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서비스수지 적자국가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올해 초 발표한 ‘최근 우리나라 서비스수지 국제 비교와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21년까지 20여년간 우리나라 서비스수지 누적 적자 규모는 2529억달러(약 312조3315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쟁 국가에 비해 과도한 서비스시장 규제와 제조업 대비 낮은 노동생산성, 인프라 부족 등이 서비스수지 적자를 키운 원인으로 분석했다.
이러한 서비스수지 개선을 위해서, 특히 적자폭이 큰 관광산업이 잘되는 방법에 대해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 관광으로 이미 앞서 있는 국가를 선호하는 관광객들을 그들과 비슷한 관광상품이나 서비스로 따라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그들은 가만히 있고 우리만 노력한다면 언젠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보다 관광이 앞서 있는 나라들도 누군가 추격하는 것을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얼마 전 태국은 ‘Thailand Travel Mart+2023(TTM+2023)’이라는 행사를 진행했다. 코로나19가 지나고 태국이 내세운 소프트파워 ‘5F(Food·Film·Festival·Fight·Fashion)’를 활용해 관광산업 도약을 모색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일본은 질적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외국인이 일본에 머무는 기간을 1.35박에서 1.5박으로 늘리고 워케이션 활성화나 지속 가능한 관광을 내세우고 있다. 각자 자신의 장점을 활용하려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한국의 유명한 궁 앞에서도 ‘수문장 교대식’이 시작됐다. 관광객들에게는 재미있는 콘텐츠일 것이다. 하지만 영국 버킹검궁 근위병 교대식을 넘어서는 관광상품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역의 대하축제와 복숭아축제, 딸기축제 등은 농수산물만 바뀌었을 뿐이지, 비슷한 구성에 비슷한 연예인 공연만 있다. 온통 벤치마킹 결과물로밖에 안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은 ‘패스트팔로워’로서 많은 산업이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퍼스트무버’가 돼야만 살아남는 상황이다. 이는 서비스 분야도 마찬가지이고 관광 분야도 벤치마킹을 통한 성장을 버려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관광은 경험을 파는 서비스다. 사람들이 여행을 하는 이유는 일상에서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일본이나 태국, 프랑스에서 해본 경험과 유사한 프로그램을 진행해서는 한국의 서비스수지는 개선되지 못할 것이다. 한국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해야만 한국이 관광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이에 ‘교육관광’을 제안한다. ‘러닝(Learning)’과 ‘베이케이션(Vacation)’을 합쳐 ‘런케이션(Learncation)’이라는 신조어를 생각해봤다. 교육관광은 여러 가지 해석을 담을 수 있을 것이지만 단순한 여행보다 좀 더 학습을 더해 개인의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의도적으로 교육적 목적을 포함한 여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학창 시절에 경험한 수학여행이나 지금 대학생들이 하는 교환학생 제도도 그중 하나일 것이고, 광의로 생각하면 유학 역시도 교육관광상품에 포함할 수 있겠다.
교육관광의 시작은 17세기와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랜드 투어 오브 유럽’으로 알려진 유럽의 교육 엔터테인먼트투어에서 시작됐고, 이 시기에 영국 귀족들의 여행은 매우 인기가 있었으며 사회·문화적 영향력이 있는 계층에 의해 수행됐기에 영국의 예술과 문화에 막대한 영향(Towner·1985)을 미쳤다. 영국의 귀족이나 귀족의 자녀들은 로마가 발전시킨 수송로를 역으로 걸어 선진 로마를 학습하고 돌아오는 일이 많았고, 1700년대에 가장 인기 있는 교육의 한 형태가 됐던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교육관광이 다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당시와 다르게 인터넷 등을 통해 직접 가보지 않고도 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됐지만 지식과 정보를 얻는 것이 시간과 비용이 적게 드는 시대가 되자 이제는 경험의 중요성이 더 커지게 된 것이다. 해외에서 공부하는 학생의 숫자나 외국 교육이 내 주위로 오는 국제학교의 숫자는 이번 세기 들어와서 두 배 이상 증가하고 있다. 미네르바대학처럼 전 세계를 캠퍼스 삼아 이동하는 학교도 늘어날 것이다. 이미 한국에도 ‘미네르바처럼’을 주장하는 교육기관들이 보이고 있고, 전 세계 12개국을 여행하는 고등학교도 존재한다.
