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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실종 방지법’ 손놓은 여야
뉴스종합| 2023-09-13 11:20

#1. “파출소 안에 잠깐 앉아 있어라, 아버지 어디 좀 다녀올게.”

1984년 10월. 아버지는 당시 9살이던 나와 세 살 위인 누나를 파출소에 맡기고 어딘가로 향하셨다. 아버지를 파출소 안에서 기다리던 중 검은색 지프차가 와서 나와 누나를 실었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것이 ‘형제복지원’ 차량임을 알았다. 파출소 앞에서 마지막으로 봤던 나의 아버지도 이후 형제복지원에서 다시 만났다.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실종자 유가족 모임 대표)

#2. 어머니는 아버지의 퇴직 처리를 하지 않으셨다. “돌아오면 일을 하셔야지”라는 이유였다. 강릉 MBC PD셨던 아버지는 1969년 KAL기에 탑승한 채 납북됐다. 북한은 1970년 2월 납북자 전원을 송환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말을 바꿔 11명은 돌아오지 못했다. 아버지는 그 11명 중 한 사람이었다. ‘당연히 돌아올 것’이란 믿음도, 우리 가족도 무너졌다. (황인철 KAL기 납북자 가족회 대표)

멀게는 6·25 한국전쟁부터 가깝게는 납치, 살해 등 범죄로 인한 희생과 이유없는 실종까지. 많은 국민들이 사라진 가족을 소식도 모른 채 기다리고 있지만 법과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국회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에 따르면 6·25 전쟁 중 우리 국민 약 10만명이 납치됐고, 미송환 국군 포로는 최소 5만명으로 추산된다. 전쟁 후 납치돼 귀환하지 못한 국민도 516명으로 집계됐다. 또한 최근에도 북한에 억류된 것으로 파악되는 국민은 10여명에 달한다. 유엔 강제실종방지협약은 ‘강제실종’을 “국가 기관 또는 국가의 허가, 지원 또는 묵인하에 행동하는 개인이나 개인들로 구성된 집단이 사람을 체포, 감금, 납치나 그 밖의 형태로 자유를 박탈한 후 이러한 자유의 박탈을 부인하거나 실종자의 생사 또는 소재지를 은폐하여 실종자를 법의 보호 밖에 놓이게 하는 것”이라 정의한다.

유엔 총회는 2006년 12월 ‘강제실종으로부터 모든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협약(강제실종방지협약)’을 채택했다. 우리나라는 올해 1월 협약에 가입했고, 2월 3일부로 협약이 발효됐다.

당면한 과제는 발효된 협약의 이행을 위한 입법 조치다. 현재 이를 위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두 법안은 국회에 1년에서 3년 가까이 붙잡혀 있다. 지난해 5월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대표 발의한 ‘강제실종범죄 처벌, 강제실종의 방지 및 피해자의 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과 2021년 1월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강제실종으로부터 모든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안’이 그것이다. 1년도 채 남지 않은 21대 국회에서 해당 법안들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자동 폐기된다. 두 법안은 전날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에 상정됐다.

법안 속 손해배상 책임에 대한 ‘소멸시효’를 정한 조항이 강제실종 피해 당사자나 그 가족들에겐 ‘독소조항’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 대표의 법안은 강제실종 범죄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의 단기 소멸시효를 10년, 장기 소멸시효를 30년으로 규정한다. 전 의원의 법안의 경우, 강제실종으로 인한 피해나 가해자를 알게 된 날로부터 20년, 피해발생으로부터 50년을 소멸시효로 둔다.

황인철 대표는 “강제실종 범죄는 끝나지 않았는데 그 권리 구제에 관한 배상을 소멸시효에서 완성한다고 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 ‘피해가 발생한 날부터’가 아니라 ‘범죄의 종료’, ‘완료’ 시점으로 해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기간을 만드는 것이 온당하다”고 강조했다. 박상현 기자

poo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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