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박정희 대통령이 훈장 준 홍범도 독립군 총사령
라이프| 2023-08-28 08:30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1943년 10월 25일, 러시아 당국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된 홍범도 대한독립군 총사령은 끝내 이역만리 남의 땅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곳의 한인들(러시아가 강제이주 후 ‘고려인’이라 지칭)은 ‘홍범도 장군 분묘수리위원회’를 조직해 묘를 보수하고, 흉상과 기념비를 세웠다. 그가 거주하던 집은 크질오르다의 역사기념물로 지정되었고, 집 근처의 거리는 ‘홍범도 거리’라는 이름으로 바뀐다.

국내에서 거주하고 있는 ‘고려인’들이 광복절이던 지난 15일 광주 광산구 월곡동 홍범도공원(다모아공원)에서 봉오동전투를 물총 싸움 등 여름 축제로 재해석해 재연하는 국민참여형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

국가재건회의 의장으로서 대한민국 정부를 이끌던 박정희 대통령은 1962년 독립운동에 기여한 공훈을 기려 홍범도 총사령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육군사관학교는 이후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세웠다.

2019년 4월 카자흐스탄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토카예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장군의 유해 봉환을 요청해, 2021년 8월 15일 카자흐스탄으로부터 홍범도 독립군 총사령의 유해가 봉환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건국훈장 중 최고등급인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고, 유해는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홍범도(1868~1943) 장군은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에서 독립군 최대의 승전을 기록했으며, 그해 10월엔 김좌진 장군과 협력해 청산리 대첩을 이끈 인물이다.

앞서 홍장군은 39세때인 1907년 9월 일제가 ‘총포 및 화약류 단속법’을 공포하고 포수들의 총을 회수하려 하자, 11월 차도선·태양욱·송상봉·허근과 함께 산포대(山砲隊)를 조직한 뒤 삼수(三水)·갑산 지방 포수들의 총포를 회수하러 온 일본군을 대적하여 갑산·삼수·혜산·풍산 등지에서 유격전을 벌여 일본군을 전멸시켰다.

세계적인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등장하는 독립군의 ‘맹아’, 뜻있는 포수들의 항일 투쟁을 지켜주기 위함이었다. 만주,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이 해방후 근·현대적 국군의 전신으로 추앙받았음은 물론이다.

1910년 소수의 부하를 이끌고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 양성에 전력을 기울이면서 부하들로 하여금 함경북도 경원 주둔 일본군을 습격해 성과를 거두었다.

1919년엔 대한독립군의 총사령이 되어 약 400명의 독립군으로 1개 부대를 편성, 갑산·혜산·자성 등의 일본군을 급습하여 전과를 거두었다.

1920년 6월 반격에 나선 일본군이 제19사단의 병력과 남양 수비대로 부대를 편성하여 독립군 본거지인 봉오동을 공격해 오자, 700여명의 독립군을 지휘하여 3일간의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일본군 157명을 사살했다.

그 뒤 독립운동단체가 흑룡강의 국경지대에 집결하자 항일단체들의 통합을 도모해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하고 부총재가 되었다. 1921년 6월 소련 당국의 한국독립군에 대한 무장해제령이후 남은 독립군 부대와 함께 이르쿠츠크로 이동해 후진 양성활동을 이어갔다.

1937년 스탈린이 한인 강제이주정책을 시행하면서 연해주의 한인들과 함께 카자흐스탄의 야니쿠르간 사나리크로 이주했다가, 이듬해 크질오르다에 정착한다. 말년에는 한인 극장인 ‘고려극장’에서 수위로 근무하며 청빈한 삶을 영위했다. 이 극장에서는 그의 항일투쟁을 주제로 한 연극 ‘홍범도’가 공연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가 민족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육사 흉상 철거를 강행하자, 홍 장군에게 훈장을 준 박정희 대통령 지지자들 조차 당황해 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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