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61살, 내가 무슨 치매...7개월을 방에 숨었어요” [젊은 치매를 말하다]
뉴스종합| 2023-09-19 11:48
초로기 치매 환자 김선희(64·오른쪽)씨와 남편이자 보호자인 박동휘(63)씨 박혜원 기자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나는 멀쩡한데 무슨 치매냐고 집사람에게 박박 우기고 싸웠어요. 죽으려고 칼을 머리 맡에 놓고 몇 달 살기도 했어요. 7개월을 문 닫고 방에서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유진철(64·가명)씨는 치매 진단을 받은 2020년, 61세이던 당시를 이같이 회상했다. 치매는 노인이 앓는 질환으로만 여겼던 유씨에겐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유씨가 치매 검사를 받게 된 건 유씨의 건망증 증세를 주의 깊게 지켜보던 아내를 따라서였다. 유씨는 “병원에 한번 가자는 말에 뭔지도 모르고 갔다가 갑자기 치매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유씨는 절망했다. 치매 사실을 부정하며 1년 가까이 가족도 멀리했다. 유씨는 “한동안은 약을 먹기도 거부하면서 3년 동안은 외출도 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61세, 58세, 57세, 55세. 헤럴드경제가 직접 만난 치매 환자들이 공식적으로 치매 진단을 받은 나이다. 대부분 증상이 발현된 지 3~4년이 지난 후에야 병원을 찾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실제로 치매에 걸린 나이는 50대 초반에서 중후반이다. 치매가 주로 70세 이상 고령층에게 찾아온다는 상식을 거스르는 이들은 ‘젊은’ 치매라고도 불리는 ‘초로기(初老期)’ 환자들이다.

치매는 대표적인 노인성 질환이다. 하지만 65세 미만에 발병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18일 보건복지부가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매년 2만명이 넘는 이들이 초로기 치매 관련 진료를 받는다. 연도별로 보면 ▷2018년 2만1837명 ▷2019년 2만1364명 ▷2020년 2만112명 ▷2022년 2만405명이다. 올해 7월까지도 1만6332명이 진료를 받았다.

▶건망증, 우울증 착각...‘골든 타임’ 놓쳐 악화=초로기 치매 환자의 첫 난관은 바로 진단 그 자체다. 이른 나이에 증상이 시작되니 건망증처럼 사소한 문제로 여기거나 우울증 등 다른 질병으로 인한 것으로 착각한다. 치매 진단을 받고 치료를 거부하는 일도 빈번하다.

치매는 아직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질병이다. 치매 바로 직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 단계에 적극 개입을 통한 예방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선의 해법이다. 하지만 초로기 치매에 대한 ‘사회적 무지’ 탓에 골든타임을 놓치고 만다. 박모(61)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박씨가 인지능력 저하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17년이었다. 당시 나이 55세였다. 술을 마시고 귀가하면서 집을 찾지 못하거나 본인이 있는 장소를 설명하기 어려워하는 일이 반복됐다. 돌이켜 보면 치매 초기 증상이었다. 2019년 딸이 처음으로 병원 진단을 권유했지만 박씨는 완강하게 거부했다. 박씨의 배우자인 한모(61)씨는 “치매는 여전히 사회적으로 ‘끔찍한 것’이다. 자신의 부정적인 면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한씨는 결국 2020년 치매안심센터를 찾아 초로기 치매 진단을 받았다.

이모(56)씨도 마찬가지였다. 이 씨는 서울 4년제 대학을 졸업했고 15년 동안 대기업에 다녔다. 회사를 나오고 나서는 자격증을 따 부동산 공인중개사로 일했다. 완벽주의에 가까운 꼼꼼한 성격이었기에 더욱 치매를 예상하지 못했다. 증상은 이 씨가 51세였던 2018년 시작됐다. 얼마 전 다녀간 손님을 기억하지 못하고, 집주인과 잡아둔 약속을 까먹기 일쑤였다. 이를 단순 건망증으로만 여긴 이 씨와 배우자 강모(55)씨는 알림과 메모를 더욱 꼼꼼히 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우울증 의심도 했다. 강 씨는 “우울증이 심하면 건망증도 같이 온다. 남편이 우울증 때문에 기억력이 나빠진 것이라고만 생각해 우울증 약을 8개월 정도 먹었다”며 “2020년부터 야간 경비일까지 투잡을 뛰었는데, 밤낮으로 잠을 못 자니 그때 더욱 증상이 심해졌던 것 같다”고 했다. 결국 이 씨는 지난해 10월 치매 진단을 받았고 현재는 모든 일을 그만 둔 채 쉬고 있다. 이 씨는 당시의 감정을 두 마디로 표현했다. “황당했죠. 내가 치매라니.”