한국에 교육관광을 제안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한국이 경쟁 국가에 비해 잘할 수 있는 분야라는 것이다. 우리가 제공할 과목이 많다. 배우고 싶은 것이 없는 곳에서 교육관광을 상품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K-팝을 포함한 한국 문화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외국인들이 배우고 싶어하는 분야가 됐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알려진 한국의 요리나 패션, 미용 등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경기도에 있는 새마을연수원에는 한국이 못살던 나라에서 잘살게 된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지금도 외국인들이 오고 있다. e-스포츠, 태권도, 양궁, 골프 등 스포츠 분야도 우리가 과목만 개설하면 수강신청이 넘칠 분야다.
그리고 한국은 우수한 인력이 많다. 단순 관광가이드에 비해 교육관광은 고학력의 인재들을 교육자로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상당히 긴 기간에 예·체능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대학진학률을 보여왔다. 안타깝게도 ‘문송합니다’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취업이 안 되는 문과 계열의 대졸자와 예·체능 인재들이 교육관광 분야에서는 다른 나라가 가지지 못한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실용음악과 경쟁률은 몇 십 대 1이고 이들은 이미 훌륭한 예술가이지만 졸업생들이 모두 예술인이 될 수는 없다. 외국인을 위한 K-팝학원이나 학교 차원에서는 좋은 선생님들이 참으로 많다. 식재료가 썩어나가고 요리사가 놀고 있는데 식당을 열지 않는 바보 경영자가 될 필요는 없다.
두 번째로는 교육관광이 성공할 경우 기존 관광과는 다른 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관광객이 많아지면 오히려 원주민은 거주하기 싫은 곳이 돼 떠나는 결과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교육관광은 특성상 장기 체류형 관광상품이다. 1년 동안 한 도시에서 관광객 365명이 하루 머무는 것과 한 명의 외국인이 365일 머무는 것은 비슷한 매출을 기대할 수 있지만 도시의 쾌적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고 단순 관광보다 훨씬 지속 가능한 관광이다. 평창동계올림픽 시설을 활용해 겨울이 없는 국가의 외국인들이 다니는 국제체육학교를 만들고 1000명의 학생이 강원도에 머물게 되면 36만5000명의 관광객을 유치한 것과 같아지는 것이다. 학생들뿐 아니라 학부모들도 가끔 오게 될 것이고 양양공항에서 면세품을 사고 강릉에서 골프 치고 원주에서 미용 시술을 하고 돌아갈 것이다. 또한 지역 내 양질의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전 세계를 가르치는 ‘스승의 나라’가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소현세자 프로젝트’라고 부르지만 친한파 외국인이 자연스럽게 많이 생길 수 있다. 교육기간에 먹은 김치를 자연스럽게 찾고, 한국 브랜드에 애정이 있는 외국인들을 별도의 홍보비 없이 만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우리의 아픈 곳들이 치유되거나 새로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교육관광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시설들이 지역에는 넘쳐나고 있다. ‘지방 대학은 폐교인 학교와 폐교가 될 학교로 나뉜다’는 농담도 들었다. 대학이나 폐교가 된 초·중·고교 시설이 많지만 적당한 활용법을 못 찾는 경우가 많다. 제주 호텔학교, 순천 발효요리학원, 서울 K-팝 캠프, 강원국제동계체육학교로 외국인들이 와준다면 기존 시설의 활용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인구 감소로 고통스러운 지방에 장기 체류 외국인의 유입이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교육관광이 서비스산업의 하나가 될 경우에 장점은 많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준비해야 할 것도 많아 보인다. 교육관광이라는 분야는 국내에 존재하지 않았고 해외에도 다양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분야이기에 참고할 대상도 많지 않다.
