, 코미디면 코미디였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국에 오니 고향에 돌아온 듯한 느낌”이라며 “어릴 때 먹던 음식을 먹으면서 그 기분이 살아났다. 한국 땅에 온 것 자체가 행복”이라며 웃었다. 서병기 선임기자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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