김선희(64)씨는 56세 당시 지인 권유로 치매 검사를 받았으나 건망증으로만 진단을 받았다. 김 씨 배우자 박동휘(63)씨는 “1년 뒤 증상이 갑자기 심각해지면서 길을 잃어버리는 일이 반복돼 검사를 받으니 그제야 경도인지장애 진단이 나왔다”고 말했다.

▶ “주변에 말을 못하겠어요”...사회·경제적 고립=진단 이후 이들을 덮치는 건 사회·경제적 고립이다. 진단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인간관계를 단절하고 사회와의 소통을 끊는 이들이 많다. 증세 악화로 일자리를 잃은 후 배우자나 자녀가 오롯이 그 부담을 짊어지기도 한다.

유씨 형제와 지인들은 여전히 유씨의 치매 사실을 모른다. 유씨는 “옛말로 ‘노망’이 난 건데 자랑거리도 아니지 않느냐”며 “치료센터를 다니면서 많이 받아들이긴 했지만, 아직 주변에 상태가 안 좋단 얘기는 못하겠다”고 털어놨다.

경제적 활동이 왕성할 시기에 맞닥트리는 ‘실직’ 문제도 있다. 전기 산업기사로 10여년 간 일해온 박씨는 치매 진단 직후인 2020년 11월 일을 그만뒀다. 월 200만원씩이던 고정수입이 사라진 뒤 그간 프리랜서로 지내왔던 한씨가 갑작스레 가장이 됐다. 한씨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기도 해봤지만, 일을 하면 결국 남편을 내내 방치해야 해 직업으로 삼지는 못했다”며 “생활비 문제가 정말 심각한데 방법을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그런 한씨 곁에서 박씨는 “내가 항상 미안하다”며 짧게 탄식했다. 한씨는 “남편이 단순 노동인 청소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지금도 집에서 재활용, 청소를 도맡아서 하고 있다”며 “일본에서는 기관이나 단체가 일자리 마련도 추진한다고 들었다. 치매인 가족으로서 정말 부러운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치매 정책서도 사각지대=초로기 치매는 각종 지원 체계에서도 소외돼 있다. 연간 36만원 이내에서 약값·진료비를 지원하는 보건복지부 치매 치료 관리비 지원 사업은 60세 이상 치매 진단 환자만 대상으로 한다. 60세 미만 환자가 지원을 받기 위해선 ▷의료기관 진단 ▷치매안심센터 등록 ▷치매 치료약 복용 ▷기준 중위소득 120% 이하라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이씨 부부는 초로기 치매 환자가 이용할 만한 프로그램이 없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이 씨는 “(치매안심센터는)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고 치매가 심한 사람들만 있어 어울리고 싶지 않다. 종이 접고 춤 추는 게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강 씨는 “담당 의사는 계속 일을 하고 활동을 하라고 강조하는데 막상 센터에 물어보면 그런 프로그램은 없다고 한다. 답답해서 제가 요양사 자격을 직접 딸 생각”이라며 “센터는 케어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초로기 치매 환자가 이용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강씨는 지난 15일 요양보호서 자격증 시험에 응시했다.

박씨는 가족이 초로기 환자를 책임질 수 있는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족이자 보호자로서 아내의 곁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박씨의 바람이다. 박씨는 “치매는 가족에게 지원을 잘해줘야 한다고 본다. 내 가족을 나만큼 잘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치매 환자 대상 인지활동형 방문요양 서비스의 경우, 요양보호사 방문 시 1회 120~180분 서비스에 4만280~4만6970원의 비용을 지원받는다. 그러나 가족이 요양보호사를 맡을 경우 2만3480원까지밖에 지원을 받을 수 없다. 휴일·야간 서비스 이용 시 추가로 지급되는 30% 가산 급여도 가족 요양보호사는 적용 예외 대상이다.

그는 “아내가 어느 순간 내 존재까지 잊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40년을 함께 살았는데 옆에 누울 때 손이라도 잡고 따뜻하게 온기를 느껴야 마음이 안정되지 않을까”라고 말하며 손을 꽉 잡았다.

박혜원·박지영 기자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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