우선 교육관광을 위해서는 교육을 조금 더 서비스 관점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고, 고객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교육을 받고 싶다면 무엇이 불편할지를 알아보고 개선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제도와 정책도 정비해야 한다. 외국의 초·중·고교생들이 한국에 들어와 교육을 받고 싶다고 해도 비자 제도도 마땅치 않고, 받아주는 학교를 찾기도 어렵다. 한국에 이민 오거나 한국에서 대학까지 진학하려는 경우가 아니라 한국에서 몇 개월이나 몇 년 정도 머물며 태권도나 K-팝을 배우고 자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학생들에게는 그에 맞는 학교와 비자 제도가 필요할 텐데 그런 것이 없다. 교육을 위해 한국에 비교적 자유롭게 올 수 있는 것은 대학을 통하는 방법 말고는 쉽지 않다.
은퇴하고 한국어강사가 되고 싶은 일본인 선생님이나 한국에서 한 학기 정도 한국 춤을 배우고 싶은 귀한 고객들을 유치할 콘텐츠가 있고 시설이 있어도 모실 수 없는 한계가 제도와 정책에 있다.
얼마 전 만난 템플대학에서 관광경영을 연구한 이완구 박사는 “한국은 한국만의 관광을 개발해야 한다. 교육은 가장 한국적인 관광상품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며 한 예로 미국의 레크리에이션 목적을 지닌 학습 수행에 관련한 비자 법률 근거를 소개했다. 미국 국무부 외교업무 지침서에 따르면, 미국의 관광비자(B-1)는 학위나 학업이 아닌, 주 18시간 이하의 교육을 받으려는 외국인도 발급받을 수 있다. 심지어 미국의 대학, 대학교 및 사설 기관에서는 고등학교 또는 대학생을 위한 여름 프로그램은 심지어 학문적인 향유를 위한 것이며 ‘학업’으로 홍보되지만 여전히 관광비자로도 진행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유연한 비자 제도나 다양한 학교나 학원 등 교육기관 설립이 허용돼야만 하겠다.
언어도 교육관광을 활성화하는 데에 필요한 고려 사항이다. 현재 외국인이 자유롭게 교육받을 수 있는 대학마저도 언어에 대한 제약이 있다. ‘한국어’라는 첫 번째 장벽을 넘어야만 대부분의 한국 교육이 허용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서비스산업 관점에서 보면 맞지 않는다. ‘한국어로 주문하지 않으면 음식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식당에 대해서는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한국어로 배우지 않으면 가르칠 수 없다’는 태도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다. 프랑스의 유명한 요리교육기관은 프랑스어가 아닌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면서 전 세계로 확장할 수 있었다. 일본의 많은 대학이 영어 전용 학과를 만들고 영어시험만으로도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하고 있다. 태권도나 한국 요리나 K-팝이 좋은 사람들이 이런 분야를 깊게 배우고 나면 자발적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질 것이다. 태권도를 배우고 싶은 마음을 한국어를 강요함으로 인해 막아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한국어를 꼭 배워야 한다고 해도 한국어 수업을 대학이나 대학 부설 기관에서만 해야 되는지도 의문이다. 대학이 언어교육을 잘하는 곳이었다면 민간 영어학원을 다니는 대학생은 이미 없어졌을 것이다. 그게 어렵다면 대학 부설 한국어 교육기관에 더 많은 시도를 제도적으로 허용해야 한다.
정부와 학계의 도움도 필요하다. 기존 관광과 차별화하고 내국인이 아닌 외국인을 위한 양질의 교육을 위해서는 제도와 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에 민간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영역이다.
마지막으로 교육관광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을 바꿔야 한다. 우리는 선진국에서 배워온 것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발전시켜온 기간이 길어서인지 ‘우리도 선진국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는 의식과 자신감이 없는 듯하다. 우리가 가 보고 싶고 동경하는 선진 도시는 인구와 고층 빌딩만 많은 곳이 아니라 외국인들이 배우고 싶어서 모이는 교육기관을 소유한 도시다. 뉴욕, 도쿄, 파리에는 있고 서울에는 없는 것을 찾아보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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